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노마드 Nov 14. 2024

세 번째 회귀 7- 고백

사람이란 존재는 그렇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도 있듯 비밀을 혼자 지키고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이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기남 역시 과거로 세 번이나 회귀해 십수 년을 살아오면서 비밀을 혼자 간직하는 게 참으로 어렵게 느껴졌었다. 

해서 이제 결혼도 했겠다 아내인 연주에게만큼은 사실을 털어놓고 싶어진 거였다.

기남을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연주의 입에서 자그마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에이! 자기 정말 오늘 이상하네. 뭔 소리야?”

“그러니까 내 얘길 들어봐. 지금부터.”     


기남이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교도소에 가게 된 사연부터 교도소 안에서 있었던 믿을 수 없는 일과 제의, 그 이후 벌어진 과거로의 회귀까지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빠짐없이 기남은 연주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연주가 얼이 빠진 모습으로 기남을 계속 바라보다 겨우 입을 뗐다.     


“그러니까 지우가 했던 말이 다 사실이었던 거네. 자기가 손 하나 안 대고 불량배를 처치했다고 했었던 일 말이야.”

“...”

“게다가 흥식이 형을 살려낸 얘기도 정말 믿기 힘들지만, 당신 얘기대로라면 충분히 그럴만하니까...”

“...”

“그리고 두 번째는 어머니를 위해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를 살려냈고, 세 번째는 바로 날 위해서였다는 거지...”     


연주는 기남이 자길 그렇게나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돼 그 사실에 감격했다.

자기를 살리기 위해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는 걸 다르게 해석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게 떠올라 연주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을 보자 기남이 그녀 곁에 다가와 부드럽게 안아주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 당분간은 다시 과거로 갈 일 없을 테니까.”

“...”

“지금처럼 편했던 적이 없었어. 아버지와 정남이 문제도 다 해결됐고 지우 일도 잘 되고 있고, 어머니도 하시는 일 만족하고 계시니까.”

“하지만 한 번이 더 남았잖아!”     


기남은 그녀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연주를 감싸고 있는 자신의 팔에 좀 더 힘을 주는 걸로 기남은 자신의 심정을 대신했다.

잠시 후 연주가 입을 뗐다.     


“난 이제 자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

“왜 내가 없는 삶을 상상해?”

“당신이 한 번 더 과거로 가는 건 기정사실이잖아. 안 그래?”

“...”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나한테 냉정하게 대했던 거. 관심 없는 척한 것도. 그러다 결국 내가 제안한 계약 결혼을 받아들인 것도, 다. 어차피 또 떠날 거니까 말이지.”     


기남은 이 대화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해서 그저 연주를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그녀를 계속 따뜻하게 감싸 안고만 있었다.

잠시 후 연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말을 못 믿는 건 아닌데 말이야. 그래도 난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봐야 할 거 같아.”

“...”

“그러니까 당신의 능력을 보여줬으면 해.”     


***     


드디어 지우의 노래가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우려와 달리 사람들은 얼굴을 볼 수 없는 가수가 존재한다는 것에 신비로움을 느꼈다.

새로운 컨셉이 먹힌 것이다.

게다가 맑으면서도 진한 그의 음색은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음악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당시 새롭게 선보인 뮤직비디오 덕도 컸다.

그의 호소력 짙은 음색이 화면의 선남선녀 배우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감흥을 더했기 때문이었다.

기남은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은 것에 탄력 받아 사업을 더욱 탄탄하게 이끌어갔다.

기획사 식구들이 점점 늘어나 이제 사옥을 옮겨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자, 기남은 이번 생에서 해야 할 일에 더 몰두하고 싶어졌다.

해서 연주가 요구한 것도 들어줄 겸 계획한 것을 실행하기로 했다.

일단 기남은 연주와 함께 정명식을 찾아가기로 맘먹었다.

기남은 그에게 회개하기를 먼저 제안하되 만약 그가 독사 같은 입술을 놀려 발뺌을 하거나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면 응징하기로 연주와 약속했다.

둘은 날을 잡아 정명식이 있는 은산으로 향했다.     


“여기 와 본 적 있어?”

“아니. 박재상 소개로 날 교회로 이끈 언니가 같이 오자고 여러 번 그랬는데 그때마다 지우 때문에 거절했었어.”

“그랬구나!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야.”

“응? 왜?”     


사실 기남은 그의 죄를 연주에게 아직 털어놓지 않았다.

연주가 죽음을 맞아 다시 살려냈다는 말은 했지만 왜 그녀가 죽음을 맞았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정명식을 만나 그의 죄를 묻기 위해서는 연주 역시 모든 사실을 알아야만 했다. 

해서 기남은 그녀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기로 맘먹고 천천히 털어놓았다.

