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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Oct 27. 2023

계절의 멋을 아는 아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주말에 가족들과 공원에 갔다. 마침 지역축제가 진행 중이었고 엉겁결에 참여하게 되었다. 먹거리, 놀거리, 중고 장터 등으로 붐볐다.  체험존을 돌다가 시간이 걸리는 공예부스에 앉았다. 아이들이 공예를 하는 동안 벤치에서 앉아서 기다렸다. 벤치 옆에서 5~6명 정도 되는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제 다 (체험)했는데 어디 가지?

여기서(공원) 놀자.

여기서 뭐 하고 놀아.

놀 것도 없는데....

나뭇가지도 있고 나뭇잎도 있고...

여기서 놀자.

다른 데서 가서 놀자  

  

공원에서 놀자는 아이들과 쇼핑몰로 가서 놀자는 아이들로 나뉘었다. 공원에서 놀고 싶은 아이들의 의견은 자연물을 가지고 놀자는 것이다. 쇼핑몰로 가고 싶은 아이들은 시시하게 무슨 자연물이냐 올리브영이나 다이소, 아트박스 같은 데 가서 놀자는 의견이었다. 잠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고 부모님과 통화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몇 분 후 공원에서 놀자는 아이들이 의견을 굽혔고, 우르르 근처 쇼핑몰로 갔다. 의견을 굽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엄마가 싫어한다고 한 아이의 말이 크게 반영되었다.




옆에서 듣는데 내심 아쉬웠다. 바람과 햇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날씨,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잎, 적당히 가지고 놀기 좋은 흙, 나무 스스로 가지치기를 하며 떨궈낸 나뭇가지들이 아까웠다.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날인데.....봄 바람, 여름 햇빛, 가을 하늘, 겨울 공기가 잘 어우러진 날인데....




봄이 주는 멋을 아는 아이들이 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는 순간을 볼 줄 알고, 벚꽃잎이 흩날리는 거리를 즐길 줄 안다. 봄 햇빛을 느끼며 놀이터에서 뛰어논다. 겨우내 움추러든 몸과 마음을 봄 볕을 쬐면서 펴본다. 


여름이 주는 멋을 아는 아이들이 있다. 장마에 쏟아지는 장대비를 구경하고, 더워지는 날씨로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수박화채 한 그릇의 시원함으로 더위를 이겨낸다. 강렬한 태양빛에 지쳐가지만 물놀이로 신남을 느낀다. 


가을이 주는 멋을 아는 아이들이 있다. 높아지는 하늘과 뭉게뭉게 한 구름을 보면서 여름하늘과 다른 가을하늘을 안다. 거리의 나뭇잎이 점점 물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어제의 빛깔과 오늘의 빛깔이 다름을 안다. 감도 맛있고 밤도 맛있고 공기도 맛있다. 


겨울이 주는 멋을 아는 아이들이 있다. 찬기운 속에서 후후 입김을 불어보고 영하의 날씨에 호호 손을 불어본다. 눈이 오면 눈 맞으러 뛰어나가고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느낌을 즐겨본다. 군고구마도 맛있고, 호빵도 맛있다. 



점점 계절이 주는 멋을 모르고 실내에서만 크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겨울이면 추워서 안 나가고, 여름이면 더워서 나가기 싫다. 비 오면 귀찮고, 눈 오면 옷과 신발이 더러워진고 싫어한다. 아이들의 시선은 점점 스마트폰에 화면에 빠져간다.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 것들을 보는 시간이 많아져 조금씩 변하는 계절의 변화에 감흥이 없다. 




계절의 멋을 아는 아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계절의 멋을 안다면 크면서 마주하게 되는 바쁜 일상에서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만났을 때 자연이 주는 위로와 평안을 느낄 수 있다. 현란하고 화려한 것에만 즐거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지나는 계절을 보며 삶의 흐름에 대한 지혜가 생길 것이다. 이런 귀한 장점이 무료다. 계절로 시선을 주기만 하면 된다. 





옷이 조금 더러워져도

계절의 멋을 아는 아이로 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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