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는 사람

by 김원

나는 고스톱으로 사십억을 딴 사나이를 본 적이 있다. 도박장도 아닌 지하철에서. 그는 자신 있게 4 GO를 외쳤고 화면에는 사십억 냥 획득...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판을 삼켜버린 그의 표정은 여유롭다 못해 권태로웠다.


긴 거리를 지하철로 이동할 때 가장 큰 고민은 시간을 어떻게 때우느냐다. 그냥 때우는 것도 아니다. 날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의 존재를 잊고, 나와 핸드폰 속 콘텐츠만 남아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는 것이 유튜브 영상, 쇼츠 같은 것이다. 여기에 게임을 빼놓을 수 없다.


지하철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의 종류는 다양하다. 고스톱, 자동사냥 게임, 피크민, 궁수의 전설, 루미큐브, 마이리틀셰프, 마블스냅... 눈치챘겠지만, 다 내가 지하철에서 종종 하는 게임들이다.


게임을 하면서 출근을 하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점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아침부터 작은 성취를 이루며 회사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를 살며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일까 고민해 보자. 자주 느끼기 힘들 것이다. 동료에게 인정받을 때, 상사로부터 칭찬을 받았을 때... 이런 순간은 그리 흔히 마주하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


지친 몸을 이끌고 아직도 멍한 뇌를 깨울 겨를 없이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아침 샤워를 제정신으로 한 건지 잠꼬대로 한 건지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몽롱한 상황. 좀비처럼 핸드폰을 손에 들고 게임을 시작한다.


그동안 일구어놓았던 나의 희귀 아이템 혹은 높은 레벨을 본다. 뿌듯하다. 사냥을 시작해 볼까.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어 아슬아슬한 컨트롤로 몬스터를 잡고(궁수의 전설), 머리를 써서 카드를 다 털고(루미큐브), 세계 이곳저곳의 요리를 시간 내에 수십 접시를 요리하고 나르고(마이리틀쉐프), 초능력 몇 번을 쓰다 보면(마블스냅) 회사에 도착해 있다. 집에서 회사에 도착했을 뿐인데 게임 속 나는 레벨 업 되어 있다. 보상 선물로 아이템 상자도 받았다. 이따 점심시간에 까봐야지, 하고 뿌듯하게 회사 문을 활짝 연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게임도 즐길 땐 매너가 필요하다. 이건 내가 스스로 다짐한 것이기도 하다. 내리는 역에 가까워 올 때는 새 게임을 시작하지 않는다. 우선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내리는 역을 놓치는 일이 다반사다. 꼭 이렇게 역 한 두 개를 더 가서 반대편 열차를 타면, 그 열차는 제 때 오는 법이 없다. 지각 확정이다. 그러니까 내리는 역이 가까워 오면 새 게임을 시작하지 않는다.


남을 위해서도 그렇다. 설령 목적지에 잘 내렸다고 쳐도 게임을 끄지 않으면 문제다.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의 걸음이 다른 사람들의 걸음보다 빠른지 느린지도 모른 채 좀비처럼 걷고 있는 사람을 앞에 두면 정말 답답하다. 실수인 척 핸드폰을 떨어뜨렸으면 하고 못된 상상을 하게 된다. 스크린도어가 여닫히고 계단이 많은 지하철 역 안에서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꼭 주위를 살피며 걷는다.


누군가는 게임을 인생의 낭비라며 비웃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성공으로 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수단이다. 솔직히 그 성취가 하루의 유일한 기쁜 일이 될 때도 있다. 게임 안에서는 못된 말을 하며 날 괴롭게 하는 존재도 없다. 나보다 잘난 놈도 없다. 그저 게임 좀 더 잘 하는 사람, 못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저 내가 도전한 것에 대한 장애물이 던져지고, 나는 그것을 격파하거나 넘어갈 뿐이다.


평범한 내가 용감한 궁수이자 히어로, 브레인이자 흑백요리사가 될 수 있는 이곳은 바로 지하철이다. 오늘부터 주위를 살펴보자. 얼마나 많은 용사가 지하철에 있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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