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회귀 11- 고심하는 빌런 8

by 꿈꾸는 노마드

그간 기남은 박재국을 몇 번 더 만나 그와 신뢰를 쌓아갔다.

그리고 우연인 듯 연주와의 인연에 대해서도 그에게 슬쩍 흘렀다.

얼마 후 기남을 다시 만난 박재국은 반색하며 그를 맞았다.


“지난번에 좋은 얘기 많이 들었었는데 오늘도 뭔가 좋은 소식 들고 왔나?”

“네. 오늘은 좀 중요한 이야길 나누려고 합니다.”

“그래? 무슨 얘긴데?”

“일종의 사업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그래? 사업이라.... 좋지! 어떤 사업이지?”

“지금 회장님께서 하시는 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이죠.”

“우리 일을 아는 것처럼 들리는군! 우리가 무슨 일 하는지 알고 있나?”

“용역일 하시잖아요?”

“그렇지. 용역일이지, 표면상으론!”

“그럼 다른 사업도 뭐 하시는 게 있으신가 보죠?”

“응 그게.... 뭐 돈이 되는 일은 다 조금씩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그런데 제안한다는 그 일은 뭐지?”

“제가 아는 분이 계신데요. 그분이 건설 쪽 일을 하세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용역 관련 일 필요하실 때가 있죠. 그것도 자주요!”

“오, 그래? 그것 참 구미가 당기는 말인데? 흐흐흐....”

“그런데 그전에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기남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 따님이신 연주가 우리 쪽 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되는 편이라 당분간 저희가 케어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연주가? 그렇게 걔가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네. 그런 편입니다. 그런데 연주 말이 자긴 동생 지우와 함께 있어야 한다더군요.”

“지우? 내 아들 지우 말하는 거 맞아? 그놈은 정상도 아닌데...”

“둘이 꽤 가까워 보이던데요?”


기남은 일부러 이렇게 박재국을 떠봤다.


“그렇긴 하지. 지 에미가 지우한테 고약하게 구는 걸 연주가 많이 막아주긴 했지.”

“그래서 둘을 같이 제가 당분간 케어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만....”

“그래?”


박재국은 잠시 생각하는 포즈를 취하더니 곧 이렇게 말했다.


“뭐 자네가 정 그렇다면야... 연주 혼자라면 내가 좀 꺼려지지만, 지우까지라고 하니. 물론,

이건 우리 사업에 힘 좀 실어준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는 얘긴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

“아, 그야 물론이죠!”


기남이 호기롭게 응대하며 박재국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애썼다.

박재국은 잠시 또 생각하는 모양새를 취하더니 곧 이렇게 말했다.


“나도 연주가 필요하긴 한데... 자네 부탁이니 내가 이번만은 특별히 들어주지. 하지만 잊지 말게! 우리 사업 이야기!”

“원하신다면 각서라도 써 드릴까요? 하하하!”


기남은 겉으론 호탕하게 말했지만, 속으론 그의 냉혹함과 교활함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그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지난번 했던 이야기를 회상했다.

기남은 그가 구미 당겨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그를 만나기 전 박흥식의 도움을 받았다.

박흥식으로부터 곧 학원 자율화 조치가 시행될 거라는 걸 알아내 박재국에게 흘렀다.

박재국은 그걸 이용해 운동권 학생들에게 신뢰와 호감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기남은 미리 정보를 입수해 박재국에게 흘러주므로 그의 신뢰를 얻어내는 전략을 펼쳤다.

그 외 이번엔 직접 돈이 되는 사업까지 밀어준다니 박재국은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지만, 심장이 벌렁거릴 만큼 흥분됐다.

해서 기분 좋게 기남에게 연주와 지우를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연주와 지우는 집을 나와 기남과 인희와 함께 살게 됐다.

연주는 인희와 한방을 쓰고, 지우는 기남과 한방을 쓰는 생활이 시작됐다.

하지만 네 사람이 살기엔 집이 조금 작다고 느껴져 기남네는 곧 이사할 준비를 했다.

어차피 아파트 딱지도 얻었겠다 잠시 전세로 살 집만 마련하면 되었고, 이미 딱지 하나를 처분한 인희에겐 충분한 자금도 있었기에 그들은 쉽게 집을 옮길 수 있었다.

네 사람이 마치 원래 한 가족이었던 마냥 평화스럽고 평온한 날들이 흐르고 있었다.

연주는 계속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있었고, 지우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인희는 새로운 가족을 돌보는 걸로 낙을 삼았다.

매일 새로운 반찬을 마련했고, 연주와 지우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기남은 아버지 뜻대로 유학을 준비할까도 생각했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신 그는 계속 경제 공부를 이어 나갔다.

박재국은 기남 덕분에 목동 신정동 일대 재개발 지역 철거에 용역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여러 재개발사업에 인력 대행, 보안, 운송, 경비와 같은 용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긁어모았다.

