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보부상에서 사색하는 나그네가 되기까지
23년 10월: 파리 > 스위스 > 런던
24년 04월: 런던 > 바르셀로나 > 런던
24년 12월: 비엔나 > 프라하 > 런던
25년 12월: 밀라노 > 베로나 > 베네치아 > 피렌체 > 로마
이렇게 적어보니 겨우 2년 사이에 내가 한 일이 맞나 싶다.
사람마다 여행에 부여하는 의미는 다르겠지만 근 2년 동안 4번의 유럽 여행을 하게 되면서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 내가 여행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글로 기록해보고 싶었다.
나에게 해외여행은 설렘의 대상이기 전에, 떠나기 전까지 감당해야 할 수많은 번거로움과 망설임들을 하나 하나 힘겹게 넘어서야만 어렵사리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관문 같은 영역이다.
그 어려운 관문에 무거운 첫 발을 떼게 된 건 다름 아닌 ‘축구’. 나에게 ‘낭비’를 ’낭만’으로 바꿔준 고마운 계기이자, 축구를 통해서 필요한 지출만이 아니라 낭만을 위해서도 기꺼이 소비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동안 EPL 직관이라는 로망 실현 외에는 그 정도의 돈과 시간을 쓸 만큼, 장거리 비행을 감당할 만큼, 오랜 시간 불편한 곳에서 잠을 잘 만큼, 관광의 욕구도 체력도 거의 없는 쪽에 가까웠던 내가, 오로지 축구를 보고싶다는 일념 하나로 가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가야 할 이유를 찾아대며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참 많이도 갔다.
해를 거듭할수록 중요한 결정은 머리로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난 절대적으로 마음으로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하나에 푹 빠지면 없던 에너지도 끌어모으고, 관심이 없으면 있던 에너지도 굳이 증발시켜 버리는 중간이 없는 사람. 결국 좋아해야 혹은 궁금해야 비로소 움직이는 나의 기질을 여행을 통해 또 한 번 확인하기도 했다.
어쨌든 목적은 축구였지만, 축구 덕분에 4번의 여행을 하게 됐으니 그간 나를 스쳐 지나간 생각들에 의미를 부여해 보자
첫째. 여행이 경험이냐, 낭비냐 묻는다면
결국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여행은 일상을 환기하고 싶어 떠나게 되지만 오히려 돌아왔을 때 내가 있는 곳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but 아주 잠깐...)
가장 낯선 곳에서 나도 모르게 굳어진 생각의 틀을 강제로 깨뜨리는 경험,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다고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들,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시간, 그동안 세대 차이만 겪어봤지 문화 차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건 누군가의 말에 의해서가 아닌 여행이기 때문에 직접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특유의 효율과 단기 성과, 속도를 앞세운 성공 공식들이 유럽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뭐랄까, 내가 본 유럽은 속도보다는 방향이, 효율보다는 본질이 앞에 있는 느낌(?)과연 누가 누가 더 오래됐나 대결이라도 하듯 느긋함과 전통,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500년은 전통으로 치지도 않는 유럽에서 과거로 떠나는 여행을 하며 ‘천천히 가는 삶’의 가치란 무엇인지 그동안 품어온 생각과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느리면 안 된다는 기준이 깨지지 않는 나는 토종 한국인.. 느림의 이유가 있어야만 허락되는 삶에 익숙해져서 묘하게 ‘아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위안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속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국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은 나라가 과연 얼마나 빠른 건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가족만 보더라도 할머니 세대는 전쟁을 겪었는데, 부모 세대는 산업화를 살았고, 우리는 지금 글로벌 세대를 살고 있다. 이게 한 가족 안에 다 들어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지 않을까? 가장 빠른 나라에 살고 있는 가장 느린 나..
둘째. 유럽 = '한 명의 천재' + '종교' + '건축물'로 설명되는 곳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특정 도시, 지역 전체가 한 명의 천재적 인물로 설명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이탈리아는 다빈치, 미켈란젤로, 비엔나는 모차르트 등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철학가, 건축가, 해부학자, 과학자 등 직업의 경계가 없는 경우도 많았고, 대체로 그들이 그 지역의 대부분을 대표한다. 마치 예술&역사&철학이 하나의 세트장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떤 박물관에 가도, 어떤 미술관에 가도 종교와 관련된 작품들이 수두룩했다.
