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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an 14. 2021

한 통의 전화

10년 만에 일의 의미를 깨닫게 된 이야기

"조직검사 결과상, 비정형 세포들이 보여서, 악성일 확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어요. 시술로 혹을 완전히 제거해서 조직검사를 한번 더 해야겠네요."


 어느 토요일 밤, 자려고 옷을 갈아입다가 왼쪽 가슴에 팥알만 한 혹을 만지게 된 나는 수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날 밤 계속 뒤척이게 되었다. 아는 게 병이라고, 제약회사에서 오랫동안 항암제 임상시험 관리자로 업무를 해온 나는 그동안 유방암학회에서 보고 들었던 알량한 지식들, 일하면서 접했던 진료차트 속 환자들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떠올랐고, 순간순간 마음이 아프기는 했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내가 "케이스"라 부르던 그 일들로 머릿속이 꽉 채워져,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날이 밝자마자 병원에 가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검은 화면 위로 밤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 동그랗고 작은 혹이 보였다. 의사 선생님의 표정과 화면을 번갈아보며 선생님이 어서 별거 아니라고 말씀해주시길 바랐지만, 나는 그날 결국 추가 확인을 위해 조직검사를 했고, 슬로모션처럼 더디게 흐르는 며칠을 보내고 결과를 들으러 간 내게 돌아온 대답은 확실히 하기 위해 종양을 제거하고 한번 더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제거 시술과 조직검사를 위한 또 한 번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닐 거야 하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뭐라도 좋으니 확실하게 알기만 해도 속이 시원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맘을 졸이며, 한편으로 애써 그 생각을 잊고자 더 바쁘게 일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의 인사팀 한 직원이 우리 회사 1층에서 회사로 무작정 찾아온 한 환자의 아버지를 만났다며, 딸이 우리 회사 약으로 S병원에서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전화를 한번 해봐 줄 수 없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무슨 사연이길래, 제약회사까지 찾아오셨을까. 사실,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찾아올 정도가 되면 화가 단단히 나신 게 분명하다고 단정 지어버린 나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일순간 먼저 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OOOO 임상부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따님이 S병원에서 현재 참여하시는 저희 약제 임상시험으로 문의하셨다고 해서 연락드렸어요."

"네? 아.. 아이고... 이렇게 연락 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저희 딸이.."


나는 두 번 놀랐다. 그가 처음 내게 한 말이 고맙습니다여서, 그리고 중년을 훌쩍 넘긴 남자도 그렇게 절절한 목소리로 애틋하게 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는 찬찬히 얘기를 해보시라는 나의 말에 펑펑 울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들어보니, 그의 딸은 삼십 대 후반, 나와 같은 나이였다. 작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1년 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용하다는 치료를 했지만 이제 이번 임상시험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얘기를 의사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이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못하면 6개월도 장담 못한다고 하자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의사와 얘기하면서 임상시험에 참여하려면 검체검사기관으로 보낸 유방조직의 특정 바이오마커 결과가 적합 판정을 받아야 하고, 통과해서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해도 신약군에 배정될 확률이 1:1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꼭 결과를 잘 받을 수 있도록, 또 신약군에 배정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딸을 생각하는 그 애끓는 부정이 너무나 간절해서, 그 진심이 참 아프게 느껴져서 통화하면서 나도 울었다. 물론 바이오마커 결과나 투약군의 무작위 배정 결과를 당연히 내가 마음대로 수정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을 다해서 최대한 임상시험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드리고, 딸의 치료에 대해서는 병원의 의료진과 잘 이야기하실 수 있도록 말씀드렸다. 그는 나에게 토해내듯 그간의 이야기를 하고 나서, 마음이 좀 안정이 된 듯 느껴졌고 끊기 직전까지 거듭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는 결국 하나도 해드린 게 없었는데.. 어쩌면, 그는 힘든 내색할 수 없는 가족 말고 가만히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며칠 뒤, 마음 졸여 기다려온 나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고 감사하게도 섬유선종, 유방암이 아니었다. 결과를 받아 들었는데 밀려오는 안도감과 함께 갑자기 그의 그 절절했던 목소리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나는 아직 유방암인지 아닌지 시술만 했을 뿐인데도 그 과정이 이렇게 힘들었는데, 그는 어떨까. 그의 딸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그의 딸이 임상시험에 무사히 참여해서 기적처럼 좋은 결과를 보고, 가족들과 행복한 하루하루를 더해가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날 이후로, 매일매일의 업무가 달라진 것은 없지만, 나의 마음은 꽤 많이 달라졌다. 환자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그저 '케이스'로 보이지 않고, 골치아프고 꼬이는 일이 생겨도 예전처럼 화가 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그 간절한 마음에 한줄기 희망을 실어주는 과정에 함께한다고 생각하니, 또 그 누군가가 내가 혹은 나의 엄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의 일이 자랑스럽고, 뿌듯해진다. 내가 이 일을 마치는 그날까지, 이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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