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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Oct 17. 2016

그댄 그리움을 어찌 다스리는지요?

귀농 아낙의 비 오는 날 단상

그리움은 

길가에 쭈그리고 앉은

우수의 나그네  

   

흙 털고 일어나서 

흐린 눈동자 구름 보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그네 뒷모습     

-박경리, <그리움> 중에서-  



 그리움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난 목젖에서 온다.

목젖이 제일 먼저 뎅그랑거리면 나의 그리움의 멱이 찼다는 신호다.     

그리움에는 거짓이 없고, 과장이 없다. 

이 감정이 최고치를 치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서성이던지, 쭈그리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던지, 걷던지 해야지 맨 정신으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거다.   

그리움이 노을처럼 짙어지면 내가 나 자신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뭉크의 <절규>와 같은 감정표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표정과 행동이 극히 침착하다는 것 또한 그리움이 갖는 특이사항이다.

     

그리움이란 이성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것 중 으뜸이지 싶다.

그래서 그리움은 13월에 산다.     

그리움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저 홀로 익어만 간다.

매인 곳 없는 나그네처럼....

그리고 자신의 세월 속에 산다. 

13월이라는...    

이 감정은 바다 양식장의 부표처럼 쉽게 가라앉지도 않고,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밖으로 쏟아져 나오지도 않고, 순천만의 갈대밭에서처럼 눈이 부셔 쳐다볼 수도 없다. 

꼭두새벽부터 오밤중까지 다른 생각이나 감정이 끼어들지 못할 만큼 13월에 사는 그리움은 그만큼 독하다.    

그나마 다른 감정들은 사생결단을 내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잡으면 조금 차도가 있지만 그리움은 독버섯처럼 온몸을 흘러 다녀 그 시작과 끄트머리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없다.  


  

오늘은 딸이 많이 그리웠다.

임신한 사람처럼 울렁울렁거려 오래 마당을 걸었다.

그리고 딸이 그리우면 하는 행동이 하나 또 생겼다.     

냉장고에 붙은 노란 집 모양의 냉장고 자석을 떼었다 붙었다 반복한다.

딸이 독일에서 내 손잡고 들어가 사 준 저 노란 작은 집 모양의 냉장고 자석과 잎사귀가 흩날리는 나무 한 그루.....  


오지 산골로 귀농했을 때, 유치원생이던 딸아이가 자연에서 책과 여행에 젖어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어미와 뚝 떨어져 살게 되었다.

서울의 학교 기숙사로 가는 딸아이의 이불과 베개를 싸놓고 들어와 소리 없이 울었다.

딸의 눈가는 이미 벌겋게 노을이 진 상태...

      

아이들을 자연에서 책과 여행으로 키우겠다는 다부진 생각으로 남편과 난 사표를 내고 귀농할 만큼 아이들의 교육은 내게 어깨 무거운 중차대한 일이었다.     

엄마의 그런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아이들은 자연에서 뒹굴며 책을 친구 삼아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스승 삼아 잘 자라주었다.   

연고도 하나 없는, 사방을 둘러 봐도 내 편 한 번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이 낯선 산골에서 잉크 물처럼 한 물에 풀어져 살았던 우리 가족...

가족간의 사랑의 밀도는 조청처럼 끈끈했고, 꼬아놓은 새깨줄처럼 어느 하나가 풀리면 다른 하나는 자동으로 풀리는 밀접한 관계 속에 살았다.

이제 헤어지는 연습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나도 딸도 말없이 기숙사로 갈 짐을 쌌고, 차에 태워 남편과 난 학교 기숙사에 딸을 들여보냈다.

    

이제 딸을 두고 헤어질 시간....

딸은 나를 꼭 끌어안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엄마, 울지 않기다.”     

누가 누구더러 해야 할 말이었는데...

딸은 자신의 슬픔도 버거울 텐데 엄마를 걱정했던 거다.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난 무슨 소리냐는 듯 박꽃처럼 하얀 웃음으로 답례를 하고 돌아서 산골로 왔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산골로 달려와 냉장고에 한 그루의 나무를 스텐실 해 주었다.     

엄마가 나무 그림을 좋아하고, 냉장고는 엄마가 자주 여닫는 곳이라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 나무를 볼 거라는 생각에서 해주는 거라고 했다.     

‘그랬구나. 내 딸,

그래서 네가 밤새 무슨 투명한 필름 같은 것에 스텐실 본을 쭈그리고 앉아 칼로 오렸구나.

저 많은 낙엽들을 손가락이 아프도록...‘    

딸이 개학을 하여 다시 서울로 갔을 때도 냉장고에 스텐실 해준 나무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꿋꿋하게 그리움을 다스렸다.      

그러다 재작년에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딸아이가 이번에는 꼭 엄마와 같이 유럽 배낭여행을 다시 다녀오고 싶단다.

자신의 여행 경비는 아르바이트해서 자신이 번다는 부록 같은 멘트를 날리며...   

딸과 둘이 드디어 유럽 배낭여행을 오래도록 다녔다.

그때 독일에서 엄마에게 선물할 게 있다며 쥐똥만 한 도자기로 된 노란 집 한 채를 사주는 딸아이....     

딸은 자신이 그려준 냉장고의 나무 아래 붙이길 바랬던 거다.

(오른쪽은 딸아이가 유럽 배낭여행지에서 날  위해 사다준 냉장고 자석들...)

이제 나뭇잎이 흩날리는 한 그루 나무 아래 노란 집 한 채가 들어섰다.

볼수록 이쁘고 정겹다. 내 딸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나무와 집을 들여다본다.

볼 때마다 딸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은 비가 왔다.

빗소리에 어찌나 부슬거리던지 그만 그리움을 들깨 우고 말았다.     

딸이 그리울 때면 난 딸이 사준 노란 작은 집을 떼었다 붙였다 한다.

오늘은 몇 번을 떼었다 붙였다 했던지...

그러면 물먹은 솜 같던 마음이 조금씩 뽀송해지기 시작한다.

    

그대, 그리움이 턱까지 차오른 날엔 어떻게 그 그리움을 다스리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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