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이 주는 위안

귀농 아낙의 산골 철학

by 배동분 소피아

벌레들조차도

어떤 놈은 노래할 줄 알고

어떤 놈은 노래할 줄 모른다.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 이싸-


한여름에 피를 토하듯 울어대던 매미....

그는 혼자서도 굉장한 소리를 내지만 떼창을 들으면 지구가 흔들릴 것만 같다.

절대로 기죽을 것 같지 않던 매미소리가 조금씩 기가 꺾이고 여름이 기울기 시작하면 대신 풀벌레 소리가 점점 기세 등등해진다.


풀벌레들은 각자의 목소리로는 존재를 드러낼 수 없고, 공동체로 움직여야 비로소 그들의 존재가 가슴에 들어온다.

그들은 떼창만이 살길이어서 다 함께 울어줘야 소리가 산다.

1-IMG_9149.JPG

집도 절도 없이 이 너른 산골에 각자 흩어져서도 울 때만큼은 철저히 단체로 행동하니 그 또한 자연에 배울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풀벌레 소리 역시 풀 죽을 것 같지 않더니 조금씩 조금씩 그 세력이 약해지더니 그만 풀벌레 소리가 뚝 끊어졌다.


풀벌레들을 배웅해야 하는데 그럴 기회도 없었으니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가을이 끝장을 보이고 있다.

IMG_9163.JPG

우리네 삶을 눈감고 가만히 그려보니 어린 시절 눈썰매 타는 것과 흡사하다.

퇴비 부대에 콩깍지나 왕겨 등을 넣고 묶으면 훌륭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명품 썰매‘가 된다.

그것을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높디높은 눈 쌓인 가파른 언덕길을 땀이 삐질삐질 새어 나오도록 올라가야 한다.


잠시 후에 만끽할 기쁨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듯 오르고 또 오른다.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명품 썰매를 바닥에 놓았을 때의 기쁨이란...

1-IMG_2232.JPG

엉덩이를 썰매에 내려놓는 순간, 그 기쁨은 현실이 된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올라갈 때의 길고도 긴 고행에 비해 너무도 짧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은지??

고통은 길고, 더디게 지나가지만 행복의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밖에 안 되는 듯 해 허무하고, 맥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명품 썰매를 옆구리에 차고 다시 언덕을 기어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이 언덕만 오르면 썰매 타는 일처럼 행복이 무조건 기다리고 있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죽으라 기어올라갔으나 눈보라가 몰아쳐 미끄럼 타기를 포기하고 올라갈 때보다 더 힘들게 썰매를 옆구리에 끼고 내려와야 한다.


1-IMG_2154.JPG

내려올 때는 쉬울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눈길이고, 빙판길이라 엉거주춤 쪼다처럼 걸어내려가야 하므로 올라갈 때보다 몇 곱절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후퇴했다 하더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실망하거나 내 팔자를 탓하지 않고 다시 썰매를 끼고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행복과 불행이 딱딱 번갈아 내 눈 앞에 펼쳐 저도 버겁고, 두개골이 열릴 지경인데 행, 불, 행, 불의 순서는커녕 내 삶은 어째 자꾸만 행, 불, 불, 불, 불, 어쩌다 행....뭐 이런 순서인 것만 같아 얼굴이 노리끼리해가지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은 아닌지.

IMG_2164-1.JPG

더 가관인 것은 그 불행이 어떤 색깔을 띨 것인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압력밥솥도 압이 꽉 차면 추를 칙칙 거리며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요란 방정을 떠는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네 고통은 그런 신호는커녕 내가 알아챌까 무서워 조심조심 기듯이 온다.


불공평하다 생각하니 한없이 김 빠진다.

하지만 우리가 옆구리에 ‘명품 눈썰매’를 끼고 올라갈 때는 미리 행복을 뻐근할 정도 가불 받았으므로 그 뒤가 조금은 고통스러워도 얼추 삶은 똔똔이라 생각하면 맘 편하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촉에 때가 끼거나 녹이 슬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덜 버겁게 느껴진다.

우리는 모든 것이 버라이어티 해야 행복하다고 단정 짓기 때문에 내 삶만 똥 밟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솜털처럼 작은 행복을 느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듬이의 먼지를 털고, 기름칠을 해보자.

작디작은 행복도 놓치지 않고 감지하면 그만큼 내 행복 자루가 빵빵해지지 않을까.

1-IMG_2099.JPG

하이쿠 시인 이싸는

“벌레들조차도

어떤 놈은 노래할 줄 알고

어떤 놈은 노래할 줄 모른다"고 했다.

IMG_2261.JPG

난 그것을 어떤 사람은 작디작은 소소한 행복도 놓치지 않기 때문에 그의 행복주머니는 커져만 가고 삶을 노래할 줄 안다고 해독하고 싶다.

한 줄의 짧은 시가 오늘은 나의 스승이다.


그대는 오늘 어떤 스승을 만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