그가 순진한 대학생들을 이용한 일, 아는 사람만 알지만 이미 사기와 간음 혐의로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던 일, 자신을 신격화하며 여성들을 성 착취한 일 등등을 먼저 이야기했다.    

 

“어쩐지! 그래서 나한테도 추파를 던지면서 언제 한번 은산으로 꼭 기도하러 오라고 했던 거네!”

“그런 적이 있어?”

“응. 내가 말한 적 없나? 그 사람 좀 이상한 거 같다고? 눈빛이랑 어투나 모든 게 신뢰가 안 가서 왜 저런 사람이 목사지 했더니 날 그 교회로 이끌었던 언니가 큰일 날 소리 한다고 얼마나 난리였는데.”

“그가 은산으로 내려오라는 얘기는 당신 말대로 성 착취를 하기 위해서였어. 내가 당신을 구하러 왔던 곳도 바로 은산이었고.”

“뭐? 그럼 내가 벌써 그에게...”

“당신의 주검을 발견한 사람이 바로 나였지.”

“그랬구나! 그와 그 패거리들이 내게 벌인 짓이겠지?”

“응. 그런데 교묘하게 자살로 둔갑시켰지.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지우 때문이라도 절대 자살을 했을 거 같진 않은데 말이야.”

“위장 자살이라...!”     


연주는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꽤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그의 범죄 사실을 안 이상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신의 이름으로 더러운 짓거리를 행하는 파렴치한에겐 철저한 응징만이 답이라고 생각됐다.

연주는 외로웠던 어린 시절부터 교회와 교회 사람들에게 의지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기남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아직 멀었어? 빨리 가서 그 인간 심판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은데.”     


얼마 후 기남과 연주는 은산 수련원에 도착했다.

때마침 수련원에는 수련회 행사로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다.

기남과 연주를 수련회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으로 알았는지 이번엔 그렇게 경비나 경계가 심하지 않았다.

저 멀리 정명식이 교인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볼을 다 정명식 쪽으로 몰아주고 있었고, 그가 볼을 드리블하고 차는 동안 그 누구도 그를 막지 않았다.

더욱 점입가경인 것은 일부러 볼을 잘 찰 수 있도록 길을 터주거나 눈치 없이 중간에 서 있는 선수에겐 눈치까지 주고 있었다.     


“여긴 완전 정명식 판이군! 어이가 없네!”     


연주가 이렇게 내뱉자, 기남이 맞장구쳤다.     


“그러게! 개판이 바로 이런 거로군!”     


둘은 축구 시합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시합이 끝나자 술 달린 의복을 입은 늘씬한 여자 치어리더들이 흰 장갑을 끼고 정성스럽게 정명식에게 물병과 흰 수건을 건넸다.

정명식은 마치 프리미엄 리그 MVP 선수라도 되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걸 받아 들었다.

그때 기남과 연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주를 본 그가 먼저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옆에 있던 기남을 보곤 아예 무시하는 태도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     

“저... 정명식 씨!”     

사람들의 모든 눈이 기남을 향했다.

그러다 그중 몇몇이 적대적 시선으로 기남 옆으로 다가왔다.     


“당신 누구야? 뭐? 정명식 씨?”

“이게 어디 감히 우리 교주님을!”

“뭐 해! 끌어내지 않고!”     


각자 심하게 오버하고 있었다.

물론 각자 자리보전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겠지만 기남은 기가 찼다.     


“교인이 아닌 내가 정명식 씨를 정명식 씨라고 부른 게 뭐가 문제죠?”     


태연하게 기남이 눙쳤다.     


“여긴 성전이자 우리 교주님 안식처고 오늘은 특별히 좋은 행사를 하는 날인데 뭐 하는 인간이 와서 재를 뿌리는 거야?”     


그중 제일 높은 추종자인 듯 보이는 남자가 위압적으로 외쳤다.    

 

“성전에 안식처, 다 좋은데 말이죠. 여기 토지가 불법 사용됐다는 제보가 있어서요.”     


기남이 이렇게 말하자 잠깐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다시 그 남자가 태도를 바꾸며 말을 이었다.     


“저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안에 들어가셔서 얘기하시죠. 교주님께서 방금 운동도 마치셨고”     


그제야 추정자의 말을 끊으며 정명식이 나섰다.     


“그러지! 어서 손님 안으로 모셔!”     


불법 사용이라는 단어 한 마디로 이렇게 태도가 급변하는 걸 보게 된 기남은 이들이 실제로도 불법을 행했을 거라는 걸 감 잡았다.

더군다나 어떤 신분증도 요구하지 않고 교인들 눈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 보면서 기남과 연주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죠!”     


기남이 흔쾌히 대답했다.     

작가의 이전글 세 번째 회귀 6- 박재국 혼내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