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과그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화 Aug 04. 2020

폴 앤 빈센트  / 이상한나라의그림들

비오는 여름날 아무그림의 기억/오일파스텔


2013년 11월의 어느날
아를엔 오락가락 비가 내렸다.
많이 내리지 않았는데도 우산이 뒤집혀
비를 맞고다니기도 우산을 쓰기도 그랬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던
론강 계곡의 미스트랄 바람이 불어왔던지ᆢ

겨울초입이라 비가 그친 뒤에도
고흐가  사랑했던 별이나 햇빛은 보지못했다. 가난하나 열정적이던 고흐가 살아있을때에  
더욱 빛났을 반 고흐 카페도
흐린 대기속에 노란색만 선명했고
그가 머물던 정신병원도 여기저기 작은 꽃들이 핀 정원에 세워져있던  고흐의 그림사진만이
그의 흔적을 일러주었을 뿐
미술소품과 공예품들의 전시회가 열리고있어
마을회관같은 분위기였다.

강변어딘가에 세워져있다던 별이 빛나는 밤 사진은 찾지못한 채, 론강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아마도 고흐가 걸었을 강변과 들길을 걸으며 이 별것아닌 작은 마을이 고흐가 사랑한 마을이란 의미때문에 빛나게 남은 것을 떠올렸다. 사랑했다면 빛나게 만들어야ᆢ

***

어제도 인터넷으로 그림을 구경하다 다시 고흐의 그림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폰이나 컴퓨터에 따라 그림 색이 달라보인다. 심한 근시와 난시에 백내장과 노안까지 온 내 눈이 그런건지,  백과사전이나 블로그 등의 검색출처에 따라서도 사진의 색이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비전문가인 내겐 무엇이 더 정확한지, 좋은지 모르니
고흐그림은 어느것이든 내겐 그의 흔적과 함께 고흐일 뿐이다.

미술공동체를 꿈꾸며 고갱과 함께 살기로 한 고흐는
고갱을 기다리며 아를의 노란집을 장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1점의 해바라기 연작 중에 일곱점을 그때 그렸는데 동생 테오에게 아주 멋진 그림이 될거라고 기대에 차 편지를 썼다고한다.

제일 크고 맘에 드는 해바라기 그림 두 점을 방에 걸며 고갱을 기다렸을 고흐ᆢ백년후의 나에게도 고흐의 외로움과 천진난만한 설렘이 느껴지는데 고갱에겐 그의 그림이 썩 마음에 들지않았을 것이다.

사물의 보이는 인상을 중시하던 고흐와
그 속에 작가의 상상을 강조하던 고갱은
서로 다른 미술관으로 다툼이 잦았고,  
고갱은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를 상상해
직접 그리기도 했는데
고흐자신은 고갱에게 한번도 그런모습을 보인적없으니 그 역시 고흐 마음엔 들지않았다.

결국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 뒤,
고갱은 뒤도 안돌아보고 아를을 떠났는데
그날은 하필 크리스마스 이브날이었다.
(그게 그날인게 중요한진 어느기록에도 없지만
아무튼 난 고갱을 위해  해바라기를 그리며 방을 꾸미던 고흐의 시간을 아니까 더 섭섭!!)

그뒤 고갱은 고흐를 한번도 다시 만나지않았고 그럼에도 훗날 고흐는
고갱의 그림속 얼굴이 자신의 피곤한 모습과 닮았다고 인정하였다고 한다.

그림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를 알면
그림은 그냥 명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인다.
그래서 또 어설프게 고흐의 '12송이 해바라기'와 고갱의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를 그려보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같으면
어린애가 흉내를 내도 이보단 잘 그릴지 모르지만
난 그럴 재주가 없으니  
이걸 따라그렸다고도 말할수없다.
게다 유화도 아닌 크레파스다. (굳이 말 안하면 고흐나 고갱과 연관짓지도 못할 완전히 다른 이상한 그림...)

그러나 혹시 고흐와 고갱이 이걸 본다면
'이것도 그림이냐'고, '이런걸 감히 흉내라고 냈냐'고 동시에 버럭했을테니
나에겐 그 둘을 후원하던 테오도 못한 스킬이 ~~
고흐와 고갱을 단번에 한편인
미술공동체로 묶는 기술이 있달지 ᆢ

널리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예술의 가치라면
고흐와 고갱은 '혼자서 즐기는 나의 유치한  그림놀이'속에서 더 높아진다.
사랑하면 빛내야하지만서두
그러지못하면 자꾸 보고 또 보고ᆢ

매거진의 이전글 밤의 카페테라스/고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