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이 나눈 세 점의 그림, 세 겹의 감정

비 내리는 날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by 김수연


뉴질랜드의 겨울은 거의 매일 비가 온다.

하루 종일 내리는 빗줄기, 쏟아붓는 회색의 리듬 속에서 걷는 건 불가능했기에, 아들과 나는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비가 와도, 감성이 있고, 또 콘텐츠적으로도 (아들은 일상을 브이로그로 기록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이기에) 충족될 수 있는 아트 갤러리를 향해 나섰다.


아들은 유럽 여행 중 몇몇 갤러리를 방문하긴 했지만, “나는 그림을 몰라서 친구들과 건물만 봤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림보다는 공간의 구조나 건축미에 더 관심을 두는 아들이었기에, “엄마, 갤러리를 어떻게 즐기면 돼?” 하고 묻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서 무작정 보는 것보다, 전시 중인 작가들의 배경을 간단히 알고 가면, 그림 속 세계가 조금 더 깊게 와닿을 수도 있어.

어떤 작품을 만날지 모르지만, 아마 너를 사로잡는 그림 하나는 분명히 있을 거야.”


그렇게 향한 아트 갤러리.

비는 여전히 퍼붓고 있었고, 우리는 갤러리 정문 앞에서 남편의 차에서 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여러 삶들이 한 공간에 흘러들어와 있었다.

엄마와 아이들,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오려 붙이며 방학을 보내는 풍경.

또 한 켠에는 은퇴 마을(위타멘트 빌리지)에서 오신 은빛 머리의 어르신들이 휠체어를 타거나 서로 부축하며 조용히 전시를 감상하고 계셨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 공간에는 나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한때 저 아이들의 엄마였고, 언젠가는 저 어르신들처럼 갤러리 앞에서 기다리며, 천천히 그림을 감상하게 되겠지.

그 생각이 외롭기보다 기분 좋았다.

나도 저 나이에 이르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을 수 있겠구나.


첫 번째 감정 — 노란 밀밭, 찢어지는 태양


Van Gogh – Wheatfield with Reaper


첫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아들이 멈춰 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작품 앞에 서 있었다.

“이건 프랑스야.”

“정확히는 오베르(Auvers). 내가 갔던 그 들판과 비슷해.”

그림 속의 바람, 노란 물결, 그리고 태양 아래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의 실루엣.

아들은 말했다.


“그림을 보는 순간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어.

붓의 방향과 물감의 향, 햇빛 아래 움직이는 공기의 밀도, 그걸 그렸던 사람이 느꼈던 감정이 전해졌어.

보는 게 아니라, 들어가는 느낌이었어.

갤러리 안에서 그 그림 안의 세계로, 순간이동된 것처럼.”


나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섬세한 감각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아들의 모습에 말없이 숨을 삼켰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가 콘텐츠를 만들 때 왜 그렇게 고심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림 속의 감정, 냄새, 촉감이 그대로 그의 창작 속으로 흘러들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감정 — 지고 있는 해, 견디는 삶


Jules Breton – The Shepherd Star


다음 방으로 들어가자, 한 여인이 해 질 무렵 들판을 걸어가고 있었다.

맨발, 어깨를 눌러 내리는 보따리, 몸에 묻은 흙.

그리고… 너무도 지쳐버린 눈빛.


“엄마, 이 그림은… 그 사람의 삶이 전부 묻어있어.

슬픔, 피로, 냄새, 공기… 모든 게 담겨 있어.

그리고 그녀는 그걸 말하지 않아. 그냥 견디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그림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아들은 감정을 분석하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그녀의 아픔을, 체념을, 그럼에도 걷는 뒷모습을.

그건 어쩌면, 지금의 우리 세대가 가진 고단함과도 겹쳐져 있었다.


세 번째 감정 — 고요 속의 슬픔


Paul Cézanne – Avenue at Chantilly


세 번째 그림은 초록빛 숲길이었다.

높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집 한 채가 어렴풋이 보이는 고요한 풍경.

그런데 아들은 그 평화 속에서 묘한 감정을 꺼냈다.


“이건… 독일에서 본 강제수용소의 그 길과 너무 비슷해.

조용하고, 아름답고, 공기마저 투명한데, 그 길 끝에는 죽음이 있었어.

사람들은 알면서도 걸었고, 그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서 더 슬펐어.”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들의 기억, 그의 눈에 비친 숲길의 이미지가 그림과 겹쳐졌고,

그는 그 감정을 조용히 그림 속에서 되새기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을 잡아끄는 작품이란, 그런 것이다.

설명이 안 되지만, 내 경험과 마주쳐버리는 순간.

그 순간이 이 그림에 있었다.




그날, 우리는 세 점의 그림 속에서 세 겹의 감정을 마주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감정이 달라졌다.

나는 엄마였고, 동시에 하나의 감정을 가진 관객이었고,

아들은 관람객을 넘어 하나의 예술가로 그림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깊이, 이렇게 진하게 감정이 교차한 하루는 많지 않다.

비 내리는 날, 우리는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 속에서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다시 한번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