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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Dec 21. 2022

덕질의 이로움

먹고 기도하고 덕질하라

덕질은 무엇인가?

일본어에 오타쿠라는 단어는 본래 ‘집’이라는 뜻이다. 언젠가부터 오타쿠라는 단어는 집에 틀어박혀서 한 가지 취미 등에 과하게 몰두하고 사회성마저 결여된 사람들을 지칭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이들을 ‘오덕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덕후’라는 단어는 어떤 것에 꽂혀서 그것을 파는 사람들이 되었고 소위 ‘팬질’이라고 불리던 것을 ‘덕질’이라는 말로 대체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덕질의 세계는 깊이가 상당해서 어쭙잖게 알아서는 ‘덕후’라는 명칭을 함부로 붙일 수 없는 무게감 있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덕질은 단순히 누군가의 팬이 되는 것 이상으로 평균 이상의 관심과 정보수집, 공부를 통한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는 행위를 일컫게 되어 이제는 부정적인 어감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를테면 특정 단어에 ‘덕후’라는 단어를 붙이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 느낌이 물씬 나는데 새를 덕질하는 사람을 새 덕후, 영화를 덕질하는 사람을 영화덕후, 빵을 덕질하는 사람을 빵덕후라고 부름과 동시에 듣기만 해도 그 사람이 그 분야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첫 덕질의 시작

내 덕질의 역사를 따지면 초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연말 가요시상식 무대를 시청하다가 당시 특정 아이돌그룹의 무대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었는데 이른바 ‘덕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당시 그들은 잘 나가는 아이돌그룹이었고 그들에 관해 조금씩 검색하고 캐다 보니 어느덧 그들의 앨범과 포스터 등이 내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맹렬한 나의 덕心은 덕질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인 각종 비밀번호를 그들의 그룹명으로 변경하게 만들었다. 나의 덕심은 참으로 한결같아서 햇수로 19년이 지난 현재 나의 아이돌이 결혼을 했음에도 여전히 그들의 소식을 찾고 출연방송을 챙겨보며 그들의 음악을 듣게 만들었다. 감기와 사랑과 덕후는 숨길 수 없다는 말처럼, 나 또한 어찌나 주변인들에게 그들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살았는지 주변 친구들은 물론이고 직장동료들조차 언젠가부터 우연히라도 그들의 이름을 들으면 나를 제일 먼저 떠올리곤 ‘그들의 소식을 티브이에서 보고 네 생각이 났다’며 연락이 오는 지경이었다. 한때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거머쥘 정도로 업계탑을 찍던 내 아이돌은 그 오랜 세월 속에서 본업인 가수 외에도 동시에 영화, 드라마, 뮤지컬, 예능 등 가리지 않고 가능한 모든 분야로 뻗어나갔다. 그러다 못해 어느 날은 신문의 사회면까지 장식했는데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이때도 나의 주변인들은 ‘네 생각이 났다’며 나에게 연락이 왔다. 주변에서조차 인정한 ‘덕후‘임에도 나의 19년 덕질 인생이 언제나 활활 타오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는 말처럼 가끔씩 나의 아이돌에 대한 내 마음은 소강상태가 되어 시큰둥해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휴덕기간이 길다 해도 어김없이 나는 부메랑처럼 나의 본진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덕통사고

첫사랑과도 같은 나의 첫 덕질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만 그렇기에 내 인생에 또 다른 덕질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덕통사고’ 앞에선 사실 입덕 부정은 아무래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때는 코로나19로 인해 집밖으로 나가지 않던 2021년의 시작, 두 번째 덕통사고가 있었다. 친구가 웃기다고 추천해준 유튜브였는데 보다 보니 정말 너무 웃겨서 웃음은 물론이고 다음 영상으로 넘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주변에 바로 추천을 시작하는 나로서는 이 웃긴 것을 혼자 볼 수 없다고 생각, 바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추천을 하려니 내가 해당 유튜버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보수집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두 번째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놀라웠던 사실은 난 나의 덕질 대상이 그저 웃긴 유튜버라고 생각했는데 본디 방송국을 무대로 삼던 개그맨이었다. 개그맨을 덕질하는 것을 처음이었지만 그 즐거움이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의 개그맨은 너무나도 웃긴 사람이었고 요즘 소위 말하는 ‘세계관’이라는 것을 구축하고 이끌어가는 것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그저 덕후의 주관적인 의견이 아닌, 그 천재성은 날로 늘어가는 구독자 수와 조회수가 증명하고 있다). 첫 번째 덕질이 혼자 조용히 하던 것이라면 두 번째 덕질은 아예 다른 방향으로 덕질을 시작하기로 했다. 난 덕질계정을 열고 팬클럽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나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을 위한 서포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던 나의 덕질 대상을 따라가느라 나는 퇴근 후에 잠도 줄여가며 그들의 영상을 복습하고 라이브쇼 판매물품을 구매하고 팬클럽에서도 신명 나게 놀았다. 너무나도 연예인이어서 공식적인 행사 외에는 만나볼 수 없던(그것도 먼발치에서) 나의 첫 번째 덕질 대상과는 다르게 두 번째 덕질은 실제로 양방향으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나와 셀카를 찍어주고 DM 답장을 보내주고 내 덕질계정에 댓글을 남겨주는 내 덕질대상의 친절함은 활활 타오르던 나의 덕심에 기름을 부었다. 덕질 대상이 나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덕질이 아주 롱런하게 될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2021년의 시작부터 이어진 두 번째 덕질은 그렇게 2022년까지 꼬박 2년을 이어지며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햇수로는 2년째지만 나는 이 개그맨 덕질이 얼마나 오래 갈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나를 살리는 덕질

일전에 회사에서 동료가 나의 덕질이 진심으로 부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나의 회사 자리는 굿즈로 점철되어 있었는데 월요일에 출근하면 주말 동안 있었던 일을 서로 공유할 때 나는 주로 덕질하느라 어디도 다녀왔고 이것도 했고 누구를 만났고를 말하곤 했다. 직장동료는 나에게 무언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좋아해서 빠져들 수 있는 열정이 부럽다고 했다. ‘이 정도까지 한다고?’ 수준의 덕질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정도까지 했을 때의 수준으로 하는 덕질이 얼마나 행복감을 선사하는지. 얼마 전 본 ’ 당신이 잘 지낸다는 증거‘라는 이미지에 ‘덕질의 대상이 있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나는 이 문장에 100% 동의한다. 사실 덕질이라는 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덕질을 활발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잘 지낸다는 것이다. 올해 여름, 림프종 판정을 받고 거의 반년째 항암치료를 이어가는 중임에도 여전히 나를 살리는 원동력은 덕질이다. 나의 일상은 덕질대상의 노래를 들으며 항암제를 맞고, 몸이 아프고 기운이 없어 집에 누워있는 와중에도 새롭게 업로드되는 영상을 보며 한껏 웃는다. 덕질의 긍정적인 효과는 ‘집사부일체’에서도 방송되었었는데 남자친구를 볼 때보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볼 때 뇌가 극도로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분명 덕후이자 환자인 나에게도 덕질은 웃음치료와 더불어 행복 호르몬 생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대상은 심지어 개그맨 덕질이니 얼마나 웃을 일이 많은지 셀 수 없다. 나는 나의 병과 싸우기 위해 먹고 기도하고 덕질한다. 나중에 누군가 그 힘들고 고된 항암치료를 어떻게 견뎠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않고 말할 것이다. 나의 덕질이 나를 살렸다. 오래 덕질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고 오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덕질했다. 그러므로 삶이 무료한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먹고 기도하고 덕질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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