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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Mar 21. 2018

있잖아요.
인생은 낙장불입입니다.

귀농이야기

가난한 이들에게 겨울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이지요.
또 상처받은 이들에게는 죽을지, 살지 모르고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딪는 살얼음판이 겨울이라 할 수 있구요.
 
그러나 봄이라고 해서 이들에게 갑자기 신천지가 열리는 것도 아니고 상처나고 곪은 곳에 새살이 돋는 것도 아니니 딱히 목숨 걸고  기다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생각하는 각도에 따라 삶의 땟깔은 사뭇 달라진다고 믿어요.
 
인생은 ‘낙장불입’입니다.
한번 이 땅에 발붙였으면 못먹어도 ‘고’ 이고, 팔자가 뒤웅박 팔자고 뭐고 그대로 쭉 가야 하는 겁니다.
거둘 수도 없고, 물릴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고, 스스로 포기해서는 더더욱 안되는 게 삶인 것 같습니다.
 
자, 그렇다면 ‘낙장불입’인 길을 가는데 어떻게 가야 하나 하는 질문을 매순간 끊임없이 하며 가느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터득한 건데요.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구와 제일 먼저 상의하고, 타협하고, 누구와 제일 먼저 합리화의 손을 내미는지 아세요?

가만히 보니 다름 아닌 내 자신에게 더라구요.


예전에는 내가 심약해서, 소심해서 상처를 받는 거라고 같지도 않은 변명을 둘러대곤 했지만 나이밥이 쌓일수록 그 변명이 결국 내 영혼을 쉰내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자신에게 거듭거듭 묻고, 답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이해의 주머니가 쫄바지처럼 쭉쭉 늘어나고 성질대로 바로 내지르지 않고 한 박자  쉬게 되면서 내 안의 뜰을 들여다 보니 상대방을 더 이해하게 되고,  극단적인 흉한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거기서 조금 더 긍정적인 쪽으로 진행되면 남의 언행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토아 철학자’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책을 자주 꺼내 읽기 위해 제일 잘 보이는 책꽂이에 꽂아두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주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서서 읽게 됩니다.
 형광펜으로 좍좍 줄을 친 부분들이 앞다투어 마음을 삐집고 들어오네요.
거기에 이런 글이 섞여 들어왔습니다.
 
스토아 현자들은 누군가의 모욕적인 언행을 마치 개 짖는 소리 정도로 여겼다네요.
우리 삶의 목표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거나 그들의 불만을 피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분노하기보다 동정심을 베풀라고 하더라구요.
거기에 덧붙여서 아우렐리우스는 선한 사람은 절대로 원한을 품지 않으며 누군가 무자비하게 행동할 때 그들이 타인에게 품는 무자비한 감정을 우리가 그들에게 품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어요.
 
또한 분노와 증오심, 복수심이 느껴질 때 상대에게 복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처럼 되지 않는 거라네요.
 
가만히 묵상해 봅니다.
가슴 속에서 억울했던 마음, 서운했던 마음들이 봄눈녹듯 녹는 기분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글을 읽으면 '좋은 얘기구나'라는 생각만 했는데 점점 하나하나 실천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의 언행에 속을 끓이고, 분해 하고 하는 것에 우리의 소중한 삶의 에너지를 다 허비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지요.

알면서 실천하기가 왜그리 어려웠던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의 모습은 그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딸 아이가 책 읽을 때 줄치라고 사준 색연필을 깎습니다.
색연필을 빙빙 돌리며 칼에 힘을 주고 나무를 깎아내니 총천연색 연필이 나옵니다.

자신의 살을 도려내야 색색의 행복이 보이듯 우리네 삶도 색연필을 닮았습니다.


종이에 대고 그어봅니다.
색이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네 삶의 음양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고통이 있으면 행복도 있고 말입니다.
 
그렇게 제 살을 깎는 상처 뒤에 행복이 등에 업혀서 온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좌절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색연필을 깎는 내내 마음을 떠다녔습니다.
 
 ‘낙장불입’인 삶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덤으로 알았네요.
 오늘은 가을도 아닌데 수확이 참으로 좋네요.
 영혼의 수확 말입니다.
 
 날이 저물고 있네요.
 저녁 이내가 깔릴 차례입니다.
 
 살며시 마당으로 나가 코에 힘을 바짝 주어봅니다.
 자연이 하루의 빗장을 걸기 위해 햇살의 잔재를 내리누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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