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돗자리나 선글라스를 파는 상인보다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가진 떠돌이 의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의사가 바쁜 날엔 물리치료사만이라도. 나는 정형외과보다 지하철에서 거북목 환자를 더 자주, 더 많이 본다. 아마 지하철을 떠돌며 사람들의 굽은 어깨와 목을 살피고 조언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국경없는 의사회에 소속된 의사만큼 존경받는 의사가 될지도 모른다.
지하철에 타면 앞을 보는 사람이 없다. 약간 고개를 숙이고, 다리 사이 혹은 가슴 앞에 자기 손만한 스마트폰을 들고 그 속을 들여다 본다. 시선은 아래로, 아래로, 계속 아래로... 가끔 지하철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는 급한 얼굴만 정면이나 위를 볼 뿐이다.
어느날은 동화책에서 볼 수 있는 거북이처럼 목을 쭈욱 내밀고 핸드폰을 집어삼킬듯 보는 남자를 보았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였다. 목이라는 부위가 참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주위를 확인할 때도, 다시 말해 스마트폰 화면을 보지 않을 때도, 앞으로 쭉 내민 목을 그대로 둔 채 작고 둔탁한 눈꺼풀 아래 잡곡같은 눈동자만 휙, 휙 잽싸게 움직일 뿐이었다. 맙소사. 정체도 모르는 타인에게 제발 병원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있느냐 하면, 바로 유튜브다. 타인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본 적 없지만 우연히 보게 된 화면에 아는 사람이 떠들고 있으면 괜히 반갑다. ‘어, 나도 저 사람 구독자인데, 새 영상 올라왔구나. 옆에서 같은 영상 보고 있으면 좀 눈치 보이니까 집에 가서 봐야겠다...’ 라고 몰래 생각한다.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을 가볍게 관찰하다 보면 이 나라가 분열과 갈등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이들은 모두 똑같은 자세로(거북목), 똑같은 것을 바라보고(스마트폰, 유튜브) 있는데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나는 이처럼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장난감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가볍게 찾아보니 2024년 기준으로, 잠실역에서만 하루에 약 15만 명이 타고 내린다고 한다. 모든 역을 합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하철에서 같은 자세로 저마다의 휴식과 고민을 조용히 곱씹고 있는 것인지.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나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들과 젊은 사람들이 먼저 생각난다.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보는 할아버지들 중 몇몇은 정치 채널을 본다. 그들이 보는 영상의 자막은 글씨 크기가 큰 편이다. 폰트 컬러는 새빨간 레드, 볼드한 돋움체(혹은 궁서체)에 테두리가 하얀색으로 처리된 위급한 제목을 단 영상이 그들의 피드에 가득하다. 머리가 하얗게 샌 남성이 정장을 입고 나와 무언가를 전달한다. 내가 모르는 심각한 뉴스가 저렇게 많았나. 같은 나라에서, 같은 사회에서, 아니 같은 지하철을 타고 있는 사람이란 것이 때론 낯설다.
유튜브로 소설을 읽어주는 영상을 보는 할아버지들도 몇몇 보았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나는 남의 핸드폰 화면을 훔쳐보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나도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다. 검은 백그라운드 화면에 크고 흰 가독성 좋은 글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화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어떤 화면은 그저 가을 단풍 화면 같은 이미지 위에 소설의 제목과 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계신 걸 보아하니 소리로도 읽어주시는 것 같았다. 신체의 노화로 소설을 읽기 힘든 노인들에게 저런 채널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 그중에선 음란한 소설을 보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이건 지하철은 아니고 시내버스의 대각선 앞자리에 앉은 할아버지였다. 글씨가 너무 커서 나까지 너무 민망했다.
나만 그런 건지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보는 할머니는 자주 보지 못 했다. 그녀들은 보통 큰 글씨로 확대된 카카오톡이나 문자 메세지 화면을 띄우고 있다. 주로 안부를 묻거나 답한다. 가끔 정치 유튜버의 영상을 보는 할머니와,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클립 영상을 보는 할머니도 보았다. 하지만 그녀들이 지하철에서 주로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은 내 관찰상 카카오톡 혹은 문자 메세지인 것 같다.
다음으로 유튜브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2030 직장인과 학생들이다. 게임 스트리머의 영상을 보는 사람, 유행하는 고양이 밈이 끝없이 펼쳐지는 쇼츠를 3초에 한 번씩 부지런히 내리는 사람, 십 년 전에 유행했던 드라마 요약본 영상을 보는 사람, 어제 나온 아이브 신곡 무대 영상을 보는 사람... 내 또래라 익숙해서 그런지, 다양한 화면이 눈에 띈다. 엄지 손가락을 화면 귀퉁이에 꾸욱 대고 2배속으로 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요즘엔 꽤 많을 것이다. 이들을 부지런하다고 해야 할까, 나태하다고 해야 할까. 그 답을 찾지 못한 새 어느새 3배속 기능이 제공될까봐 살짝 두렵다.
현미경으로 한 사물을 끝없이 확대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정지되어 보이는 작은 사물을 끝없이 확대한다. 맨 눈으로 봤을 때 보일락 말락 하던 작은 가시 같은 섬유질이 거대한 배경이 될 때까지 확대하면, 그 위에 들러 붙은 미생물이 있다. 그것들은 놀랍게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내 눈 앞에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그 물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믿기 힘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늘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이 영상도 지하철에서 유튜브에서 본 거다. 하하.
지하철을 둘러보다 이 무한 확대 영상이 떠올랐다. 멀리서 보면 다들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하나하나는 숨을 쉬고, 바쁘게 정보를 처리하고 있는 한 사람이다. 이 무수한 영상과 정보를 싣고 무거운 지하철은 끼익, 씨이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달린다. 무겁게 정차한 지하철에서는 몇 명의 무게가 빠져나가고 그만큼 몇 명의 무게가 다시 채워진다. 지하철은 문을 닫고 다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나도 타고 내린 사람들에게서 짧은 시선을 거두고 다시 고개를 핸드폰 쪽으로 숙였다. 아차차, 어깨 피고 목 세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