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회귀 12- 응징하는 빌런

by 꿈꾸는 노마드

기남과 이야길 끝내고 귀가하는 박재국은 기분이 삼삼했다.

골칫덩어리였던 지우도 눈앞에서 사라졌고, 연주가 조금 아깝긴 했지만 대신 돈이 들어오니 그것도 불만 없었다.

아직 젊은 자기가 맘만 먹으면 대를 이을 자식을 보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라 사람 구실 못하는 지우를 눈에서 치운 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기남과의 만남으로 자기 뜻이 관철될 걸 확신한 박재국은 머리를 뒤로 기대며 쉬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운전을 하던 박재국 똘마니 성수가 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 이거 왜 이러지?”


잠시 후 차가 비틀거리더니 논두렁길에 곤두박질쳐지고 운전기사와 박재국은 정신을 잃었다.


***


교통사고가 난 박재국은 팔과 다리가 부러져 꼼짝없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병원에 헐레벌떡 달려온 아내를 향해 언성을 높이며 쓰레기 진면목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는 그때 기남이 병실로 들어서는 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큰일을 당하셨네요! 하필이면 저희 집 다녀가시는 길에 그런 일이.”

“그러게 말이야! 재수가 없으려니, 이런 일이 다 생기네!”

“어쩌다가 사고가 나신 건진...?”


기남은 능청스럽게 그를 떠봤다.


“그게.... 내 비서 놈도 자빠져 있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

“빨리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지!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야! 나 오줌 마려워!”


박재국은 기남이 앞에서 예의도 잊고 아내를 향해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남 앞에서도 이 정도면 도대체 둘만 있을 땐 어떨까, 기남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저 그럼,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어? 그래, 그럼.”


기남이 잠시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병실 안에서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여전히 아내에게 소릴 지르던 그가 갑자기 외마디 소릴 외쳤다.

“아! 아!”


기남은 흔쾌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잠시 후 병실로 다시 들어간 기남의 눈에 당황해하는 박재국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자기 생식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박재국 아내인 지우 모 역시 놀란 눈으로 그곳을 쳐다보다 기남이 들어오자 고갤 돌렸다.


“왜 이런 거야, 도대체! 왜 오줌이 안 나오느냐고? X 나게 아프기만 하고!”


그는 이제 체면 다 내버리고 막 가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이성을 잃고 설쳐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막가파 조폭 두목이었다.


“에이 씨 X! 구멍이 막혀 버린 거야, 뭐야? 싸고 싶은데 못 싸는 게 뭐냐고!”


옆에서 지우 모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 기남이 나섰다.


“제가 의사 선생님 모셔 오겠습니다.”


병실을 나와 의사를 부르러 가면서 기남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그를 응징한 것에 통쾌함을 느꼈다.

뭐가 원인인 것도 모른 채 박재국은 배설이 불가능해 얼굴과 몸이 점점 부어 갔고, 한동안 병원 신세를 더 지어야 하는 걸 당연시하게 됐다.

해서 기남은 연주와 지우 걱정 없이 자기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


시간이 무심히 흘렀고, 얼마 후 기남은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경제를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버지랑 구상하는 보육원과 장애 특별 시설 사업도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다.

순탄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 기남에게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모처럼 집에서 늦잠을 즐기고 막 눈을 뜬 기남을 인희가 불렀다.

“기남아! 전화받아 봐! 흥식이 형!”

“네!”


기남은 거실로 나갔고, 전화를 받았다.


“기남아! 큰일 났어!”

“어? 뭔 일인데?”

“오연주가 말이야! 미문화원에 있다 연행돼 와 있어!”

“어? 연주 친구들하고 여행 다녀온다고 며칠 전 나갔는데... 아!”


그제야 연주가 떠나던 날 그녀의 표정이 보통 때와 뭔가 달랐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기남은 그때 그저 지우가 걱정돼서 그런 줄만 알았다.

우리에게 지우를 맡겨놓고 떠나자니 미안한 마음과 지우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런 줄로만.


‘내가 왜 그걸 캐치하지 못했지?’


기남은 속상한 목소리로 흥식에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어쩌고 있는데?”

“그게... 걔네들 다 묵비권 행사하고 있어. 모두 73명 연행돼 왔는데 그중에 오연주도 끼어 있었고.”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 지금으로선 피고인 신분이 묵비권을 행사하니 어쩌지 못하는데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나긴 하겠지.”

