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실로 마음에 드는 제목이다)을 다시 읽고 싶어 찾아보니 집 어디에도 없다.
쏜살문고에서 나온 손바닥만 한 책인데 책장과 책 무더기를 이 잡듯 뒤집어도 보이질 않는다. 환장할 노릇이다. 분명 팔아치웠을 리는 없는 것이, 한때 가장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었을 당시 이 책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든 책은 절대 팔지 않으니 분명 집 어딘가엔 있어야 하는데, 왜 없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책이 워낙 작고 얇아서 어딘가 틈에 끼어 있나 싶어 책장 구석과 틈새까지 살폈는데도 없다.
가끔 이렇게 책들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중고로 팔았을 리도 없고, 나는 누군가에게 책을 빌려주는 너그러운 사람도 아니라(이런 책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빌려주거나 선물한 것도 아닌데 책장에는 흔적도 없는 것이다. 분명 그 책을 샀고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그런 책들을 찾을 때면 책장 어딘가에 새로운 차원으로 가는 문이라도 있는가 싶다. 잃어버린 책들은 아무리 뒤져도 나오질 않는다.
그러나 그런 책들이 다시 등장하는 때가 있으니—바로 내가 그 책을 완벽히 잃어버렸다고 체념하고 새로 사고 난 직후이다. 이런 식으로 두 권이 된 책들이 종종 있다. 이상하게도 새 책을 사서 책장에 꽂으려고 보면 어디선가 슬그머니 예전 책이 나타나 천연덕스럽게 꽂혀있곤 한다. 등골이 오싹해질 만한 미스터리다.
가끔은 내가 잃어버린 책들이 가는 나라가 있을까 상상해 본다. 꼭 다시 읽고 싶어 지는 순간에만 옮겨가는 그것들만의 나라가 있어서, 내가 그 책을 찾을 때면 이미 그 책은 잃어버린 책들의 나라로 들어가 버린 후인 것이다. 그러면 나는 부질없이 책장을 뒤지다가 결국 포기하고 새 책을 사고, 그러면 그 책은 슬그머니 돌아와 시치미를 뚝 떼고 제 자리에 꽂혀있던 척한다. 나는 두 권이 된 책을 보며 또 고개를 갸웃하겠지.
그래서 지금도 일주일째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을 다시 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왠지 새 책을 사는 순간 다시 그 책이 돌아와 책장에 얌전히 꽂혀있을 것만 같아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똑같은 책 두 권이 꽂혀있는 모양만큼이나 약이 오르는 광경도 없을 테니 신중해야만 한다. 나는 이번 주엔 책장을 정리해서 잃어버린 책들의 나라를 기필코 함락시키리라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