연주와 지우를 사악한 박재국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그를 돕곤 있지만 기남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폭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것에 회의를 느껴서였다.

하지만 일단 연주와 지우 안전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기에 당분간 그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밤 기남은 연주와 대화를 나눴다.

연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덕분에 지우랑 나 이렇게 평온하게 잘 지내고 있는 거 정말 고맙게 생각해!”

“...”

“기남이 너 성격상 그 인간 하곤 전혀 친할 거 같지 않은데 도대체 무슨 일인 거니? 나한테 말해 줄 수 없어?”

“그냥 좀 그런 일이 있어.”

“그 인간이 나랑 지우 순순히 나가라고 한 것도 보면 필시 뭔 거래가 있어 보이는데...”


기남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근데 너 엄만 괜찮은 거야? 그 인간 폭력적이라면서?”

“우리도 없겠다 지들 알아서 살겠지.”

“그래도 엄만데... 걱정 안 돼?”

“난 그 여자를 엄마로 생각하지 않은지 꽤 돼. 첨엔 좀 불쌍하다고 생각도 했었는데, 지우한테 하는 거 보고 맘 고쳐먹었어.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거든.”

“하긴 나보다야 네가 더 잘 알겠지.”

“응. 나도 첨엔 싫어하는 남자한테 억지로 붙잡혀 와 맘고생 한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그래. 너나 지우가 맘 편하면 된 거겠지.”


기남이 말을 마치자, 연주가 기남을 뚫어질 듯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 어떨 때 보면 완전 아저씨 같아! 인생 나보다 한참 산 아저씨!”

“응?”


기남이 순간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자 연주가 깔깔거렸다.


“하하하! 너 정말 나쁜 짓 하다 들킨 사람처럼 왜 그래? 그게 뭐가 그렇게나 당황할 일이라고!”

“...”

“하여간 재미있는 사람은 확실해! 특이하고!”

“뭐가 특이한데?”

“말로 표현하기 좀 그렇긴 한데... 둔한 듯 예민하고, 무심한 듯 세심하고, 암튼 좀 그래!”

“나쁜 뜻은 아닌 거지?”

“당연하지! 오히려 특급 칭찬이다! 됐어? 흐흐흐.”


그때 갑자기 집 벨이 울렸다.

기남이 밖으로 나가봤더니 거기에 박재국이 보디가드들을 대동하고 서 있었다.


“어, 미안! 집 전화번호를 몰라서”

“그런데 저의 집은 어떻게 아셨어요?”

“아 그야 그게 내 일인 거 몰랐나? 흐흐흐.”
“무슨 일이시죠?”

“그게 말이야... 여기서 말하긴 좀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서 말하지.”

“아뇨! 저랑 저 아래 다방으로 가시죠!”

“다방? 아니 요즘 사람 같지 않게 무슨 다방! 그래! 거기라도 가자고, 그럼!”


둘은 자리를 옮겨 다방으로 가기로 했다.

한편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연주는 얼굴색이 변하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다방에 들어간 기남과 박재국이 자리에 앉았다.


“여긴 어쩐 일이시죠?”

“내가 내 아들, 딸 잘 있나 와 본 게 그렇게 문제가 되나?”


박재국이 거들먹거리며 기남에게 반문했다.


“저랑 약속하셨잖아요? 제가 돈 벌게 해 주는 대신 연주와 지우랑은 안 보시기로”

“그랬지! 그랬는데 그게 맘같이 쉽지가 않더라고. 지우 에미가 요즘 우울증으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거든!”

“...”

“그렇다고 당장 애들 집으로 데려가겠다는 건 아니고... 뭐랄까? 나도 뭔가 좀 좋은 일이 있어야 지우 에미 달랠 기분 들지 않겠어?”


박재국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남이 준 정보로 화수분에서 끝없이 퍼 올리듯 돈벌이하는 것에 완전 재미 붙였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래서 말인데... 뭔가 새로운 아이템 이런 거 하나 더 알려줄 수 있겠어?”


뻔뻔하게 나오는 박재국을 바라보며 기남은 때가 됐음을 알았다.

좋게 말로 관계를 끝낼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양아치 짓을 하는 데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도 이미 경험상 알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응징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를 어떻게 하면 연주와 지우가 위험해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기남은 상기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생각... 아니 알아본 후에 연락 곧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죠.”


지긋이 담담한 어조로 기남은 말을 마쳤다.

기남의 반응이 의외라는 듯 박재국이 다시 한번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뭐 사정하는 거 아니지? 우리가 그럴 사인 아니지 않나?”

“아니요!”


역시 기남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아니라는 건 내 말이 맞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박재국이 다소 신경질적으로 반문했다.


“사정하시는 거 아니란 뜻입니다.”

“그렇지? 하하.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어. 그럼 나, 이만 가 볼게. 조만간 좋은 소식 전해줘!”


박재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남은 그가 차에 오르는 걸 확인하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가 탄 차가 미끄러져 나가는 걸 지켜봤다.

화, 목,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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