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능력 사이

어느 길을 가야 할지 고민하는 80년대 생을 위하여

by 수리향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둘 중에 하나를 정해야 할 때가 온다. 눈 감고 내 일만 할지, 아니면 사내 정치에 끼어들지. 교감, 교장 외에는 사실상 승진이라는 개념이 없는 교직에서 조차 사내 정치가 활황이니 한국 사회에서 인맥과 정치를 빼면 직장 생활을 어찌 설명할까. 결국 80년대 생들은 어리바리 신입 티를 벗으면 자신의 길을 결정한다. 화려한 직장 생활을 위해 정치질을 할지, 아니면 오물에 발을 빼고 내 일만 열심히 할지. 나? 나는 오물통을 걷어차 버리는 쪽에 속한다. 물론 오물통을 뒤집어쓰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일뿐...


프로 불편러였던 내가 속한 세상은 철밥통의 세계. 그곳에서 연공서열에 의한 서열과 인맥에 의한 정치질 밖에 남지 않았다. 교과서적인 능력주의는 신입 한 달 만에 저 멀리 날아갔고 결국 이 바닥은 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정치질로 이루어지는구나. 이것을 일찍 깨달은 동기들은 열심히 바깥 활동을 하며 웃는 얼굴로 인맥을 쌓아 왔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본받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 아닌가?


나의 어린애 같은 생각은 한국 사회에서는 가져서는 안 되는 생각이었다. 철저히 서로 밀고 끌어주는 조직을 만들어야 했던 그들은 잘하는 사람이 자신의 울타리 내에 있지 않으면 철저히 배척하고 밀어냈다. 결국 이러한 조직문화를 고수한 교직은 코로나 19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괜찮은 젊은 교사들의 상당수는 '겸손'해야 하는 교직 문화 상 잘 나서지 않고, 연구 활동에 활발한 교사들도 본인의 능력을 기르는 것보다는 인맥만 길러 왔으니 발전이 없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내년이 되어도 원격 교육이 잘 정착될 것 같지는 않다. 뭐 백신이 있으니 몇몇 잘하는 분들을 방패로 1년만 버티면 되겠지. 그리 생각하는 것 같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분명히 사회생활에서 정치질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너무 믿고 자신의 능력을 키우지 못하면 결국 변하는 세상이 복수를 한다. 코로나 19 대응 원격 교육 환경을 만들라고 했을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그동안 꾸준히 공부했던 IT 기술들과 그것을 배우기 위해 다녔던 방송대에서 보고 들은 교육 방식들이었다. 세상은 직선으로 발전하지 않고 계단 모양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변화를 거부하더라도 어느 정도 역치에 달했을 때 결정적인 사건에 의해 발전은 폭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 19에 당해 10년 치 정보 통신의 발전을 앞당겼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파도는 결국 거부할 수 없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80년대 생, 우리들은 기존의 변화보다 빠른 주기의 변화의 한 복판에 서 있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질도 대신 일을 해주지 않는다. 빠른 세상의 변화로 단순히 몸빵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지금은 정치 아닌 능력치를 길러야 할 시대다. 한 전공만 죽어라 팠던 무식했던 우리와 달리 90년대 생들은 경영학도가 컴퓨터 프로그래밍까지 잘한다. 공학 대학원을 오니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90년대 학우들이 참 많다. 나는 너무나 어렵게 과를 바꾸었는데 90년대 생들은 유연하게 다른 과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공부한다. AI에 밀려 남은 자리들은 결국 이런 이들이 차지하게 된다. 직장 생활과 동시에 정치질만 보고 배웠던 우리는 어디로 가란 말인가?


80년대 생이여, 우리 모두 공부하자.


내 분야가 아니더라도 유연하게 공부하고 내 업무에 대한 능력을 기르는 길만이 중간에 낀 우리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 모두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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