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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Oct 15. 2016

소소한 행복이 주는 위안

귀농 아낙의 산골 철학

벌레들조차도

어떤 놈은 노래할 줄 알고

어떤 놈은 노래할 줄 모른다.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 이싸-


한여름에 피를 토하듯 울어대던 매미....

그는 혼자서도 굉장한 소리를 내지만 떼창을 들으면 지구가 흔들릴 것만 같다.     

절대로 기죽을 것 같지 않던 매미소리가 조금씩 기가 꺾이고 여름이 기울기 시작하면 대신 풀벌레 소리가 점점 기세 등등해진다.  

  

풀벌레들은 각자의 목소리로는 존재를 드러낼 수 없고, 공동체로 움직여야 비로소 그들의 존재가 가슴에 들어온다.

그들은 떼창만이 살길이어서 다 함께 울어줘야 소리가 산다.

집도 절도 없이 이 너른 산골에 각자 흩어져서도 울 때만큼은 철저히 단체로 행동하니 그 또한 자연에 배울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풀벌레 소리 역시 풀 죽을 것 같지 않더니 조금씩 조금씩 그 세력이 약해지더니 그만 풀벌레 소리가 뚝 끊어졌다.


풀벌레들을 배웅해야 하는데 그럴 기회도 없었으니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가을이 끝장을 보이고 있다.


우리네 삶을 눈감고 가만히 그려보니 어린 시절 눈썰매 타는 것과 흡사하다.

퇴비 부대에 콩깍지나 왕겨 등을 넣고 묶으면 훌륭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명품 썰매‘가 된다.     

그것을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높디높은 눈 쌓인 가파른 언덕길을 땀이 삐질삐질 새어 나오도록 올라가야 한다.


잠시 후에 만끽할 기쁨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듯 오르고 또 오른다.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명품 썰매를 바닥에 놓았을 때의 기쁨이란...      

엉덩이를 썰매에 내려놓는 순간, 그 기쁨은 현실이 된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올라갈 때의 길고도 긴 고행에 비해 너무도 짧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은지??

고통은 길고, 더디게 지나가지만 행복의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밖에 안 되는 듯 해 허무하고, 맥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명품 썰매를 옆구리에 차고 다시 언덕을 기어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이 언덕만 오르면 썰매 타는 일처럼 행복이 무조건 기다리고 있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죽으라 기어올라갔으나 눈보라가 몰아쳐 미끄럼 타기를 포기하고 올라갈 때보다 더 힘들게 썰매를 옆구리에 끼고 내려와야 한다.

   

내려올 때는 쉬울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눈길이고, 빙판길이라 엉거주춤 쪼다처럼 걸어내려가야 하므로 올라갈 때보다 몇 곱절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후퇴했다 하더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실망하거나 내 팔자를 탓하지 않고 다시 썰매를 끼고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행복과 불행이 딱딱 번갈아 내 눈 앞에 펼쳐 저도 버겁고, 두개골이 열릴 지경인데 행, 불, 행, 불의 순서는커녕 내 삶은 어째 자꾸만 행, 불, 불, 불, 불, 어쩌다 행....뭐 이런 순서인 것만 같아 얼굴이 노리끼리해가지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은 아닌지.

더 가관인 것은 그 불행이 어떤 색깔을 띨 것인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압력밥솥도 압이 꽉 차면 추를 칙칙 거리며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요란 방정을 떠는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네 고통은 그런 신호는커녕 내가 알아챌까 무서워 조심조심 기듯이 온다.   

  

불공평하다 생각하니 한없이 김 빠진다.

하지만 우리가 옆구리에 ‘명품 눈썰매’를 끼고 올라갈 때는 미리 행복을 뻐근할 정도 가불 받았으므로 그 뒤가 조금은 고통스러워도 얼추 삶은 똔똔이라 생각하면 맘 편하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촉에 때가 끼거나 녹이 슬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덜 버겁게 느껴진다.     

우리는 모든 것이 버라이어티 해야 행복하다고 단정 짓기 때문에 내 삶만 똥 밟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솜털처럼 작은 행복을 느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듬이의 먼지를 털고, 기름칠을 해보자. 

작디작은 행복도 놓치지 않고 감지하면 그만큼 내 행복 자루가 빵빵해지지 않을까.   

하이쿠 시인 이싸는

“벌레들조차도

어떤 놈은 노래할 줄 알고

어떤 놈은 노래할 줄 모른다"고 했다.   

난 그것을 어떤 사람은 작디작은 소소한 행복도 놓치지 않기 때문에 그의 행복주머니는 커져만 가고 삶을 노래할 줄 안다고 해독하고 싶다.      

한 줄의 짧은 시가 오늘은 나의 스승이다.

    

그대는 오늘 어떤 스승을 만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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