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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Oct 06. 2016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

내 꿈에 작은 페달을 달다

“사람들은 내게 늘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이소영 지음-   


벼락처럼 머리를 치는 유명한 누군가의 번지르르한 말보다 어느 시골 할머니의 위와 같은 문장이 더 정수리를 친다.           

세상에는 철학자를 비롯하여 유명한 사람들이 남긴 멋진 말들이 쌔고도 쌨다.

읽으면 ‘야, 저런 얘기를 어떻게 귀신같이 뽑아내는 걸까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 명언들을 읽고 자신의 삶에 비추어보고,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의 독특하고 튀는 한 마디에 잠시 마음의 위안만이라도 얻을까 하고 책 속에, 누군가 올린 명언한 줄에 기를 쓸 때가 있다.     

그중 절절하게 ‘내 인생의 한 마디’가 되어 파도를 만났을 때마다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지 그 명언들은 내 영혼에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힘과 용기를 주곤 한다.

위의 이 글 또한 내겐 그런 영양제와도 같은 한 마디다.    

75세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1860~1961)의 말이다.

우연히 손자 방에 갔다가 도화지와 그림물감을 발견한 모지스 할머니는 그림을 시작한다.     

전문적으로 그림 공부를 해본 적도 없는 할머니는 101살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처음엔 마을 벼룩시장 등에서 2, 3달러에 팔리던 그림이 소설처럼 임자를 만나는 일이 발생한다.     

뉴욕의 미술품 수집가인 루이스 칼더(Louis Calder)가 우연히 작은 시골의 약국에 걸린 할머니의 그림을 보고 감동하여 그림을 구입한다.     

그리고 큐레이터인 오토 칼리어(Otto Kallir)가 할머니의 그림을 뉴욕 전시장에 내놓자 폭발적인 호응을 받는다.     

78세에 생애 처음으로 전문 미술 가용 물감과 캔버스를 선물로 받는 할머니.

할머니의 100번째 생일을 당시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평생을 자신이 살아온 일을 회상하면서 소박하게 꿈을 실천해 간 모지스 할머니.   

할머니를 소개하려고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꿈을 75세라는 나이에 실천하기 시작한 용기와 끈기를 보여준 모지스 할머니의 위에 말한 한 마디가 언제나 내 삶의 채찍이 되어 주기에 글을 시작한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이 인쇄된 우표)

할머니처럼 내게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때 전공을 그쪽으로 하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난 할머니처럼 그림지도를 받아본 적도 없는데 무슨 수로 우리나라의 입시제도하에서 미대를 갈 수 있는지 막연했다.    

(<타임지> 표지의 모델이 된 모지스  할머니)

또한 형제가 많았던 우리 집 형편에 미대를 뒷바라지하려면 엄마, 아버지의 등이 휠 것 같다는 판단에 알아서 기었다.

미대가 아니라 상대를 가기로...

그래서 난 대학원에서까지 국제경영을 전공함으로써 미술은 나에게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되었다.   

그 와중에 2000년에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기 위해 울진 산골로 귀농까지 하였으니 나의 꿈은 더욱더 낡아 빠져 기억조차 희미해진 시점에 모지스 할머니의 책을 만났다.     

내게 그림 소질은 없는 거로  확신하며 살았다.

그러나 소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무엇을 몰두하면 행복해지고, 마음이 넉넉해진다면 그것으로 최상의 소질을 퍼올리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이제 할머니보다 이른 나이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꿈을 꺼내 먼지를 털었다.

마음 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꿈이 이제야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난 수채화라면 환장을 한다.

물감으로 떡칠한 그림보다 물의 양으로 은은한 풍경이 되어 주는 수채화가 좋다.      

내친김에 용기를 내어 미술용 연필 한 자루와 수채화 물감과 파렛트,  붓 3개 그리고 작은 도화지와 초보용 책도 두 권 장만했다.

어찌어찌 수채화를 혼자 그려볼 생각이다.

귀농을 했으니 이런 기특한 결정도 하지 그대로 서울에 눌러 살았더라면 좀더 많이 갖기 위해 꼴값을 떨면 떨었지 이런 일에 마음을 두진 않았을 것이다.

  

남들이 그려놓은 수채화에 탄성을 내지르고 침 흘릴 게 아니라 나도 내 삶의 구석구석 작은 일들과 희망들을 수채화물감으로 서툴지만 나의 자연살이, 귀농이야기를 그려나갈 생각이다.     

꿈이란 다 이루었을 때보다 꿈이 녹슬지 않도록 먼지를 닦고, 구리스를 바르면서 꿈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것이 가슴 뛰고 행복한 일이 아닌지...     

세상이 언제까지 모서리로, 모서리로 나의 등을 떠밀지 모르는 불길함 앞에서도 그나마 당당할 수 있는 건 가슴속 어딘가에 꼭꼭 저며둔 꿈이 있기 때문이다.     

난 또 한 번 모눈종이에 나의 꿈을 하나하나 수납하듯 채워갈 것이고, 나의 꿈에 느릿느릿 가는 페달을 달 생각이다.

그리고 조그맣게 옹알이한다.

모지스 할머니 말마따나 지금이 내 인생에서 제일 젊은 때라고....     


그대는 그대의 어떤 꿈에 물을 주고 기름칠을 하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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