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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 Oct 20. 2022

거짓말 아닌 거짓말


나의 핀란드 대중교통 공포를 이야기 한 건 나는 거짓말을 생각하면 정직, 정의, 믿음, 신뢰가 같이 함께 와서다. 거짓말을 가지고 왜 정직, 정의, 믿음, 신뢰 이런 가치가 생각났을까?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며서 말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사실은 뭘까? 얼마 전에 친구 G랑 핀란드 숲으로 하이킹하러 갔다. 하이킹 장소에 오면서 친구 G와 차 안에서 “예전에는 진실, 사실에 집착하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실망했는데 이젠 진실,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더 여유가 생기고 시각이 넓어졌어.” 우린 왜 그렇게 사실, 진실, 정의에 집착했을까? 내가 맞다고 우기고 싶어서였을까? 내가 옳다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 무엇을 위해 내가 옳다고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게 다른 사람에게는 사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내가 오만하게 살았구나! 반성했다. 잔잔한 바다를 보면서 새소리 바람 소리 들으면서 삶은 달걀을 먹으니 꼭 초등학교 동창이 토요일 아침에 같이 하이킹을 나선 기분이 들었다. 언제 이런 나이가 되었을까 서로 웃으며 이야기했다. 친구 G와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도 우리가 정한 규칙이 조금이라도 결함이 있으면 모두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게임 규칙을 수정한다. 너무 진지하게 정의로워서 가끔 웃기다.


정의로운 것과 정직한 것은 또 다르다. 물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정직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거짓말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일에 직접 나서서 관여하지 않고 옆에서 보고 가만히 있는 것도 거짓말에 동조하는 게 아닐까?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방관에 가깝기 때문에 거짓말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한 편으로는 과도하게 정직하면 누군가에게 상처 줄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이 아닌 거짓말을 하게 되거나 정직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거짓말 아닌 거짓말은 정말 웃기다.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오래된 옷을 팔려고 한다고 친구 S에게 말했다. 친구 S는 그러면 자기도 같이 팔자며 이야기를 건넸다. 친구 S랑 이미 한 번 옷을 같이 팔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혼자 깔끔하게 이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누구 옷이 얼마에 팔렸고 어떻게 나뉘었는지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내가 우려했던 바는 현실이 됐다. 예전 같았으면 열받아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꿍해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그러려니 넘겼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이번에도 친구 S가 중고 옷집에 같이 판매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지도 않았고 딱히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냥 혼자서 옷을 가져다 팔았다.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게 됐지만 내 감정은 더 편해졌다. 


거짓말이 위험한 이유는 믿지 못하게 되고, 신뢰가 깨져서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신뢰가 없는 사회에서 생기는 의심, 눈치, 감정싸움은 사회를 피로하게 만든다. 남이 베푸는 친절에도 따뜻하게 맞아주지 못하고 가끔 생기는 기분 좋은 친절에 의심하게 된다. 가끔은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당신이 나오기까지 기다려줄 수도 있고, 당신을 위해 문을 열어 잡아 줄 수도 있다. 


한 번은 핀란드어 수업에서 핀란드 문화의 특징을 이야기했다. 나는 핀란드 사람의 특징 중 가장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정직’을 꼽았다. 선생님은 모든 핀란드 사람이 정직한 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선생님의 답변마저도 정직하다. 그렇지, 모든 건 정도의 차이다. 숲을 걸으면서 곧게 뻗은 하얀 자작나무를 본다. ‘핀란드 사람들의 정직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해진다. 정직하고 싶어서 정의롭고 싶어서 집착하는 나를 보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거 같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핀란드의 숲을 보면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진다. 누군가를 위해 정직하게 정의롭게 하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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