치앙마이로 떠나오기 일주일 전 수요일. 한국 서울. 아침 6시에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휴대폰 화면의 하얀 불빛과 제일 높은 음량으로 맞춰놓은 팡파르 소리에 맞춰 눈을 뜬다. 작심삼일인 걸 알면서도 새해에는 항상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마음을 다잡으니 올해의 목표는 미라클 모닝이다. 6시에 눈을 뜨자마자 아직 핸드폰 불빛에 적응하지 못한 홍채를 보호하고자 실눈을 뜬 채로 노란 아이콘을 찾아 카카오톡을 켜 미라클 모닝 인증방을 연다. 이미 5시부터 일어나 책 읽기, 경제 공부,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적 같은 하루를 인증하고 있다. 인증 시간이 지나기 전에 나도 부랴부랴 책을 꺼내 책갈피를 잡아 휙 펴서 사진을 찍어 인증을 한다.
1시간 정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하다 보니 곧 출근시간. 이미 하루의 체력을 모두 써버린 것 같은 피곤함을 씻어내기 위해 샤워를 한다. 방수가 되는 핸드폰 걸이대에 폰을 올려놓고 유튜브가 추천해 주는 영상의 목록을 쓰윽 살핀다. 25살에 1억을 모은 사람, 30대에 파이어족이 된 사람, 누구나 월 천만 원을 벌 수 있는데 왜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사람, 이것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람들이 주루루룩 나온다.
그중에 하나를 틀어 본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개야 성공할 수 있다. 매일 2시간씩 책을 읽으면 성공할 수 있다. AI를 이용해서 유튜브를 하면 누구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회사원만으로는 안 된다. 역시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안 개서, 책 읽고 글을 안 써서, 유튜브를 안 해서, 회사만 다녀서 안 되는 거였구나. 그래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머리에 묻어 있는 샴푸를 헹궈낸다. 재택근무라 굳이 옷을 갖춰 입을 필요는 없지만 출근하는 모드로 마음을 다잡고자 개발자 작업복인 츄리닝 바지에 왼쪽 가슴에 회사 로고가 박혀 있는 후드티를 입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띠링. 오늘의 첫 회의 알람이 울린다. ‘회사원으로는 안 된다는데 이게 다 무슨 의미야’라는 생각을 꾹꾹 내리누르며 화면 건너 팀원에게 밝아 보이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ㅎㅎ”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하고 퇴근을 한다. 오늘 저녁은 집 앞 순대국 집에서 얼큰 순대국을 먹는다. 혼자 멀뚱히 앉아 있기가 심심해 유튜브를 킨다. 개그 영상, 영화 소개 영상, 농구 영상 사이사이에 책을 읽어라, 유튜브를 해라, 사업을 해라,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정리하라는 영상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다음 달까지 끝내야 하는 회사 프로젝트가 문득 떠오르며, 이렇게 평생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30대 자산가라는 사람의 영상을 눌러본다.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 이미 성공한 사람의 일침을 듣고 있어서인지, 오늘 고기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건지 순대국이 오늘따라 텁텁하다.
순대국을 들이켜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집 앞 카페로 향한다. 8시부터 11시까지. 고등학생 때 저녁 먹고 스터디 카페 가서 공부하듯 30대가 되어서도 또 저녁을 먹고 카페로 향한다. 11시가 되니 카페 문을 닫는다는 카페 직원의 안내를 알림 삼아 두 번째 퇴근을 한다. 집에 오니 벌써 11시 30분. 잠깐 쉬자며 소파에 앉아 유튜브를 킨다. 20대에 월 천만 원을 버는 사람, 30대에 경제적으로 독립해 벌써 은퇴를 한 사람, 40대 뒤늦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몇 년 만에 성공한 사람들이 줄줄이 나와 자신의 성공을 간증한다. 훌륭한 사람들의 가르침을 피해 영상 목록을 내리다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라이브 영상을 튼다. 그래,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이게 다 얼마나 먼지 같은 일들과 날들이겠어. 성공도 실패도 자랑도 열등도 다 무슨 의미냐 하며 내일의 미라클 모닝을 위해 아침 6시 알람을 맞추고 눈을 감는다.
눈은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그래, 이게 다 무슨 의미겠어. 당장 행복해야지. 말똥말똥한 정신에 맞춰 눈을 뜨고 스카이스캐너 앱을 켜 치앙마이 비행기 표를 검색한다. 인천 출발, 치앙마이 도착. 직항. 왕복. 성인 1명. 이코노미 좌석. 395,000원. 수하물 있음. 460,000원. 식사 선택 안 함. 창문 쪽 좌석. 마일리지 없음. 결제 완료. 다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