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스테이지에서는 매년 실험적인 단편 드라마를 선보인다. 특히 2021년 작에는 SF와 미래 기술에 대한 요소가 담겨 있어서 수업 자료로 자주 활용했었다. 그중 '박성실 씨의 사차산업혁명'의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다.
다음은 내용이다. (스포주의)
박성실 씨는 보험 회사 '퓨처앤라이프'의 콜센터 직원이다. 무결근 무지각으로 10년 근속상까지 탄 베테랑. 어느 날 AI 상담사 도입으로 콜센터 직원 90%가 잘리고 최후의 3인이 된다. 3개월 동안 근무 성적을 토대로 VVIP를 상담할 직원만 남긴다고 한다. 설상가상 트럭 운전수인 남편은 자율주행차에 밀려 해고를 당하고 혼자 텅 빈 사무실로 출근한다. AI상담원은 화도 내지 않고 말귀도 잘 알아듣고 무엇보다 실수도 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데 AI를 이기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개발팀에 매달려 보았는데 심상치 않은 팁을 준다.
'성실한 것 말고 새로운 걸 하세요.'
귀가 번쩍 뜨인 최후의 3인은 자신의 특기인 개그, 상담, 노래를 앞세워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최우수 직원으로 뽑힌다. 그러나 3개월 후 그들은 모두 잘리고 그들이 남긴 창의적이고 새로운 상담 기록들은 AI 상담사가 모두 학습하여 그대로 고객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퓨처앤라이프 사장은 떼도 안 쓰고 월급도 줄 필요 없는 AI 상담사 도입에 만족하고 이제 개발이 끝난 개발팀도 해고할 준비를 한다.
이제 뭐 먹고살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을 때, 당신은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하겠는가? 개인의 입장에서, 기업의 입장에서, 국가의 입장에서 서술하시오.
사실 나도 답을 모른다. 도저히 모르겠어서 애들에게 물어본 것이다.
냉정한 학생들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기술을 익히기에는 시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데 AI가 그 또한 점유하고 있다.
혹자는 기업의 기술 추구를 막아서 이 사태를 막자고 하는데,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마부들의 일자리 때문에 기관차를 막는다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고 경쟁을 하는 이상 기업과 국가는 기술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직업들이 더 많이 나오기 시작하고 기존의 도태되는 직업들을 대체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문제는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교육에 대한 열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솔직히 10대의 나나 지금의 나나 굴러가는 머리 스타일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시 정규교육과정을 밟기에는 제도적으로 어렵다. 게다가 간단한 일들은 AI가 먹어가는 상황이니 남은 일자리가 없다. AI가 고도화되고 산업용 로봇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일자리는 고도의 기술과 사고력을 요하는 자리만 남게 된다. 결국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는 수순으로 오는 것이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도 사무직을 AI로 대체하기 위한 작업을 몇 년 전부터 계속 실시해오고 있었고, 인원수는 다행히 해고가 아닌 '채용 없음'으로 갈음하였기 때문에 대량 해고 사태는 오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채용의 질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고 남은 자리들도 이제 도태와 함께 AI에 밀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결국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 해결을 할 수밖에 없다로 의견이 모아진다. 복지와 분배 정책. AI로 생산성이 유지된다면 부는 집중될 것이고 그것을 분배하는 것이 다음, 아니 이제 다가온 과제가 아닐까 싶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AI가 생산한 재화를 판매해야 하는데 잠재적 고객들이 다 무일푼이면 곤란할 테니 조금은 관대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 부분은 정책 전문가나 사회학자들이 잘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10년 전에 기술과 교육에 대한 책자에서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교육은 인간 간의 상호작용에서 나오기 때문에 교사는 대체될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코로나를 통해 비대면 교육을 하면서 축소된 상호작용 속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많은 국가에서 인지하게 되었다. 감동적인 멘트였으나 이제 폐기 수순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박성실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이것은 너희가 맞이할 미래다'라고 했지 '내 미래다'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니 미래도 아니고 '현재'다. 내가 기술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2021년의 박성실은 2023년에 내가 되어 ChatGPT를 만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박성실이 AI 상담사 오미래와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의 좌절감을 나도 ChatGPT와 대화를 하면서 느꼈다. 정말 열심히 그리고 잘 살아왔는데 넘어갈 수 없는 벽이 생겼다는 느낌이 그런 것이었다.
교육에 불어닥친 GPT 바람은 어떻게 할까? 좁은 분야의 고만고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은 ChatGPT에게 금방 잡아 먹힐 것 같다. 다행한 것은 교육청이나 교육부가 빠르지 않아서 교육 현장이 바뀌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빨리 변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이 밥그릇 앞에서 못할 짓이 없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밥그릇이 무너지기 전에 살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