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독립의 길
베이비붐 세대의 베이비들에게
80년대 생은 말을 참 잘 듣는다. 부모님이 말을 잘 들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간직한 분들이기 때문에 자식들도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교육했기 때문일까? 베이비붐 세대의 베이비인 우리들은 말 잘 듣는 세대의 끝에 서 있다. 적당히 들어야 손해 좀 덜 보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아직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어르신들 간섭에 갇혀 사는 이들을 보면 대부분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90년대 생은 엄마가 집을 해주더라도 적당히 거리를 두는 스킬을 익혔는데 80년대 생들은 그것을 부담과 짐으로 생각해 부모가 강요하는 것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세상은 공짜가 아니니 자식에게 어느 정도 투자한 부모가 그만큼 요구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주는 것을 왜 거부하지 않았는지 나는 의문이 든다.
주변에 부모님이 자취방, 신혼집을 얻어 주었다는 이들은 백이면 백 그렇다. 그들은 독립을 했지만 아직 부모님의 경제적 품 안에 있다.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어서 집 문제만큼은 내 돈으로 해결했다. 딱 한번 1억이 넘는 전셋집을 얻을 때 1천만 원의 돈을 꾸어 보았다. 얼마나 생색을 내던지... 역시 남의 돈에 손대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쌀도 안 사고 달걀도 안 사며 돈을 모아 3개월 만에 갚았다. 아빠는 너무 빨리 입금된 천만 원을 보더니 '밥은 먹고 사냐' 걱정하셨다. 걱정 마시라. 직장 생활하면 하루 한 끼는 보장된다.
자식의 집에 돈을 보태는 순간 부모들은 자식의 집을 자신의 소유물로 보고 자식의 삶에 간섭하기 시작한다. 엄연히 독립된 가구인데 아직 분리가 안 되는 것인가. 애착 분리는 자식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님을 깨닫는다. 다 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부모에게 돈을 받지 말라.
돈을 받는 순간부터 제2의 종속이 시작된다. 어렵게 독립하고 직업을 얻었는데 굳이 부모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또 뭔가. 하지만 이놈의 자본주의 사회가 다 돈인데 청년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집도 사고 결혼도 한단 말인가. 결국 부모님이 결혼식 치러 주고 집도 사주고 그렇게 되더라. 자식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유교 사회에서 자식도 하나의 자산으로 보는 부모님은 그렇게 인생 제2막의 투자를 하는 거다. 그 돈 받고 날라 버리는 자식은 뉴스에 나올 자식이니 헛투자를 하는 건 아니다.(물론 나는 헛투자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부모 세대는 대한민국 인구 중 가장 많다는 베이비붐 세대이다. 경제 부흥을 일으킨 세대로서 고생도 했지만 혜택도 많이 받았다. 취직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지금과는 달리 고졸부터 중졸까지 취직은 따놓은 당상에 대학만 나오면 취직 길은 널려 있다. 집도 청약을 아무리 넣어도 가점제로는 택도 없고 빚 내기도 어려운 지금과 달리 국가에서 보증을 서서 아파트를 지어주어 지금 한 채 이상은 다 깔고 앉아 있다. 열심히 한 만큼 얻었다고 하지만 열심히 할 기회조차 따기 어려운 우리들에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이 잡히지 않는 이유는 아마 이 분들이 딱 버티고 있어서다. 우리 부모님도 그중 하나인데 '늙으면 다 정리하고 내려가야지'하면서도 '서울'이 주는 부동산 싸움의 주도권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금도 무척 정정하고 두 아들을 먹여 살리는 것을 보아 부모님 세대로 인한 부동산 거품이 빠지려면 아마 1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결국 나는 집 값이 꺼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막차를 탄다는 마음으로 청약도 넣고 집도 샀다. 사람들은 아등바등 모은 돈의 액수에 놀라면서 놀리듯 이렇게 이야기한다.
왜 그렇게 살아. 그냥 예쁜 옷 입고 잘 꾸미다가 집 해오는 남자 만나 살아.
그 남자는 자다가 로또라도 맞았나. 결국 그 돈은 남자 부모의 돈이다. 다 알면서도 내 또래 여자들은 눈을 감고 '그 정도는 당연히 남자가 해와야지'하며 산다. 그러니 시집살이가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 거다. 그게 없어도 시집살이는 한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결혼을 하면 안 되겠다 싶다. 그런데 국가는 0.8대로 출산율이 떨어졌다고 난리다. 출산율 떨어져서 교직 TO도 줄고 미래 수요를 위해 너무 줄이다 보니 당장 미발령 자리가 많은데 그 자리는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한 교원들이 채우고 있다. 좋으신 분들도 있지만 확률적인 문제이고, 근본적으로 젊은 세대는 이런저런 이유로 일자리와 경제권에서 밀리고 부모 세대는 계속 일자리도 부동산도 호황이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부모 세대가 일도 집도 계속 놓지 못하는 이유는 다 '자식'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밥그릇 싸움에 얼굴을 붉히고 한 살이라 어릴 때 더 일하려 하고 주택 보유세에 울고 웃는 우리 부모님은 결국 자식들 먹이고 재우기 위해서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 댁에도 두 명의 아드님이 무전취식을 하며 살고 있다. 자식만은 귀하게 키워야 하는 지극히 한국적 사고를 가지신 부모님은 독립할 나이가 한참 지났음에도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재운다. 그들은 독립할 필요도 집을 가질 필요도 없다. 부모님의 집에서 자면 되고 부모님이 때 되면 해주는 밥 먹고 부모님이 벌어온 돈으로 살아가면 되니까.
결국 돌고 돈다. 자식을 위해 일자리를 얻고 수도권에 집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부모님 세대, 제로섬의 법칙에 따라 일자리가 없어서 부모 집에 머물고 무전취식하거나 일자리를 구하면 집을 구해주기 원하는 우리들. 아직도 밥 달라고 삐약 거리는 것 같은 자식들을 보며 부모님은 더 열심히 재산을 지키고 일을 알아본다. 악순환은 반복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떻게 끊어야 할까? 방법은 하나다.
경제적으로 독립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