난 무신론자인데 유적지만큼이나 많이 방문한 곳이 성당이었다. 종교와 역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 그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는 나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발에 채도록 많은 게 성당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종교, 신앙에 대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지막 여행지인 바티칸 성당에 방문했을 때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본질이 뭔지..' 별의별 생각을 다 해봤다. 물론 종교가 사람에게 주는 힘과 순기능에 대해서는 신앙과 상관없이 읊어 내려갈 수 있지만 말이다.
다만, 내가 신앙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뭔가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 믿음으로 인한 보상 심리, 면죄부나 요술램프와 같은 도구의 이유들 말고 신의 존재가 사실이든 아니든, 믿음에 따라 보상이 있든 없든, 사후 세계가 존재하든 안 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사는 것.
만약 유일신이 있어야 한다면 난 햇님 달님으로 하겠다(무려 두 명). 아직까지는 나를 믿으면 천국 가고 아니면 지옥 간다의 뜻이 구원보다는 일종의 조건부 거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안 믿고 싶은 게 아니라 믿음으로 인해 따라오는 감사 말고, 감사 위에 믿음이 있길 바란다. 진심으로 마음속에서 감사하고 올바르게 살면 유일신이 누구이든 그게 나에게 있어 종교의 의미를 갖는다. 내가 이렇게 회의적인 것도 어쩌면 하늘의 뜻일 테니까. 내가 두려워서, 연약해서, 고난에 밀어 넣어서 지푸라기처럼 선택하게 되는 그런 신앙 말고 나에게 만큼은 내가 설정한 기준보다 조금 더 멋있는 이유로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날이 올까.
셋째. 문화 예술 그게 돈이 됩니까.
유럽은 되더이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기업은 왜 문화예술 분야에 투자해야 하는가'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펼치지 못하고 급하게 형식적인 답안을 제출하고 갔다.
경제적 효과가 있냐 없냐, 인풋 대비 아웃풋이 눈에 보이게 드러나냐에 기준 아래 나에게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투자보다는 비용이고 내 경력을 살리는 길 말고는 뚜렷한 명분이 서질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은 산업에 기여하면 되고, 콘텐츠는 수출하면 되고, 대중 예술은 시장성이 있으면 되는데 순수 예술은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늘 매 순간 내 전공 분야를 내려치기 하는 수준에 이르렀었다.
근데 유럽에 가보니 하루의 대부분은 성당과 미술관, 유적지 사이를 걷는 시간이었다. 그 안에서 미술관, 박물관, 오페라, 뮤지컬 등등의 것들이 그 지역을 대표하는 거대한 문화 자본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기술이나 시스템을 보러 온 게 아니라 이 나라가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를 보러 온 여행이었고, 시간이 쌓여 남은 것들은 결국 문화였다. 당장의 소비를 만들지는 않지만 나중에 사람들이 찾아올 이유를 남기는 일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그 분야에 의미를 찾을 순 있겠다.
당대에도 누군가는 후원했을 테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만들었던 게 지속됐으니 지금이 있는 것처럼.
나도 나이 들어서는 밭일 말고, 복지관에서 건강 관련 제품들 구입하는 모습 말고, 미술관에서 작품 감상하는 우아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근데 그러려면 우리나라도 합격하기 위한 입시 예술 말고 표현하기 위함으로 바뀌면 좋겠다. 나처럼 입시의 문턱 앞에서 학교든 학원이든 '-풍'을 익혀서 들어온 그 코스 말고..
넷째. 게으른 J인간이 될 바엔 유연한 P가 될래!
네 번의 여행을 지나오는 동안 계절에 상관없이 내 캐리어에 빈 공간이 늘어났다. 계획도 느슨해지고 준비 과정도 N개월에서 이틀 전으로 확 줄었다. 터질 듯한 캐리어에 빈 공간이 늘어난 만큼이나 내 배포와 여유도 같이 자란 느낌이 든다. (물론 옆에서 나의 안전을 책임지는 든든한 남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처음 떠난 유럽에서 소매치기를 당하며 3개국 3주간의 사진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도 하고, 예상과 다른 체감 날씨에 필요 없어진 옷들을 나보다 더 빠르게 귀국시키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에 올스톱 되는 문화를 몰라서 밥도 한참을 걸어가 두배의 가격을 내서 먹고, 대중교통 운행을 안하니 20만원을 육박하는 택시비로 공항에 겨우 갔던 생각이 난다. 아, 손흥민 싸인 받겠다고 비 오는 날 하루 종일 훈련장 앞에서 기다렸는데 허탕쳐서 하루를 날리는 시간 낭비도 해봤다. 인생샷은 무슨 진흙에 발이 빠져 고생하고 심지어 여행 중에 캐리어가 부서지는 등 이런저런 변수들을 많이 만났다.
