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생만 있는 게 아니라고요
90년대 생이 온다
한창 히트를 친 이 책은 내 동생뻘 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태어나자마자 무한 애정을 받은 동생은 뭐가 그리 예뻐서 이렇게 90년대 생을 위한 책까지 나온단 말인가. 읽어 보면 말도 지지리 안 듣고 하라는 야근도 안 하는 얄미운 후배의 이야기인데 나에게는 엄한 선배들이 왜 90년 생에게는 유독 쩔쩔매는 거지?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는 이제 국가에서 정한 '청년'의 끝자락쯤에 있다. 아직도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나는 지하철에서 만큼은 대학생으로 보아주기 바란다. 아 지금 대학생들은 2000년대 생이지? 직장에 도착하면 중간 관리자가 되어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부원들의 눈칫밥을 먹으며 머슴처럼 일을 한다. 문득 거울을 보면 이마에 주름이 늘어난 것 같다. 역시 젊음은 비싼 에센스로도 살 수가 없구나.
가끔 마주치는 90년대 생들은 자신을 꾸밀 줄 알고 스스로를 지킬 줄도 안다. 나를 비롯한 80년대 생들이 직장 공식 머슴인 것과는 달리 실속 있는 위치에서 칼퇴와 우아한 직장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부장 달고 겨우 칼퇴를 고수할 수 있게 된 나는 약간 억울했다. 어떻게 저렇게 쉽게 칼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지? 일 할 때는 잘 눈에 띄지 않지만 마실 나가면 눈에 뜨이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막내로서 사랑받는 이들 그들이 90년대 생이다.
80년대 생들은 소위 꼰대질에도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소위 '태움'도 '꼰대질'도 90년대 생들이 직장에 와서야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냥 당했다. 너무 힘들지만 그냥 자신을 희생하며 직장에 다니는 80년대 생도 있고 승진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꼰대질을 받아주는 80년대 생도 있다. 20대에는 후자의 80년대 생을 보면 '저렇게 살아야 하나' 했는데 지금 다 고만고만한 것을 보니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정치질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70년대 생들의 경력에 밀리고 90년대 생들의 주관에 밀린다. 소위 샌드위치라는 거다.
태생이 둘째라 나는 샌드위치의 괴로움을 잘 알고 있다. 다행히 첫째나 막내보다는 악착같이 잘해서 칭찬은 받지만 그래도 첫째의 돋보적임과 막내의 극강의 귀여움에는 따라갈 수 없다. 지금의 80년대 생이 그렇지 않을까? 직장 내에서는 IMF 위기를 겪은 선배들에게 밀리고 모두 상전으로 모시는 90년대 생에게 치이고, 그 사이에 머슴이 되어 간다. 내 주변의 대부분의 80년대 생은 직장 내에서 대부분 머슴으로 살고 있다. 언제쯤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선배들의 정치질도 발을 담가 보지만 실컷 이용만 당하고 있는데 90년대 생이 말한다.
'왜 그렇게 살아요?'
칼퇴도 마음대로 하고 사내 정치에서 벗어나 즐겁게 살아가는 90년대 생을 볼 때마다 80년대 생들은 회의감이 든다. '왜 우리는 저렇게 사는 법을 몰랐지?' 억울하지만 이미 직장 내 머슴으로 전락한 신세는 그리 쉽게 벗어날 수 없다. 딱 우리 뒤에서부터 바뀌기 시작한 직장 문화. 그리고 적극적으로 우리의 권리를 찾지 않은 죄로 우리는 낡은 직장 문화의 끝물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아직 젊었는데, 샌드위치 사이에 끼어 보이지 않는 우리들을 누가 보아주었으면...
80년대 생도 여기 있어요.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