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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Nov 14. 2019

애 키우면서 어떻게 책을 쓴 거야?

책 출간 이후 자주 받는 질문


육아휴직 기간에 대체 어떻게 책을 썼냐는 질문을 백번쯤 들었다. 처음엔 이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근데 육아휴직을 꿀 빤다고 오해하는 사람들과, 한 것 없이 애만 키웠다는 자괴감을 느끼는 휴직자/전업육아인들을 위해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휴직 기간은 애만 키우기에도 너무 바쁘고 시간이 모자라다.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렵고, 밥을 먹을 시간도, 씻을 여유도 없다. 적어도 회사를 다닐 땐 아무리 바빠도 아침에 깨끗이 샤워를 하고 점심시간에 방해받지 않으며 밥 먹고 차도 마신다. 제때 양치도 할 수 있고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화장실을 갈 수 있다. 일하다가 잠깐씩 쉬고 동료들과 티타임을 가질 수도 있다. 이 당연한 일상이 아기를 키울 때는 불가하다.



이 바쁜 시기에 내가 책을 낼 수 있던 이유는 콘텐츠 자산, 운, 상황 덕이었다. 그중에 하나라도 조건이 맞지 않았다면 책은 나오지 못했다.   




1. 몇 년 간 쌓아 둔 콘텐츠 자산


아이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나는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콘텐츠를 올렸다. 나의 책은 그동안 적립해둔 콘텐츠를 정리하고 살을 붙인 결과물이다. 만약 출산하고 1년의 휴직기간에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해서 책을 내려고 했다면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휴직기간에 시간이 생겨서 만든 콘텐츠가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쌓아온 나의 자산이다.


이 책의 토대가 되었던 드로잉 그룹 '야매스케치'도 마찬가지다. 벌써 4년이나 된 그룹이고 그 사이 정-말 많은 활동을 했다. 일요일 오전마다 모이는 일이 즐겁기도 하지만 모임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그룹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했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몇 번 해산의 위기가 있었으나 이 모임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지금까지 끌고 왔다.   



2. 우연하고 좋은 기회


내 브런치를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시기가 딱 맞았고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기에 두려웠지만 뛰어들었다. 이전에도 출간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땐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회사의 프로젝트가 한참 바빴던 때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기를 키운 지 2-3달쯤 됐을 때 일상에 아기 밖에 없었다.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우울해지던 바로 그때 제의를 받았다. 나도 다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부추겼고, 이제 백일이 지났으니 시간이 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덜컥 계약을 했다.   



3. 남편과 친정 부모님


백일이 지나면 좀 여유로워질 거라는 나의 오만한 생각은 금방 깨졌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휴직기간 내내 아기가 나를 필요로 할지 몰랐다. 나는 육아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히 휴직 기간에 남편과 함께 육아를 했다. 게다가 막판에 작업을 몰아서 해야 했던 두 달 간은 친정 부모님이 거의 매일 와서 도와주셨다. 휴직기간 동안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많은 양육자와 달리, 나 말고도 3명의 어른이 아이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남편과 부모님이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아이가 건강했다.


작업에 몰두하는 기간에 다른 변수가 없었다. 아기는 아프면 오래간다. 그리고 양육자가 계속 붙어있어야 한다. 안 붙어있어도 걱정이 되어 다른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근데 아기는 건강했고 내가 없어도 잘 놀았다.




육아휴직 중에 나온 나의 책이 다른 휴직자들을 괴롭히는 사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비슷한 시기에 육아휴직 썼는데, 난 한 게 없네."
"쉬고 와서 좋겠다. 나도 애나 낳을까."
"내 친구 육아휴직 중에 책 냈어. 너도 휴직하면 놀지만 말고 뭐라도 해봐."

이런 말을 하는 근거로 활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휴직 기간 동안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근데 꼭 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버렸으면 좋겠다. 못하게 되는 상황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냥 상황이 좋았고 운이 좋았다. 육아휴직에는 아이만 키우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혹시 책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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