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을 때 잘하는 건 누가 못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하는 사람

by 수더분

최근에 신년운세 보다가 멈칫한 문장이 있었다.

“맞는 말이 항상 옳은 말은 아니다. 반대로 옳다고 하는 말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맞는 말 ≠ 옳은 말?


맞고 틀리다

옳고 그르다

좋고 나쁘다


처럼 서로 대비되는 개념을 비교하는 건 쉽지만 앞 단에 나온 개념끼리 비교해 보면 꽤나 생각을 거쳐야 한다. 세상에는 ‘맞는 말’이 있는가 하면 ‘맞기만 한 말‘이 있다. 그래, 맞는 말이라고 다 좋은 말이 아니고, 맞는 말이라고 다 해야 할 말도 아니지.


그 미묘한 차이를 알고 행하는 사람을 똑똑한 사람 vs 현명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 걸까?




#1. 사람이 반짝반짝해 보이는 순간


요즘은 사람의 성향 차이를 F와 T로 너무 쉽게 나눈다. 사람의 성향이야 다를 수 있어도, 태도는 선택의 영역이라 '어떤' 태도를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향 차이가 아니라 그릇 차이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대개는 내 예상과 다르게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에게서 그릇의 크기를 실감하곤 한다.


이를테면 손해인걸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 있고, 논리적으로 이길 수 있는데 사람을 세워주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억울한 상황에도 바로 해명하지 않고 시간을 두는 사람, 다 이해되지는 않지만 상대 입장에서 서볼 줄 아는 사람, 어려울 때 베푸는 사람, 안 풀릴 때 축하할 줄 아는 사람, 화가 나지만 한 번 더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 언짢은 상황에도 위트 있게 넘기는 사람.


싫으면 싫은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사람의 본성을 따르는 건 쉽지만 본성을 자기 의지로 통제하며 스스로의 태도를 결정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기분 좋을 때는 누구나 젠틀하고, 여유 있을 때는 누구나 이해심 많고, 내가 손해 안 볼 때는 누구나 품위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 같다. 여유가 있을 때 잘하는 사람 말고, 이해가 될 때만 이해하는 사람 말고, 상황이 허락할 때만 어른인 사람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선택할 줄 아는 사람



#2. 좋을 때 잘하는 건 누가 못해?


내가 고등학생 때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감정 표현이 서툰 할머니와 지내면서 대적할 때가 참 많았다. 마치 아들과 사위를 차별하듯 발언하는 모습을 볼 때면 사위인 아빠를 대신해서 할머니에게 윽박지르곤 했다. 오히려 나보다 서운한 게 더 많았을 아빠였을 텐데도 나의 공명정대한 기질이 필요이상 강해질 때면 내가 보는 앞에서 할머니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윽박질렀던 나에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할머니에게 곁을 내어주는 손녀이길 바라셨다. 그 당시에는 너무 억울했고 왜 내가 불편한 상황에서까지 싹싹해야 되는지 펄펄 뛸 때 "수정아 좋을 때 잘하는 건 누가 못해?" 라는 아빠의 말이 그렇게 가슴에 남았다.


좋을 때 잘하는 건 반대로 안 좋을 땐 안 한다는 말과 같다. 누구나 상황이 좋을 때, 내가 기분이 좋을 때는 싹싹할 수 있다. 진짜 사람의 크기가 드러나는 순간은 그 반대의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결정된다고 했다. 아빠가 알려준 싹싹함은 단순히 성격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나를 휘두르는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내 태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혜의 정점을 알려준 순간이었다. 사람이 여유가 될 때, 이해가 될 때, 상황이 허락할 때 반응하는 건 내면의 힘이 아니라 환경의 혜택에 가깝지 않나? 상황이 안 좋을 때 오히려 잘하라는 말은 무조건적인 인내를 키우라는 게 아니라 사람의 그릇, 됨됨이, 품격과 같은 단어들을 나에게 가까이 둘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 생각하면 된다. 기분을 통제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영역인지를 알기에 지금도 그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동성이든 이성이든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단숨에 사랑에 빠진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내 '실력'이나 '억울함'이 아니라 내 '태도'만 기억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 시절 망설임 없이 지혜롭지 못했던 손녀여서 평생에 한이 된다. 사람의 속내는 내가 밑으로 내려가야만 보인다. 그 밑면을 보는 순간 내가 몰랐던 큰 사랑에 얼마나 울었는지)



#3. 맞는 말이 항상 옳은 말은 아니다.


이 문장을 보고 논리로 아빠를 이기려들던 치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논리적으로 맞았고, 잘못됨을 짚었고, 실제로 틀린 말을 한건 아니었다. 아빠가 세게 반응할수록 나는 더 맞는 말을 준비하며 더 세게 응수하던 딸이었다. 근데 살다 보니 맞는 말인 줄 알면서도 말처럼 되지 않는 순간이 생기기 마련이고, 몰라서 안 하는 건 아닌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나와의 치열한 설전 끝에 아빠는 "부모 자식 사이엔 천륜과 질서가 있고, 체면이라는 게 있다." 라고 아프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상대가 마음을 둘 곳은 남겨두었어야 했다. 사람에게 최소한의 설 자리는 필요했으니까. 나는 아빠에게 맞는 말을 할게 아니라 들리게 말하는 법에 대해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걸 놓쳤다.


