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팔 여자가 말하는 비상계엄령 전 10년

비상계엄령에 맞서는 2030 여성들의 서사

by 김원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보자. 당신은 몇 살이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나는 열여덟,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엄한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못난 부반장이기도 했다. 수학여행 장소로는 온종일 봉사 활동과 죽음 체험을 한다는 꽃동네가 예정되어 있었다. 차라리 가기 싫다는 철없는 소리를 내뱉던 평범한 하루,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동갑내기 친구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 전문 용어가 나서야만 고개를 내미는 그 희박한 가능성이 온종일 뉴스거리가 되었다. 우리 엄마 아빠와 비슷한 또래의 아줌마, 아저씨들은 온종일 오열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따른 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그 사이 몇 사람들은 축축하게 젖은 삶을 건져냈다. 한 해 전 제주도로 미리 수학여행을 다녀온 나의 삶은 고요하게 계속되었다. 어른들은 실패한 인생을 살지 않으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매일 자정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했다. 대입 전형에는 단원고 특별전형이 유례없이 신설되었다. 형평성 논란으로 세상이 또 떠들썩했다. 나는 그 누구도 밉지 않았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다가 죽은 친구들과, 가만히 앉아 공부를 한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같았다.


2016년, 대학교 신입생이 되었다. 서울에 올라왔더니 몇몇 어른들과 또래 친구들이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참사를 잊고 싶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새파란 젊음을 누렸다. 세상은 그렇게 흘렀다. 정치에 대해 눈을 빛내며 배우다가도 열두 시가 되면 금세 잊고 다 같이 브리또를 먹었다.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5월, 강남역에서 나보다 세 살 많은 또래 여성이 이유 없이 살해되었다. 나는 몇 달 동안 지하철 화장실 근처에도 가지 못 했다. 조심해,라는 안부 인사는 소용없었다.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연락은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관례가 되었다.


그해 가을엔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온 나라를 왈칵 뒤집었다. 교수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촛불을 들고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 정경유착과 불합리한 일들이 속속 드러났다. 이듬해 봄에 대통령은 탄핵되었다. 처음 맞는 후배에게 밥을 사주겠다며 나서는 길이었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잘못을 저지른 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는 것을 보았다. 처음으로 정치 뉴스를 보며 웃은 날로 기억한다. (비웃음과 조롱의 웃음은 빼고.) 세상에 희망이 있는 것 같았다.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부조리하고 억울했다. 2018년, 돈 쓰고 시간 쓰며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차린 클럽에서 여성들은 약물을 주입당하고 희롱당하고 폭행당했다. 그럼에도 수사는 속시원히 진행되지 않았다. 또, 그놈의 유착관계 때문이었다. 다음 해, 2019년, 내 또래 여성 그리고 그보다 더 어린 여성들이 사이버 성폭력에 노출되었다. 성착취에 가담한 인원은 1만에서 3만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정말 조용하고 정상인 것처럼 굴러갔다. 대학교 커뮤니티에는 성희롱으로 가득찬 OO학과 OO학번 남자 단톡방 논란이 심심치 않게 터졌다. 나의 주변 누군가가 나를 성적으로 희롱하고 모욕할 수 있다는 공포는 일상처럼 자리 잡았다.


환멸 나는 나라에서도 우리 또래 친구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면접장에 가면 정말 똑똑하고 유능한 친구들이 많았다. 면접장에서는 경쟁자였지만 면접이 끝나고 나서는 밥 먹었냐고 안부 인사를 건넬 줄 알고, 서로 어려움과 고민을 털어놓을 줄 아는 그런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2년 전, 이태원에서 또래 친구들이 죽었다. 또, 죽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나의 친구들이, 첫 직장을 다니고 있던 사회초년생 친구들이 죽었다.


이십팔 여자에게 10년 전부터 세상은 너무 위험했고 어지러웠다. 당한 부조리가 모두 해결되지도 않았으며, 분노에 공감해 주는 기득권자들은 매번 소수였다. 그사이 거름망으로 걸러지듯 또래 친구들이 계속 죽어나갔다. 죽음에 이유가 없었듯, 나도 이유 없이 살아남아 여기 숨 쉬고 있다. 내가 여기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단지 매일 글을 쓰고, 타인의 존재를 매일 책으로 확인한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국회에 군인이 타고 있는 헬기가 착륙하고, 국회의 창문을 깨고 들어간 군인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또 누군가 죽어나가는 장면의 시작을 목격하는 것일까 봐 목소리가 떨리도록 무서웠다.


다행히 계엄령은 철회되었고 우리에겐 여전히 행동하는 용기가 있다. 요즘 젊은 애들은 끈기가 없다고 욕하지 마라. 이따위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고서도 포기하지 않고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그 요즘 애들이다. 십 년 전 반 친구들과 함께 사 모아 진도 팽목항에 보낸 생리대와 구호 물품의 온기, 또래 여성의 죽음에 분노했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십 년 간 붙잡지 못했던 정의를 오늘이라도 붙잡기 위해 또래 친구들이 추운 겨울에 집을 나서고 있다. 그간의 분노와 비통함, 억울함을 젠틀하게 K-POP 음악에 맞춰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형형색색 불빛으로 증명하고 있다. 누구라도 이 불빛을 꺼뜨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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