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주머니 속에 넣어두기만 했다면
검은색 추리닝 바지를 빨고 나서 다 말린 후 뒤집었더니 먼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새하얘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작은 비명을 질렀다.
같이 세탁한 다른 옷들은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왜 이것만 그럴까. 이상했다.
바지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주머니에 휴지를 넣어놨던 것이 퍼뜩 생각났다.
나의 잘못이었다.
큰 부분의 먼지를 먼저 없앤 후, 주머니 안과 봉제선 사이사이의 먼지들을 떼어내는 데에 제법 시간이 걸렸다. 주머니는 생각보다 접힌 부분이 많았고, 겉면의 봉제선 골은 깊었다.
돌돌이 테이프로 30분 동안 휴지의 잔해와 먼지를 떼어내며,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그때 내 마음을 직시하거나 돌보지 않고 처박아두면 먼지가 되어버린 주머니 속 휴지처럼, 원래의 모양은 어떠했는지도 알 수 없게 되고 원래의 기능을 복원할 수도 없게 되어버린다.
내 마음의 어떤 부분 또한 이렇듯 현재를 회피하려고, 언제일지 모를 나중에 맡겨버린 채 접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제때 들여다보지 않고 정리하지 않은 그 마음을 나중에 다시 피려고 하면 접은 부분이 잘 펴지지 않거나 흔적이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무언가를 하는 데에 있어서 많이 망설이는 편이다. 겁이 많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했는데 잘 안되면 어쩌지?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더 준비가 된 후에 시작하는 게 좋겠어 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준비라는 건 끝이 없다는 걸.
완벽한 준비라는 건 내가 결정하는 셈인데, 대부분 열에 아홉은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결국 준비도 준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작조차 못하게 되고 만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비슷했다. 작가 승인을 받은 건 2년 전이었지만, 정작 글을 올린 건 1년이 훨씬 지난 후였다.
그전에 타 플랫폼에서 했던 연재도 마찬가지였다. 시작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도 별것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망설이기만 했던 내가 결심하게 된 데에는 외부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더 나아지고 싶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내적인 요인이 더 컸다. 무언가를 치밀하게 준비했다기보다는 마음의 문제였다. 그 마음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주저하고 한발 더 나가지 못했다면 완벽한 준비를 꿈꾸며 제자리에 있던 나는 주머니 속 휴지처럼 누구에게도 그 마음과 가능성을 보이지 못한 채 갇혀버렸을 것이다. 나쁘게는 스스로 그 굴레에 갇혀 언젠가 형체도 알 수 없게 바스러졌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이제 됐다 싶을 정도로 먼지를 제거하고 나니 다시 못 입겠다고 생각했던 바지는 어느 정도 원래의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100% 완전히 제거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낙담하고 포기했던 처음과 비교하면 놀라운 결과라고 볼 수도 있었다.
물론 조금의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내가 획기적으로 변한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자주 망설이고 걱정이 많다. 그로 인해 놓쳐버리거나 묻어둔 것도 많다.
그러나 조금씩 나아가고 있고,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라도 해야겠어서 한다’는 말을 핑계처럼 하곤 하지만, 그 말에 절반 정도는 진심을 담고 있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내가 조금씩 변화하고 꿈꾸던 모습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 나이를 먹고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이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는 무작정 처박아버리지 말고 늦기 전에 내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해야겠다.
아! 주머니 속에 무언가 있지 않은지 빨래를 확인하는 습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