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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며 문뜩 그런 생각을 했다.
전공과 직업군은 한 사람의 사고 패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아이폰도 주기적으로 ios 업데이트를 하는데, 100세 시대인 지금 사람이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산다는 건, 남은 인생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이대로 쭉 가면 꼰대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인가?
어릴 때는 세상이 온통 물음표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마침표가 많아졌다. 점점 경험 안에서 쉽게 단정하고 일반화하게 되는 경향이 생겨서인지 가끔 날 보면 이미 세상 다 산 노인 같을 때가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고, 나는 생각할 수 없었던 시선들이 분명 있을 텐데
다행히 나에게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의 세포가 살아있기에 올해는 원리원칙만 따지던 과거의 습관을 잠시 내려놓고, 모호함을 받아들이기로 다짐해 본다.
초기화까지는 아니지만 나에게 고정된 세팅값 강제 업데이트 중... 3%
#1. 무용 전공 8년 차 직장인
재능과 기질은 일치할까?
물론 흥미나 재능의 영역에서는 무용이 나에게 맞는 선택지일 수 있었겠지만, 기질적으로 나는 예술 생태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무용인이라고 하기엔 난 원리원칙적이고 합리적인 게 중요했던 사람이고, 그렇다고 직장인이라고 하기엔 감각적이고 섬세한 사람에 가깝다. 감각적으로는 예술 쪽이 맞는데 기질적으로는 아예 군인, 경찰에 더 가까웠던 사람.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창의력'이 없어서 무용을 그만두었다. 창작의 영역에서는 정답이 없는 모호함을 다양하게 해석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정해진 매뉴얼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몸을 유연하게 훈련해야 했지만 생각이 유연하지가 않았다.
창의적이려면 상식에서 벗어난 접근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나에겐 견딜 수가 없는 일이다. 차라리 축구처럼 원인과 결과가 드러나면 좋으련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구조
그래도 무용은 내가 가장 어릴 때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니까 억지로 성격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던 계기였다. (실제 바뀌기도 했고) 주목받는 게 너무 싫은데 무대에 서야 하니까 어쩔 수 없지만 정말 싫은 걸 좋아해 보려고 노력해 본 계기이기도 했다.
근데 성격은 바뀌어도 기질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아직도 내 속내는 '정답은 하나야. A가 Z가 될 순 없어. 열린 결말은 답답해. 에둘러 표현하지 말고 명확하게 말해줘. 세계관이 빨갛고 파란 건 부담스러우니까 난 그냥 튀지 않는 회색인간 할래.'
#2. 이해 안 가는 미술, 모호한 시, 허구의 소설
다 나와는 거리가 먼 영역의 것들이다.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좋고, 문학계열 보다 실용서에 더 관심이 많다. 판타지성 드라마보다 현실 기반 오피스물 장르의 드라마가 나에게 훨씬 흥미롭다.
근데 그 취향만 따라가다 보니 사고방식도 계속 그 방향을 따라가는 것만 같고, 점점 세지고, 하나의 출력값만 내보낼 줄 아는 기계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행히 한 분야를 깊게 파는 영역에서 여러 전공 루트로 만나게 되는 회사로 무대를 옮기니 사고하는 법이 많이 다듬어지긴 했다. 똑같은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고, 같은 상황을 마주해도 행동과 감정을 처리하는 방향이 다르게 흘러가는 경험은 나에게 꼭 필요했으니까
몸도 스트레칭 안 하면 굳어버리듯 이제는 좀 낯선 관점을 들여서 사고를 확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 필요를많이 느낀다.
근데 사람이 고정된 생각을 바꾼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의 행동은 늘 생각을 전제로 하는데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하고, 경험이 필요하고, 누군가 도와주는 대상이 필요하지않나
그래서 올해는 그동안 편식하듯 거리를 뒀던 저 세 가지 영역들을 의도적으로 가까이 두려 한다. (조금 설렌다)
#3. 철학 소녀이자 취향 친구인 율수와 함께한 미술관 데이트
타이밍 좋게 율수에게 전시 보러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출산 전 세잔의 그림을 보고 싶어서 춘천에서 서울까지 만삭의 몸으로 나타난 율수. 전시는 관심 없었지만 율수가 보고 싶어서 갔다. 겸사겸사 학습의 마음을 들고.
