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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지능과 인공지능

지능이 무엇이 간데

by 수리향

인공지능의 영역은 사실 굉장히 넓다. 그냥 알고리즘 자체도 인공지능으로 보고 '학습'을 통해 이루어진 모델 자체도 인공지능으로 본다. 요즘 흔히 말하는 인공지능은 후자를 뜻하며 그것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ChatGPT가 가끔 버벅거릴 때마다 묘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데, 사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문제는 이미 GPT에게 정복당했다. 결국 우리가 인공지능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사고력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인간도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대체 인공지능이란 무엇이 건데 이렇게 쉽게 인간지능을 능가하게 된 것일까?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하기 위한 딥러닝 기법을 공부하면 사실 인공지능 자체가 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학습을 시키면서 '정말 돌아이인가?' 하는 의문을 정말 많이 내뱉는다. 몇 십만 개의 학습 데이터를 주었는데 정확도가 80프로도 안 되면 기계는 어쩔 수 없나 하는 생각에 사로 잡힌다.


인공지능의 실체인 모델은 바로 선형방정식에서 나온다.


y = a_1 x_1 + a_2 x_2 +... + a_n x_n + b


여기서 (x_1, x_2,..., x_n)은 입력값(input)이고 y값은 우리가 원하는 결괏값(output)이다. 지금까지의 프로그래밍은 y값을 알기 위해서 열심히 선형방정식을 프로그래밍해 주었다면 이제는 input 값에 의해 최적의 output 값을 내는 (a_1, a_2,..., a_n, b)를 컴퓨터가 찾아내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인공지능이라 말하는 학습된 모델은 (a_1, a_2,..., a_n, b) 그 자체이다.


예를 들어, 온도를 x로 두고 습도를 y라 둔 다음 온도에 따른 습도 예측을 한다고 하자.


y = 10x - 5


기존의 데이터들을 활용하여 이런 방정식이 성립한다는 것을 알아낸다면 이 선형방정식을 통해 임의의 온도에 대한 습도 값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회귀분석의 기법이며 여기서 (10, -5)가 바로 우리가 아는 모델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output은 간단한 input 변수 하나로 결정되지 않고 여러 개의 input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때부터 이차원 직교좌표계에 선형방정식을 표시할 수 있으며 텐서를 이용하여 컴퓨터 상에서 계산을 하게 된다. 수십만 개 그 이상으로 이루어진 텐서를 계산하여 모델을 만드는 최적의 방식을 찾아내는데, 그때 NN, CNN, RNN, GAN 등 여러 기법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모델 자체는 선형방정식이며 그것을 효율적으로 찾아내기 위해서 다소 무식하게 GPU를 굴리거나 여러 기법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 본질은 별반 다를 바 없다.


결국 저 별 것 없는 방정식이 우리를 이리 좌절하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별 것 아닌 선형방정식이라도 그 자체가 복잡하고 커지면 결국 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일까? 물론 그 안에는 개발자들의 보이지 않은 노력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개발자가 다 알 수 없는 노릇이고 GPT 자체의 능력이 아닌가 싶다. 아니 GPU와 CPU의 승리인 것인가?


인간의 지능이 간단한 선형 방정식에 의해 이렇게 정복당하다니, 내가 알던 '인간지능'이란 것은 사실 별 것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보면 앨런 튜링은 인간처럼 사고하는 기계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것으로 애니그마 암호를 해독하고 전쟁을 끝내지만 튜링의 기기는 계속 진화하여 지금의 컴퓨터가 되었다. 마치 불을 인간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우리에게 컴퓨터를 안겨주고 독이 든 사과를 먹은 채 혼자 유유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앨런 튜링이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난다면 컴퓨터의 진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까지 공부했던 모든 지식과 모든 사고가 한 번에 정복당한 느낌이지만 사실 그 지식 중 내가 만들거나 알아낸 지식이 한 개라도 있을까.. 어느 거대한 인물이 인류에게 주고 간 선물들이 기록의 형태로 전승되고 그것을 힘들게 학습하여 쌓아 왔던 게 아닌가. 하지만 그 학습이란 것을 더 빠르고 정확하고 광범위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지능이 나타나면서 지금까지의 학습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며 내가 가진 지능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이 회의감을 어떻게 하면 떨치거나 이겨낼 수 있을까.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살아지기는 할 텐데 그냥 모른 채 살아가는 게 정답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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