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추억1/Wangen의추운밤

해뜨는 언덕/ 존넨할데 가스트호프

by 이정화

나의 신혼은 1983년 독일 Wangen이란 아주 작은 시골마을의 한 여관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17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 츄리히에 내려 다시 기차를 타고 독일 방엔에 도착,

커다란 이민가방을 끌며 철길을 건너

남편이 공부하기로 한 연구소로 찾아갔을땐 이미 해가 까맣게 져있었다.

어둠속에 나타난 우리를 본 연구소장은

독일에서 주는 돈으로 유학을 온 남편이

대책없이 아내까지 데려온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로써 1인기숙사는 쓸수없게되고ᆢ 우리는 그 늦은 밤, 연구소식당에 남아있던

빵과 버터를 얻어먹고 소장이 급히 찾은 여관에 짐을 풀었다.

무릎까지 빠지도록 눈이 쌓인 작은 시골마을은 네시만 넘어도 해가 지고
상가도 문을닫아 마을전체가 깜깜했지만
크리스마스트리의 알전구가 드문드문 거리를 비추던 12월이었다.


바야흐로 성탄을 앞둔 세상은 은성하고 평화로움속에 반짝일때,
기숙사대신 여관에 머물게돼 계획보다 지출이 커진 우리는 생활비를 아끼려
동네맛집인 그 여관의 식당을 놔두고 슈퍼에서 양파망에 파는 제일 싼 빵과 버터,

잼을 사서 눈내리는 창가에 두고 며칠을 먹었다.

작가 전혜린의 독일유학시절을 생각하며 나의 그것을 남의 가난쯤으로ᆢ
심지어 '전혜린'이니, 아스라한 낭만정도로 치환하며

굳어가는 찬빵을 라지에타위에 얹었다 먹던 것도 몇날ᆢ 더이상 생목이 올라

딱딱한 맨빵은 못 먹게될 때쯤, 철없이 눈물을 흘린 내게
남편이 어디선가 구운닭 반마리를 사왔다. 그야말로 성냥팔이소녀가 성냥불속에서 바라본 환상의 칠면조처럼 얼마나 맛있던지 ᆢ 다시 물씬 행복해진 우린 크리스마스땐 보란듯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날, 식당에 갔지만
첫달장학금도 받기전이라 메뉴 중에서 제일 싼 굴라쉬스프를 시켰다.

늘 맨빵만 씹어댔으니 뭔가 뜨거운국물이 가장 먹고싶던 때기도 했다.

빵 두쪽과 나온 스프를 맛있게 먹고있을때, 그것만으론 식사량이 부족해 보였는지
빵을 더 가져다주신 여관 주인할아버지가
동양인은 쌀을 먹는다는 걸 듣고 특별히 밥 한접시를 해다주셨다.
불면 훌훌 날아갈것같은 밥이었지만 잊을수없는 최고의 성탄만찬이었다.

식사후 주인부부는 자신들의 거실로 우리를 초대하였고, 오래된 피아노가 있어
독어라곤 인사밖에 못하던 나는 주인부부를 위해 '고요한 밤'과
내가 아는 독일노래 '소나무' '숭어'를 쳤다. 그리고 리본으로 묶은 체리초콜렛과
심심할때면 언제든 피아노를 쳐도좋다는 허락도 받아냈다.


다음날, 크리스마스에는
방엔에서 기차로 한시간쯤 거리인 린다우에 갔다. 린다우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접하고있는

'보덴제'라는 호수마을이었다.
가깝긴 했지만 큰맘을 먹고간 린다우에서 우리가 한 일이라곤

골목을 산책하다 커피한잔을 사먹고, 오들오들 떨며 등대밑에서 겨울햇볕을 쪼이고

가진 돈 전부를 몇번씩 세어본것뿐이다.
그리고 여행비와 여관비를 꼼꼼이 비교한뒤

성탄부터 연말연초로 이어지는 연구소의 긴 연휴를 공연히 여관비를 내고 머무느니
어디든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방을 빼고ᆢ이민가방을 여관주인에게 맡기고ᆢ남편이 그전에 함께 지냈던

슈트트가르트의 선배를 찾아갔으나 만나지못하고ᆢ

다시 어찌어찌 연락한 독일인친구와 여자친구, 루디와 마티나가 자기들이 동거하던 집으로 오라해
친구커플보다 먼저 집앞에 도착해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소변이 너무 마려워 동네를 뛰어다니며 공중화장실을 찾던 기억도 있다.


루디와 마티나는 하나뿐인 침대를 우리에게 내주고
둘이선 한 슬립핑백에 들어가 잤는데
슬립핑백비닐이 밤새 어찌나 바스락거리던지
미안함에도 은근히, 예민해졌던 느낌도ᆢ


더이상 물러설데가 없는 절박함이었을까.
송년과 연초는 다른도시에 있는 본가와 사촌네집에서 지낸다는 친구커플에 동행해
어쩐일인지 자동차 바닥에 구멍이 뚫려 길바닥이 다 드러나보이고,

탈때마다 쾅쾅 손바닥으로 몇대씩 쳐줘야 문이 열리던 루디의 낡은 자동차를 타고
루디어머님댁에 가 하루를 묵고ᆢ
다시 다른 도시의 사촌형제들이 모두모인 사촌집에까지 따라가

밤새 불꽃놀이를 하며 새해를 맞고ᆢ

돌아보면 정말로 깊은 은혜속에 온갖 민폐짓을 하고
다시 방엔으로 돌아와 눈쌓인 밤길을 걷다

성당마당을 지날때 열쇠 하나를 주웠다.

우리도 곧 방을 찾을수있을거라는 계시를 받은듯 기뻐 그 열쇠를 간직하며ᆢ

시골마을에선 통 나오지않는 셋방을 기다리며 ᆢ 맨빵의 허기를 도저히 못참고

여관방에서 몰래 전기밥솥에 밥을 해먹어 경고를 받기도 하다ᆢ

드디어
'너희나라에선 피리를 불면 뱀이 춤을 추냐'고 궁금해하던 할라하씨 집 다락방에 살게되기까지ᆢ
'집을 찾을때까지 잠시만' 이라고 생각했던 그 Gasthof, Sonnen halde (해뜨는 언덕 여관)에서

우리가 지낸 것은 그로부터 두달이나 되었다.


한국에선 부모덕에 가장 편안하다
어쩌면 생활만은 급격히 바닥이었던ᆢ 그러나 꿈과 낭만만은 다락처럼 높았던

'해뜨는 언덕'의 시절이 이즈음, 특히 추운밤이면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