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마감기한이 생긴다면?

<70세 사망법안, 가결> 감상문

by 수수킴

책: 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독후감을 써본지 20년이 넘은 것 같다. 막상 브런치에 공개적으로 독후감을 쓰자니 덜컥 부담이 된다. 휴.. 하지만 쓰기로 다짐했으니 내 맘대로 술술 써보도록 하겠다.


요즘 교보전자도서관 앱을 통해 무료로 전자책을 빌려보고 있다. TTS(Text To Speech) 기능까지 있어서 설거지할 때 팟캐스트 대신 전자책을 듣기도 한다. 전자책도서관은 내가 원하는 책이 없을 때가 많아서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맘에 드는 걸 골라서 보곤 한다. 소설코너를 보는데 이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70세 사망법안, 가결'? 우리 아빠가 작년에 70세가 되었다. 이젠 먼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옆의 현실이다. 안 그래도 애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이 소설이 궁금해졌다.


한 가족이 있다. 할머니, 엄마, 아빠, 첫째 딸, 둘째 아들. 딸은 요양보호사로 독립해서 집에 없다. 한때 엘리트였던 아들은 3년차 취준생, 여든이 넘은 할머니는 하체를 쓸 수 없어 매일 침대에서 생활하신다. 주부 엄마는 며느리로서 취준생 아들과 시어머니를 돌보느라 바쁘다. 회사원 아빠는 집에 거의 없다.


어느날 국회에서 70세 이상인 사람은 사망해야 한다는 법을 가결한다. 2년 유예기간을 두고 실행할 것이라고 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라 더이상 노인을 부양할 만큼 젊은이가 없고, 연금을 감당하기 힘들고, 이미 부유층이 제일 많은 노년층이 사라져야 젊은 이들에게 기회가 더 생긴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법안이 통과되자 순식간에 나라는 정신없이 혼란스러워졌다. 저 가족을 토대로 이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미 70을 훌쩍 넘긴 할머니는 2년 뒤에 죽을 거란 생각에 허무주의에 빠진 채 냉소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며느리를 대한다. 아빠는 이제 자기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조기퇴직을 하고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 어머니를 위해 고생하는 아내 없이 혼자, 친구와 함께.


흥미로운 점은 이 가족의 구성원 하나하나의 시점으로 소설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아내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아내의 시점에서 상황을 보자니 화가 치솟는다. 어느 가족구성원 하나 아내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녀가 세심하게 매일 챙겨주는 건강한 음식과 집안일이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다. 일본이 한국보다도 여성 인권이 낮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어쩌면 이 분도 나이 든 여자분이라 자기 목소리 내는 걸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나였다면 이미 진작에 이혼했을 것이다. 특히 저렇게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 남편에게 한 마디를 못하고 참고 있는 걸 보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집안의 아들, 아빠뿐만 아니라 할머니와 딸마저도 '집안일 = 엄마', '할머니 돌보기 = 엄마'일뿐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함께 하지 않는다.


<아래 스포 주의>

결말은 안 적었지만 줄거리가 더 자세해집니다.


결국 엄마는 참다 참다 집을 나간다. 엄마의 가출 이후 드디어 이 집안에 변화가 생긴다. 할머니는 매일 기저귀를 갈아주던 며느리가 없으니 손자에게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고, 밥을 달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아들은 3년간 은둔형외톨이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자기 방을 넘어서 할머니방에 가고, 부엌에서 서툴게 요리도 시작한다. 그간 엘리트 학교에 대기업을 다녔기에 부모님의 기대치를 낮출 순 없다는 압박으로 알바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 않나? 많은 젊은이들이 '좋은' 기업에만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몇년씩 취준생으로 산다. 그건 자기의 자존심일 수도 있고, 이렇게 부모의 기대때문일 수도 있다. 취업이 안 되니 자신감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아들 또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가출한 탓에 드디어 자기의 일상을 '스스로' 해내기 시작한다. 밥하기, 외출하기, 거기에 누군가를 돌보기까지. 소소해보이지만 사실 이런 루틴이 얼마나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가! 평소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콘텐츠만 보던 아들은 제대로 감정을 느껴본지 오래됐다. 이제 그는 할머니를 엄마에게 맡기고 혼자 여행을 떠난 아빠에게 제대로 분노를 표출한다.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괴로워하던 엄마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손자인 그는 할머니에게 대놓고 '할머니 목소리 너무 시끄러워! 좀 작게 말해!'라고 표현한다. 동시에 블로그로 염탐하던 옛 친구가 자살할 것만 같아 그를 구출하려고 그의 집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딸은 딸대로 화가 난다. 자기 동생도, 아빠도 엄마가 가출했다고 하니 당연히 여자인 딸이 집에 와서 할머니를 돌봐야한다고 말한다. '너는 일도 안 하는데 왜 굳이 일하느라 바쁜 내가 집에 가서 할머니를 돌봐야해?' '아빠는 뭐하는 거야!'

