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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e Oct 21. 2024

이석증 10년 차, 잘 살지만 아직도 힘듭니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질병의 특징은 무엇일까? 소화불량, 두통, 근육통... 대부분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달리 말하면, 특별한 원인은 찾기 힘들고 컨디션 관리를 잘하는 수밖에 없다. 약도 일시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진통제가 대부분이다. 


이석증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원인도, 예방법도 없단다. 그저 컨디션 관리, 비타민 D를 잘 보충해 주라는 말밖에 듣지 못한다. 약도 치료제가 없다. 그저 어지러움을 덜 느끼게 하는 멀미약이 전부다. 앞선 현대인들의 질병과 다르게 이석증은 일상생활이 힘든 어지럼증을 동반한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심한 이석증을 앓고 나면 몇 개월 간은 그 트라우마에 시달려 정신적인 불안과 우울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그렇다. 하지만 또 특별한 치료약도 없어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 첫 이석증은 고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일 학교에서 새벽 1시쯤 귀가하고 아침 6시 반쯤 기상해 다시 학교를 가는 게 일상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났다. 잡생각을 지우고 화장실에서 고개를 푹 숙여 긴 머리에 샤워기를 갖다 댔다. 그 순간,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어지러움이 날 덮쳤다. 내 머리를 누가 두 손으로 쥐고 심하게 흔드는 것 같은 어지러움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나 빼고 온 세상이 계속 뒤집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심장이 빠르게 뛰고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때 당시 '기절할 것 같았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건 아마 이석증이 안구진탕을 동반하기 때문에 눈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리고 돌아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K-고3의 의지력은 대단했다. 그날 첫 지각을 했다. 0교시는 스킵하고 1교시 전에 등교를 마쳤다. 벌렁거리는 심장과 혼란스러움을 애써 무시하고 학교에 와서 강박적으로 문제집을 꺼내 풀었다. 지금 다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하나의 정신병이 아니었나 싶다. 이석증이라는 신체적인 질병을 고3의 정신병으로 외면해 낸 것이다. 그날도 자정까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을 빼먹지 않았다. 난 또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에 집에 들어왔고, 잠에 들었다.


그 뒤로 종종 세상이 빙빙 돌고 눈도 함께 돌아가는 어지럼증을 겪었다. 수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날의 아침, 술을 진탕 퍼먹느라 컨디션이 안 좋았던 스무 살의 어느 날 아침, 몽롱하게 잠에서 깬 새벽,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던 아침, 평범한 집 데이트를 즐기던 어느 날의 저녁 등... 증상의 강도는 때마다 달랐다. 어느 때는 그냥 무시하고 다시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였고, 어느 때는 즉시 모든 일을 중단하고 변기를 부여잡고 구토만 할 만큼 증상이 심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니까 올해 4월, 내 인생 가장 강력한 이석증이 날 찾아왔다. 나는 한평생 옆으로 돌아 누워 잤다. 그날도 역시 옆으로 누워 자 옆으로 누워 깬 날이었다. 역시 눈을 뜨자 이석증이 시작됐다. 눈이 핑핑 돌면서 세상도 돌기 시작했다. 아, 또 왔구나. 익숙한 이석증을 맞이하며 눈을 감고 어지럼증이 가시길 기다렸다. 1분 남짓한 어지러움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났다.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와 다르게 보행도 힘들고, 구역질이 심하게 났다. 누워있지도, 앉아있지도 못했다. 


그날, 이석증 10년 차에 처음으로 이비인후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내 머리를 양손으로 잡으시고 오른쪽 왼쪽으로 훽 훽 돌리셨다. 세상 살면서 그렇게 고통스러운 질병 검사는 처음이었다. 이석증 검사를 하느니 코 찌르는 코로나 검사는 천 번, 만 번은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석증 검사를 하니 바로 이석증 진단이 나왔다. 검사를 하다가 중단하고 화장실에서 구토도 여러 번 했다.


이제 치료를 해야 한단다. 치료는 무식하도록 간단하다.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돌이 빠졌으니 이 돌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고개 휙휙'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다. 바비큐법이라고도 한다. 바비큐처럼 내 고개와 몸을 휙휙 돌리는 것이다. 이 치료를 하면서도 얼마나 구역질을 참았는지 모른다. 그냥 기절해버리고 싶었다.


그 이후 딱 반년이 지난 10월이다. 난 그날 이후 옆으로 돌아 누워 자지 못 한다. 옆으로 눕기만 하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그러는 건지, 정말 이석 찌꺼기가 남아서 인지 어지러움이 잔잔하게 느껴진다. 이석이 빠질 것 같은 아찔한 기분이 있는데, 그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6개월째 강제로 똑바로 누워서 자는 취침법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렇게 잘 자고 있었다. 처음 두 달은 불면증으로 꽤나 고생했지만 요즘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석증이 [중강] 강도로 재발했기 때문이다. 새벽에 한 서너 번 깬 것 같다. 서너 번 모두 이석증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아침에도 그랬다. 그냥 일어나서 일상생활을 하면 괜찮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몸을 일으켰다. 이상했다. 화장실로 걸어가는 내내 어지러움의 여운이 짙었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아, 또 큰 게 왔구나.


이 죽일 놈의 이석증. 언제 나를 놓아줄 건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기립성 저혈압에서 느끼는 어지러움이나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를 탈 때 느끼는 어지러움과 차원이 다르다. 40대 이상 중년 여성에선 꽤 흔한 질병인데, 이 이석증을 잡아내는 약이 아직도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어쨌든, 난 이 어지러움을 안고 오늘도 잘 살아가고 있다. 이석증을 처음 겪어 패닉을 겪고 있는 동지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만성 이석증을 겪고 있는 나의 동지들에게는... 우리 같이 힘냅시다, 라는 말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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