지금 돌아보면 횟수가 아무리 늘어도 늘 아쉬움이 남는 여행으로 마무리 됐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다면 아쉽게 끝나야 또 그다음이 있고 바뀐 게 있다면 예전보다는 내 예상과 다르게 벌어지는 상황들에 받아들이는 마음이 커졌다는 것? 그리고 불안과 걱정을 이기는 법은 계획을 더 촘촘히 세우는 게 아니라, 다작이 실력을 키운다는 말처럼 실행 횟수를 늘리고 일단 부딪쳐 보며 익숙해지는 거다.
이틀 전의 결정이 무모해 보이지 않았다는 건, 아마도 내가 더 많은 것을 통제하지 않아도 여행이 굴러간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이 덜 신기해졌다는 건, 내가 그곳에 덜 설레는 사람이 되었다기보다 덜 조급해졌다는 뜻 아닐까. 내가 익숙해지는 만큼 사진도 덜 찍게 되었다.
불안해서 계획에 집착하고,
낯설어서 사진으로 과잉 기록했던 나
그래서 여행 중에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신기함이라는 감정이 항상 앞에 있었고
보고, 놀라고, 기록하느라 생각은 늘 뒤늦게 따라왔다.
그 순간을 해석하기도 전에 다음 장면이 펼쳐졌고
나는 또 카메라를 들었다.
다섯째.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
지금의 나에게 여행이란, 꼭 '인생샷+맛집+힐링'이 아니더라도, 여행은 의미 있는 사고의 전환이고 나에게 이동식 강의실 같은 수업이다. 막상 여행이 시작되면 힘들지만 여행 중에, 혹은 여행 후에 생각이 깎이고 다듬어지는 과정이 좋았다.
돌아와서 내가 다녀온 곳을 하나씩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고, 전과 다르게 보이는 것들도 있고. 결국엔 '무엇을 보고 왔는가' 보다 '무엇을 생각하고 돌아왔는가'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건 네 번의 여행 끝에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이다.
근데 무서운 건 일상에 돌아온 지 하루 만에 숨이 턱 막히고, 품은 생각은 금방 휘발되는 걸 느낀다. 앉은 자리가 바뀌니 또 생각이 바뀐다. 지금의 생각들이 금방 날아갈까 두려워 글자로나마 꾹꾹 눌러 담아야겠다.
내가 언제 나라 대 나라를 대상으로 비교하는 생각도 해보고, 여행에 가치를 부여해 보겠으며, 국뽕이란 걸 한 명의 선수가 아닌 나라 그 자체에 감탄하기도 해 보고, 집 앞 편의점도 일로 생각하는 나인데 대륙을 건너는 모험 같은 일도 해보겠나
요즘엔 번역기가 나 대신 말도 해주고, 지피티가 계획도 짜주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내가 고대 로마 시절에 태어났다면 하는 아찔한 생각도 해봤다.
결국 여행은 돈이 많이 드는 수업인 건 맞지만, 사람에게 그 정도의 환경이 바뀌어야만 일상에서 멀어진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관문은 늘 처음 통과하는 게 어렵지, 일단 그 문을 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의미는 내가 부여하기 나름이니까. 쓰는 법도 알아야 버는 법도 알게 되고, 푹 쉬어봐야 적당히 쉬는 법을 알게 되고, 거창하게 생각했던 것들도 막상 가보니 사람 사는 거 비슷하고 별거 아닌 게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세상에는 맞고 틀린 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한다. 풀이 과정이 다를뿐 정해진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다는 건결국 어떻게 살아도 틀리지 않다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알고 보면 꽤 많았던, 유럽 여행이 나에게 남긴 것
2026. 01. 09.
여행 내내 사색에 잠긴 나그네로 있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누군가는 긴장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몫까지 긴장하고 주변을 살펴준 남편 덕분에 나는 아무 걱정 없이 여행할 수 있었다. 그 조용한 배려에 감사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