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신기하다. 같은 지하철을 탔는데 나의 목적지는 홍대입구역이고 누군가의 목적지는 일본, 태국, 베트남, 프랑스, 이탈리아, 뉴욕이라는 것이. 나는 오늘 밤 익숙하게 폭닥한 나의 침대에서 잠들 것이다. 누군가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2층 침대에서, 누군가는 뽀송한 호텔 침구에 푹 싸여 잠들 것이다. 하루의 시작은 같았을지 몰라도 끝은 날씨도, 시간도 다른 곳에서 마무리할 수 있다는 드넓은 가능성에 때때로 길을 잃은 기분조차 든다.
나는 꽤 자주 캐리어를 들고 지하철을 탄다. 서울역으로, 고속버스터미널로, 김포공항으로, 인천공항으로. 갓 스물이 되었을 때 캐리어를 들고 두 다리로 다른 지역, 나라로 떠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날 설레게 했다. 지금이야 주택가의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도로 위를 요란스럽게 지날 때는 민망하고 불편한 마음이 크지만, 그때는 그 소음마저 나에게 펼쳐진 아름다운 굴곡처럼 들렸다. 요즘은 이른 아침이나 밤에 이동할 때는 주택가 이웃 주민들에게 실례가 될까봐 캐리어를 빨리 끌었다가 느리게 끌었다가 온갖 조용한 난리를 친다. 낭만보다 예의가 우선시했을 때 난 진정 서울 주민이 된 것 같았다.
캐리어를 들고 공항까지 5분에 한 번씩 오는 대중교통으로 간다는 것은 서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자 편리이다. 나의 고향 대전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청주공항이다. 청주공항으로 가려면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공항에 가기 위해 또 비행기표 외에 또 버스표를 예매하고 두어 시간을 추가로 잡아야 한다. 인천공항으로 갈 때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집에서 대충 나와 5분에 한 번씩 어김없이 오는 지하철을 타고 몸을 실으면 지도 어플이 알려준 예상도착시간 부근에 오차 없이 도착한다.
캐리어를 들고 지하철을 탄 사람들을 자주 본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화장을 한 앳된 친구들, 은은하게 설레는 미소를 짓고 핸드폰을 하는 사람들(아마 이제 공항으로 출발한다는 카톡을 보내고 있을 거다), 꼿꼿이 허리를 핀 사람은 보통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행선지가 어디일지 캐리어의 크기를 보고 짐작하곤 한다. 보통 기내용 캐리어 하나로 가는 사람은 제주도나 일본이겠지? 캐리어 사이즈가 24인치, 28인치 정도 되면 일본이나 동남아로 가는 맥시멀리스트거나,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반면 경량화된 짐으로 가득 찬 대형 백팩을 멘 사람을 보면 동경심이 생긴다. 저 사람의 행선지가 어디든 간에 그의 모험이 궁금해진다.
같은 지하철을 탔지만 각자의 목적지는 국가 단위로 다르다. 이를 떠올릴 때마다 같은 지하철에 탄 별 차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개인인지 실감한다.
이래서 서울에 살면 다양한 사람을 보게 된다는 것 같다. 정확히는 다양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어디까지 갈지 선택하고, 그 선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 지하철이다. 대전에 살았다면 공항에 가는 캐리어 든 사람들을 볼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대전역 근처에서나 자주 볼 수 있으려나.
나는 지금 이 글을 제주국제공항 국내선, 3번 탑승구 앞에서 쓰고 있다. 실컷 지하철 이야기를 떠들어 놓았지만, 나는 김포공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캐리어를 들고 시내버스를 타는 건 최악이다. 캐리어를 둘 곳도, 함께 앉을 곳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내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운데 캐리어까지 간수해야 한다. 버스가 출발할 때마다 흔들리는 내 몸. 정차할 때마다 마음대로 굴러가는 내 캐리어...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해야겠다. 서울에 살아도 지하철 역세권에 살지 않으면 떠나고 돌아오는 길이 조금 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