그동안 엄마가 쏟아내지 못한 분노를 아들과 딸이 아빠에게 직접적으로 표출하니 그나마 속이 시원했다.

아빠는 여행을 떠난지 며칠 안 돼, 아들과 딸의 화난 전화를 받고도 집으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얼마나 이기적인 거지? 마침 그와 함께 떠난 친구가 그를 질책하며 얼른 돌아가라고 한다. 그 친구도 30년 자기를 챙겨준 부인이 병으로 죽을 때까지도 부인의 가치를 몰랐다고 한다. 부인이 쓴 일기장을 보고 땅을 치고 후회한다고 했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친구는 그에게 얼른 가서 엄마를 챙기라고 한다.


움직이지 못하는 할머니는 삶의 낙이 맛있는 음식인데, 손자와 아들이 만든 음식은 영 맛이 없다. 그간 자신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끼니를 차려주고, 똥오줌을 아무 말없이 가려준 며느리가 그리워진다.


엄마는 약간은 빠듯한 현금을 들고와 덜컥 월세집을 얻는다. 한때 똑똑하고 잘나갔던 엄마는 경력이 단절된 지 오래되었다. 잔뜩 기죽어있을 때 분리수거장에서 이웃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귀인이었다. 그 여자는 돌싱녀로, 당당하고 독립적이었다. 그녀는 엄마와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조언을 하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결국 엄마는 경쟁이 치열한 알바시장에서 알바를 따내고 만다. 매점에서 일하게 된 그녀는 처음엔 잘 몰라서 우물쭈물하지만 점점 빠릿빠릿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과연 70세 사망법안은 2년뒤 시행이 되었을까?

그건 한 번 읽어보시길!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됐다는 소식 이후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진짜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은 어차피 살 날이 많지 않으니 더 대담해졌다. 더 이상 참고 살지 않아. 조기은퇴를 하고, 지긋지긋한 시월드에서 가출을 하고 자기 일을 찾아나선다.


70세에 모두가 죽게 된다면 죽음이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죽지만,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 현재 불만족스러운 삶을 참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YOLO족으로 살다가 골로 가는 수가 있지만, 정말 70세에 죽게 된다는 걸 알면 하루하루가 참 소중할 것 같다. 사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모험가이자 몽상가였다. 돈을 모은다는 개념자체가 거의 없었다. 욜로족에 가까웠다. 근데 결혼하고 나서 바뀌었다. 결혼한 지 1년이 되었는데, 순식간에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성향으로 바뀌었다. 돈을 보는 눈이 확 달라졌다. 내가 세속적이라고 싫어하던 부동산, 주식 등에 관심이 가고, 어떻게 하면 더 절약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아끼며 돈을 모으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근데 이것의 전제는 내가 오래 살 것이라는 가정이다. 만약 내가 내년에 죽는다고 하면 이렇게 돈을 모을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죽음, 인생, 내게 남은 시간, 내가 원하는 건 뭘까를 생각해보았다.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암울하게 느껴졌는데 이 책을 통해 좀더 따뜻하고 희망적으로 미래를 바꿔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엔 세대 간에 교류가 있어야 한다. 서로 관심을 갖고 교류하지 않으면 인간은 점점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젊은층은 젊은층대로, 노년층은 노년층대로 서러움이 있다. 마음을 열고 그 서러움을 보듬어준다면 저출산고령화사회도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겠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출산율이 더 높아질 수도 있겠다.


역시 나는 너무 이상적인가? ㅎㅎ 어쨌든 MBTI에서 NF 성향이 높은 나로서는 이 책을 다 읽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궁금하신 분은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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