그동안 여행지에서만 유명한 미술관을 랜드마크처럼 돌면서 마치 교양을 쌓은 사람마냥 취해있던 내 모습이 어딘가 잘 못 됐다는 생각은 했었다.
미술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분야니까 여기 온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관점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건지 궁금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게 다인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마치 표면 너머의 것들을 보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사실 '이거 유명한 그림이니까 봐야 해' 말고는 도대체 감상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배경지식 없이 그림만 놓고 보면 왜 유명한 지도 사실 모르겠다. 붓터치가 어떻고, 구도가 어떻고 알겠는데 (중요한가?). 그래 르누아르는 세잔에 비해 색감이 더 부드럽네 (근데 중요한가?). 이건 사과고 이건 풍경. 비전공자를 위해 미술 작품 감상 가이드라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듯 작가의 의도를 알고 싶은데 벽면에 써있는 글을 보면 읽어도 와닿지가 않았다.
"반복적인 구성과 구조적 탐구를 통해 회화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인물과 일상 장면도 서로 다른 회화적 언어를 다루었다" (뭔 소리인지? 미치겠다 별들아)
전시 내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속으로는 이걸 계속 이해하고 싶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으니까 참 답답했다. 무용 전공한 애 맞냐? 짜증도 났다.
그래도 한 가지 알아낸 게 있다면 전시 내내 입버릇처럼 '중요한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그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고 있나? 내 삶에 실질적인 이득을 주는 행위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나? 근데 그게 중요하지 않나? (무한반복)
모든 것을 이해하고 분석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써서 잠시 생각에 근육통이 왔다. 뭔가 몸은 불편한데 운동한 느낌이 들어서 뿌듯한 그런 기분(?)도 든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몇 번이고 반복하면 말랑말랑 해지려나?
꾸준히 접하면 이 모호한 것들이 나의 그 단단한 원리원칙을 기분 좋게 무너뜨려줬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일이 보고서처럼 명확하면 좋겠지만, 실제론 이해 안 가는 사람과 상황투성이니까
이제 그만 사고의 좁은 방에서 나가고 싶다.
#4. 새언니의 작업실
그나저나 난 복도 많지. 울 언니 작가다. 때마침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작업실에 구경 가니까 거의 신처럼 느껴졌다. 그런 대화도 나눴다. 예술의 가치는 완성도에 있을까 아이디어에 있을까?
유럽 여행 중 미술관을 둘러보며 깨달은 건, 사진처럼 정교한 테크닉보다 결국 ‘메시지’가 있는 그림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이었다. (내 사고회로는 여전히 그 메시지를 해독하지 못해 버퍼링에 걸리지만...)
문득 예술디자인대학 조교 시절 보았던 입시 실기 평가 현장이 떠올랐다. 거대한 갤러리 바닥에 수백 장의 그림이 깔리고, 평가 기준은 있지만 교수들의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수험생의 운명이 결정되던 순간들. 누가 봐도 ‘잘 그린’ 그림들은 대개 같은 학원 출신 같아 보였고, 대체로 B 등급으로 분류됐다. 근데 진짜 흥미로운 전쟁은 A와 D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그림들이다.
교수들은 그 그림 앞에서 한참을 대립각을 세운다. “(A) 기본기는 부족하지만 발상이 독보적이다” vs “(D) 의도는 좋으나 이런 기본기로 합격시키면 학교 퀄리티가 낮아진다”는 논리가 팽팽하게 맞붙었다. 효율과 원칙을 따지는 내 눈에는 D가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한 명의 교수가 끝까지 A를 밀어붙였고, 결국 그 그림은 합격의 문을 넘었다.
검증된 실력보다 불안정한 발상이 더 높은 가치로 인정받는 순간을 본 첫 경험이었다. 내 사고회로가 ‘중요한가?’ 라고 묻는 동안, 저들은 ‘새로운가?’를 묻고 있었던 거다.
이제 나는 내 단단한 원칙 위에 그들의 질문을 한 줄 추가해보려 한다. 여전히 사과는 사과로 보이지만, 적어도 그 사과를 그린 누군가의 ‘고집스러운 발상’ 만큼은 한 번쯤 귀 기울여 들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언젠가 내가 부모가 된다면, “엄마, 이게 왜 중요해?”라는 질문 앞에서 대답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왜 중요하냐면 ........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