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ne Sep 09. 2024

로드킬 목격자

나는 아직도 그 10초에 머물러 있다



두 손으로 가볍게 들릴 솜사탕 같은 강아지가 차에 치이는 소리는 '쾅' 보다 '캉'에 가까웠다. 솜털 같은 강아지에 비해 자동차는 무쇠처럼 단단했다. 강아지는 첫 충돌에 머리를 부딪혔다. 정신을 못 차리고 몸부림쳤다. 강아지는 제 머리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몸은 머리를 따라 어쩔 수 없이 격렬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작고 짧은 다리는 향할 곳을 잃고 제 주인을 차도 안쪽으로 이끌었다.



두 번째 충돌. 방금까지 격렬했던 움직임이 가벼운 파열음과 함께 멎었다. 뜨겁고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작은 솜뭉치가 위태롭게 놓여있었다. 사실 강아지가 위태로운 건 아니었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강아지는 그 순간 숨이 멎었다. 불안한 건 내 마음이었다.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충격과 함께 머릿속이 시끄럽게 텅 비었다. 차가 쌩쌩 달리는 8차선 도로에서 어느 차도 작은 강아지를 보고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지 못했다. 횡단보도 앞에 선 나는 저절로 벌어진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고, 휘둥그레 커진 눈은 가리지 못한 채 세상에서 가장 긴 신호를 기다렸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질문이 가득할 거다. 강아지는 어쩌다 도로에 뛰어들었나? 강아지 주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강아지 리드줄은 없었나?


내가 강아지를 처음 본 건, 그 강아지가 죽기 딱 10초 전쯤이었던 것 같다. 지하철을 타러 남부터미널역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왼쪽으론 차가 쌩쌩 달리는 차도가, 오른쪽으로는 벽을 타고 자란 나무와 풀이 무성했던 것 같다. 저 멀리서 포메라니안처럼 생긴 작고 동그란 강아지가 뽈뽈뽈 걸어오고 있었다.


진짜 귀엽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순간, 그 옆의 견주를 봤다.


어?


견주와 강아지를 잇는 줄이 없었다. 그 순간 강아지는 순진하게 제 속도를 높여 순식간에 차도로 뛰어들었다. 강아지는 지구로 떨어지는 불타는 운석을 피하는 작은 생명 같았다. 크게 놀라며 달리는 차를 피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캉, 하게 된 거다. 10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견주는 작고 날쌘 강아지를 잡을 없었다. 견주의 돼! 하는 작고 후회 섞인 비명은 근처에 있던 나와 다른 행인만 들을 있었다. 차도로 뛰어들지 견주는 그대로 번의 캉, 캉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 목줄을 하지 않았을까? 대체 왜 이렇게 위험한 도로에서 그냥 강아지를 풀어놓은 거지? 왜 내 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내 앞에서 사건이 일어났을 뿐이다.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자 견주는 빠른 걸음으로 강아지를 향해 걸어갔다. 축 늘어진 강아지를 두 손으로 안고 어디론가 향했다. 정말 침착해 보여서 곁으로 다가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바로 앞에서 죽음을 목격하고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남부터미널역으로 마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종종 그 강아지 생각이 난다. 짧은 관심과 애정을 비친 순간 생명을 다한 강아지의 죽음, 그 충격이 나에게 꽤 컸다. 첫 번째 충돌 이후 정신을 잃고 더 깊은 차도로 뛰어들어간 강아지의 몸부림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요즘은 내가 그 강아지랑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 번 치였을 때 가만히 있었으면 죽진 않았을 텐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뛰어다닌 바람에,

자기가 차를 이길 수도 없는데,

아니 차가 뭔지도 모르면서,

날 덮칠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이 덮치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스스로 패닉에 빠지다 보면 그 강아지 생각이 나는 거다. 아, 그 강아지가 그래서 멈출 수 없었구나. 캉, 하고 한 번 치이면 시야가 좁아지고 눈앞의 차를 피하기 위해 두 다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달리는 거구나. 일단 달려야 살겠으니까.


요즘, 그 작은 생명의 죽음이 어쩐지 자주 생각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