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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씨 Dec 30. 2023

화초

엽서 같은 기억

태어난 후 2주 만에 이사를 간 아파트에서 중학생 시절까지 살았다. 내가 어릴 적엔 타일이 깔려 있고 거실에서 한 걸음 내려가야 했던 베란다에다 마루를 깔아 거실이 넓어졌었다. 창문 앞 볕 좋은 자리에 할머니는 한아름도 더 되는 큼직한 화분을 서넛 두시고 진한 녹색의 넓적한 잎사귀 사이로 주황색 꽃이 한 줌 피어나는 난을 키우셨다. 잎에 손톱을 찍어 생채기를 내면 진득한 액이 흘러나왔다가 다음날 보면 갈색 거스러미를 달고 아물어 있었다. (나는 이런 장난을 종종 쳤다.) 할머니가 손수 손질하시고 말리신 고추를 방앗간에서 빻아 만든 고춧가루와 역시 손수 만드신 메주로 담근 각종 장으로 가득한 작은 항아리가 한 줄로 늘어선 선반과 난이 가득한 화분. 할머니랑 살았던 시절 풍경의 일부였던 것들이다.


엄마는 그토록 진저리를 치며 싫어하던 화분과 화초를 언제부터 좋아하시게 된 건지, 우리 집 베란다에서 먼지만 두르고 있는 자잘한 화분을 정리하면서 혹 필요하신지 여쭈니 다 가져오라 하셨다. 열 개 정도 되는 빈 화분을 갖다 드리니 분갈이할 생각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시며 네가 가면 화분부터 채운다 하셨다. 다음에 뵈러 갔을 때 보니 이미 아담한 화분으로 빼곡했던 선반에 어떻게 빈틈을 만드신 건지 뭐가 더 늘어나 있더라.




밤에는 할머니랑 손잡고 자고 낮에도 할머니 옆에서 책을 읽던 내가 엄마랑 할머니가 친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건 아마 초등학교 4, 5학년 무렵이 아니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이가 나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할머니랑 조금씩 거리를 두었던 거 같다.  후 할머니랑 같이 살지 않게 되고 한국을 떠나면서 종종 편지를 주고받으며 다시금 할머니와 마음 편하게 사랑을 주고받았다. 시집가는 건 보시고 가시라 했는데 나는 결혼을 너무 늦게 했고. 할머니는 어린 내가 꿈꾸던 진로를 응원해 주셨지만 그것 또한 그런 적이 있긴 했나 싶은 일이 되어버렸다.


인생에 후회할 것은 차고도 넘치지만 그중 가장 뼈아픈 후회는 할머니의 마지막 몇 년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는 거다. 어린 나의 옆자리를 지켜준 할머니 곁에 내가 없었고 오래도록 우리가 없었다는 것. 할머니의 생에 함께 한 시간이 너무나 짧다는 것. 잠깐 삶을 멈추고 갔어도 됐을 것을. 왜 그럴 줄 몰랐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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