내가 현명하지 않아서일까? 상대를 이기는 방법은 흔해도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며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건 참 어려운 영역이다. 똑똑한 게 머리의 영역이라면 현명함은 성찰과 수련의 영역인가 보다. 맞는 말로 사람을 이길 수는 있지만, 반대로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중요한 건 논리 자체가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지, 문제 삼으려 드는지 내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는 건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평생을 아빠에게 빚어지며 성장한 딸이나 다름없다.)



#4. 유산균처럼 생긴 우울증 약


우울증 약을 거부하는 아빠와 실랑이를 벌이던 시절이 있다. 약의 효능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왜 이렇게 고집부리냐며 다그치던 나. 나의 온갖 에너지를 다 쓰고도 아빠도, 나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며칠 뒤 엄마는 "여보, 유산균이야" 하며 우울증 약을 건넸고, 아빠는 습관처럼 거부감 없이 약을 먹었다. 아, 맞는 말이 이토록 무력했던가 상대의 습관 안으로 부드럽게 스며든 엄마의 지혜에 무릎을 탁 쳤다. 엄마는 아빠의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 약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에너지를 쓰는 대신, 아빠가 편안해하는 문 안으로 살며시 약을 밀어 넣으셨다. 사람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모습 이런게 바로 지혜인가?



#5. 여보, 내가 센척했어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 중에 한 명인 안진쌤(일명 드립공주) 우연히 안진쌤의 랜선 부부싸움을 목격한 적이 있다. 날 선 문자들이 오가는 대화에서 남편분의 장문 메세지가 날아왔다. 내용은 모르지만 안진쌤의 기분을 살피며 발 동동 거리고 있을 때 안진쌤은 세상에서 가장 심플한 답장을 보냈다. "여보, 내가 센척했어." 아, 그 순간 K.O였다. 역시 타고나기를 나랑 체급이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모름지기 사람은 공격받으면 방어하고, 논리에는 논리로 맞서며 누가 더 잘 못 했는지 끝까지 가려내려 할텐데, 오히려 자존심을 지키려는 본성을 거스르고 나의 밑바닥을 먼저 고백해 버리니 싸움이 허무하게도 끝났다. 나에게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센 척이라는 단어에 그 사람의 모든 게 담겨있었다. 그 순간 관계를 지켜낸 승리자처럼 얼마나 사람이 커 보였는지. 진짜 큰 사람은 자신의 작음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영원한 나의 영감 덩어리인 그녀).


같이 지냈던 일화를 떠올리면 항상 웃음이 가득해지는 사람이다. 차 뒷자리에 세 명이 타면 한 사람은 가운데 타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탈게요! 라고 부담 주지 않고, "가운데는 귀여운 사람만 탈 수 있어요~ 수정쌤 더 귀여워지세요" 라고 배려 섞인 장난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 주던 사람이다.


보통의 며느리라면 시어머니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그저 맛있다고 대답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할 텐데 안진쌤은 오히려 "어머님 친구네는 장조림에 무를 넣으니 맛있더라구요~ 어머님도 넣어보세요" 라고 장난기 가득한 피드백을 날리는 며느리다. 화려한 상차림을 찍어 보낼 법도 한데 스팸구이와 계란말이 사진을 보내며 "토끼 같은 며느리의 아드님을 위한 상차림입니다(?)" 였나. 자칫 어처구니없어 보일 수 있는 그 솔직함 속에는 안진쌤만의 깊은 배려가 숨어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려 애쓰는 가식보다, 허물없는 모습을 먼저 내보이며 상대가 편히 들어올 수 있도록 ‘가족으로서의 곁’을 내어주는 모습에 많이 배웠다. 그 특유의 능청스러움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안진쌤을 통해서 솔직하기만 한 사람과 나이스하게 솔직한 사람에 대해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6. 오해가 존경으로 바뀌는 순간


억울한 순간을 참지 못하고 즉시 칼을 뽑아 드는 이들이 있다. 당장 내 결백을 증명해 실속을 차리는 게 똑똑한 처세일 수 있어도 현명한 처세는 아닐 수 있다. 내가 조금 수고스럽고 힘들더라도 묵묵히 그 시간을 견뎌내면, 훗날 어떤 계기를 통해 상대가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온다. 내가 나를 증명하는 말 보다, 상대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피어난 이해의 울림이 훨씬 더 강력한 법이다. 당장의 오해를 견뎌내어 결국 상대의 진심 어린 항복을 받아내고야 마는 지독하게 현명한 사람들.



#7. 글을 마치며


나는 요즘 누가 봐도 좋은 사람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좋을 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환경의 도움이지만, 힘들 때 좋은 사람으로 남는 건 오직 그 사람의 의지니까. 진짜 강한 사람만이 손해를 보고도 자아가 흔들리지 않기에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여유를 부릴 수 있다. 결국에 사람의 가치는 안 좋을 때 드러내는 태도에서 결정된다는 것! (적다보니 성찰 일기가 되어가는 듯한 나의 공간..)


당신은 태도의 주인인가요? 감정의 노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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