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을 앞둔 나의 작은 선언

기쁘게 다짐하는 마음

by 수더분

이 글은 결혼의 시작을 앞둔 성혼 서약문처럼, 시험관 시작을 앞두고 나의 비장함을 담은 스스로를 위한 선언문이다.


몇 번이고 생각이 바뀌고, 내가 낙담하게 된 날 이 글이 나를 첫 마음으로 데려다줄 수 있길 바라며


‘언젠가 생기겠지..’ 라며 숙제처럼 미루고 미뤄둔 일인 임신. 그 숙제 같던 마음이 나에게 선물이라 생각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혼 4년 차, 서른 중반이 한참 넘어서야 결국 시험관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절차가 많고,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게 하는 일이라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나는 게 당연하지만 조금만 각도를 틀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금은 지나가는 아이만 봐도 그렇게 예쁜데 예전엔 유독 아이를 예뻐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난 그런 마음이 너무 없어 걱정될 정도였다. 분명 작아서 귀엽지만 존재 자체로 예뻐 죽는 그런 모성애란 뭘까? 유치부 수업 때는 돈을 내고 서라도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를 몰라서.


근데 나이가 들면서 사랑도 자라는건가? 요즘엔 예쁘게 생겨서 혹은 착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아이라 귀하고 예뻐보인다. 지금의 나 늦은 나이 맞고, 노산도 맞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아기를 환대하며 맞이할 수 있는 때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지금이 나에게 적기이지 않을까. 지금 보다 빨리 생겼다면 아마 숙제와 희생의 의미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몇 번이고 무너지더라도, 사람에게 처음의 마음은 중요하니까 이 마음을 바탕으로 두렵고 힘든 싸움이 아니라 "아기를 만나러 가는 여행의 마음"으로 시작해볼까 한다.




#1. 시험관 상담

'우리가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아니라, 될 수 있는 걸 조금 더 쉽게 가게 도와주는 거예요.'


그동안 애매한 의지와 현실적인 이유 뒤에 숨으며 결정을 미뤄왔던 나. 굳이 여기까지 와야 했나, 자연스럽지 못한 건 아닐까, 안 생기는 걸 억지로 하면서까지 해야 하나, 그냥 뭔가 섭리를 거스르는 것 같은 불편한 생각들을 하며 다짐이 늦었었는데 모든 건 받아들임부터 시작되지 않던가. 나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동료들의 오랜 응원과 병원의 상담을 통해 시험관은 '실패의 대안'이 아니라, '가능성의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방법이 있다는 뜻이니까 오히려 생각을 조금만 틀어보면 '패배 후의 선택'이 아니라 '방식을 바꾼 선택'이다. 나는 이제라도 그 간단하지만 어려운 용기만 있으면 된다.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래도 하는 것이라고 했다!



#2.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다

정서적 안정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늘 친오빠를 찾는다. 시험관 할 거라는 말에 "오 수땡아, 커스터마이징 하는 거야~?"라는 말에 피식 웃고, 오히려 그 말에 용기가 났다. 주변엔 온갖 우울한 후기들 투성이라 시작 할 힘이 안났었는데.. 때로는 진지하고 묵직한 응원보다 위트 있는 유머가 힘이 될 때가 있다. (그래, 나 뱃살도 충분하니까 주사도 잘 들어가겠지. 나 이름도 수정이잖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나 왠지 멋지다.



#3. 진짜의 마음

나는 마음에서부터 발동이 걸려야 실행력에 힘이 붙는 사람이다. 머리로 이해되는 수만 가지 이유를 들어도 그건 납득되는 거지 마음에서부터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내가 정의하는 그 진짜의 마음이란, 결혼에 비유하면 내가 외롭지 않을 때 선택하라는 말과 비슷하다. 임신도 나이에 쫓긴 선택 말고 그 진짜의 마음이 준비된 상태에서 찾아오는 거라면 이제야 제법 준비가 된 것 같다. 그동안말로만 ‘임신해야지’ 말하면서도 계속 숙제라고 생각한 그 가짜의 마음 때문에 지금까지 미뤄온게 아닐까. 이제는 그 진짜의 마음으로 출발해 보자! 시동은 느리지만 시동이 걸리면 알아서 자율주행하는 나니까.



#4. 아이가 오는 길

사람에게 처음의 마음가짐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이미지도 그렇고, 호칭도 그렇고 한 번 굳어지면 중간부터 바꾸기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 마음이 바로 서지 않으면 몇 번이고 반복될 수 있는 이 사이클을 견뎌낼 자신이 없을 것 같았다. 극복해야 할 시련처럼 받아들이면 버티기가 쉽지 않을 테니, 나에게 세뇌시키듯 주문을 걸어본다. "힘들어도 기쁜 일이야. 방법이 있는 일이야." 힘든 일은 맞겠지만 의미까지 힘들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아기가 엄마가 안쓰러워서 억지로 찾아오지 않고,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왔으면 좋겠다. 세상 우울하고 어두우면 놀러오고 싶겠나. 나는 고생한 엄마 아니고 반가운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난자 채취 전 폴립 제거도 한 번 더 해야 하는데 아기 방청소라 생각하면 기쁘게 해야지. “ㅇㅇ아 청소 다되면 놀러와~(둘이 와도 좋고)” 둘이 오면 태명은 천하, 무적이 어때?



#5. 마의 구간 작심삼일

다이어트도 처음 3일이 어렵지 오히려 그 작심삼일 구간을 넘으면 3주는 할 만하다고 했다. 자가주사도 그 원칙에 대입해서 3일만 참아야지. 4일째부터는 내가 적응 안하고 싶어도 적응되어 있겠거니 생각할란다. 채취에 대한 공포나, 배에 복수가 찬다거나, 호르몬 변화라던지,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은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 지금은 모의고사가 중요하지 수능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헬스장 가는 게 어렵지 가기만 하면 운동은 하고 오지 않나. 많은 생각은 내 걱정만 키울 뿐. (근데 뭐 말은 쉽지.. 그나저나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4월 전에 생기면 망아지 가능. 말띠 해니까~)



#6. 내가 부모가 된다면

나에게는 방과 후 강사와 기간제 교사였던 시절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도 부족했고, 요령도 부족했던 시기였다. 유치부 아이들에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사랑이 없었고, 고등학교 사춘기 아이들에겐 감정을 분리하지 못해 권위가 없었다. 통제 안되는 애들을 보며 내 역량을 탓했고, 혼내야 되는데 같이 싸웠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백날 맞는 말로 가르쳐도 아이들이 변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애들은 옳은 소리에 움직이는게 아니라 연결된 느낌이 있을 때 움직인다는 걸 알았다. 나는 지도한게 아니라 지적한거였고, 알려준거지 교육한 사람은 아니였던거다.


비록 학교에서는 실패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리는 알게된 경험이다. 내가 부모가 된다면 내 눈높이에 아이를 끌어올리는게 아니라, 내가 아이의 눈높이로 내려가서 아이의 언어로 말을 걸고, 아이가 방황한다면 훈육 전 숨은 결핍이 무엇인지 먼저 들여다봐주는 부모가 됐으면 한다.


그렇게 놓고보면 사람 관계에서 논리는 무력할 때가 많다. 관계에서 논리 싸움으로 이기려는 사람들은 똑똑한게 아니라 미련한거고, IQ가 높은게 아니라 EQ가 낮은 사람들이다.


아무쪼록 하기로 결심한 이상, 이왕 하는 거 쾌히 하자. 이건 멘탈 싸움이다. 자기 연민에 빠질수록 괴로운 건 나다. 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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