“형, 미안하지만 연주 좀 살펴봐 줄 수 있어?”

“장담은 못하지만, 최선은 다 해볼게. 너무 걱정은 하지 말고. 넌 알아야 할 거 같아 일단 연락한 거야.”

“고마워 형! 늘 형한테 신세만 지네!”

“우리끼리 신센!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내가 또 소식 업데이트 되면 알려줄게.”

“응.”


그제야 이 사건이 궁금해진 기남은 신문을 찾아 읽었다.

신문엔 삼민투위라는 조직이 광주 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폭로하고 규탄하기 위해 서울 미문화원을 검거, 농성을 시작했고, <광주 학살 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죄하라.>는 구호가 적힌 대자보를 도서관 창문에 붙이고 주한 미대사 리처드 워커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고, 3일 후 자진 농성을 해산하면서 연행됐다고 나와 있었다.

박흥식이 말한 대로 73명이 연행됐고, 연주가 그중 한 명이란 소리였다.

기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가. 이런 게 인생이긴 하지만...’


기남은 이참에 연주를 데리고 유학을 떠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다 그는 머리를 도리질했다.


‘연주도 당연히 거절하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안 될 일이지. 지우는 어떡하고?’


그는 연주가 더는 데모대에 끼지 않기를 바랐다.

안정된 삶 속에서 지우만 돌보면서 살기를 바랐다.

그렇게 하도록 만들려면 자기가 뭘 할 수 있을까, 기남은 그 생각에 몰두했다.

그러다 마침내 기남은 결론을 내렸다.

원치는 않지만, 만약 어쩔 수 없을 경우 자기 능력을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연주는 훈방 처리되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박흥식이 있었고, 그가 손을 쓴 게 분명했다.

기남은 연주가 돌아온 날 저녁 인희와 지우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둘만의 시간을 마련한 후 연주에게 물었다.

“동생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험에 빠트리면 어쩌자는 거지?”

“...”

“연주 네가 잘못되면 가장 피해 보는 사람은 지우 아닌가?”

“그렇긴 한데 그래도 시대의 부름”


기남은 연주 말을 냉정하게 잘랐다.


“시대의 부름? 그걸 꼭 연주 네가 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러니까! 넌 지우를 돌보는 게 0순위 아니었어? 두 가지를 양립하긴 어렵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동지들을”

“동지들? 동지가 가족보다 더 중요하단 말이야?”

“....”

“대답이 없는 거 보니 동지들이 가족보다 더 중요한가 보군. 난 우리 네 사람이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나도 같아!”

“같다고? 아니! 난 연주 네가 우릴 가족으로 생각한다고 여겨지지 않아! 말이 중요한 건 아니거든.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는 거지.”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정말 너까지 왜 이러는 거야? 내 맘 잘 알면서!”

“네 맘? 네 맘이 뭔데? 지우를 위한다면 당장 그만둬! 넌 사랑하는 지우를 위해 당연히 시대의 부름엔 눈을 감아야 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알아들어?”

“....”

“그래서 지우야? 동지들이야?”


연주가 괴로워하는 모습에 기남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살면서 우린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우리네 삶이란 결코 녹록지 않다.

힘든 선택의 순간이 우릴 옥죄고 놔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기남은 결심하고 더 세게 나갔다.


“결정해! 지우인지, 동지들인지. 그리고 가족인지, 시대의 부름인지!”


연주가 기남을 쏘아봤다.

기남이 쐐기를 박았다.


“자신 있으면 지우만 여기 두고 넌 나가도 좋아! 알량한 동지들하고 시대의 부름 사업이나 하라고!”

“뭐라고? 왜?... 우리 지우...”

“지울 돌볼 사람이 우리 외 누가 있는데? 너 아니면 우리지!”

“...”

“인연은 맺긴 쉬워도 끊긴 어렵거든. 난 지우와 인연 끊고 싶지 않아! 그러니 넌 가서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라고!”


연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게 원망인지, 분노인지, 회한인지 기남은 구별할 수 없었다.

다음날 연주는 지우를 남기고 짐을 챙겨 떠났다.

기남은 담담했다.

기남이 인희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쓰지 않았듯 그는 인위적으로 연주의 마음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기남은 연주 마음을 자기 능력을 써서 제어하려 했다.

하지만 연주에게 생각할 시간과 선택할 시간을 좀 더 주고 싶었다.

해서 그는 자기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화, 목,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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