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이 갑자기 현실이 됐다
35주가 넘어가면서
슬슬 출산가방에 대한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나는 20주 후반에 미리 다 싸놨어.”
“막달인데도 아직 안 쌌어.”
이런 말들이 계속 들려왔다.
사람마다 시기는 달랐지만
대체로 30주가 넘으면 출산가방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출산가방은 말 그대로
출산을 하러 갈 때 가져가는 가방이다.
요즘은 병원에서 며칠 입원한 뒤
바로 조리원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최소 2주에서 3주 정도 사용할 짐을 챙겨야 한다.
병원과 조리원에서 알려준 준비물 리스트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 정도면 금방 준비하겠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이나 맘카페를
조금만 검색해 보면
병원에서 알려준 준비물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연고, 로션, 가슴팩,
각종 생활용품들...
도대체 이게 왜 필요한 걸까 싶은
물건들도 한가득이었다.
용어도 낯설었다.
뭐가 뭔지도 모르겠어서
일단 보이는 대로 캡처를 하고
메모를 했다.
당연히 집에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전부 새로 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출산이 정말 가까워졌다는 현실이
갑자기 실감 났다.
‘휴... 이걸 언제 다 준비하지.’
‘이게 진짜 필요한 건 맞나...’
답답함이 밀려왔다.
게다가 준비물은
자연분만용, 제왕절개용으로
또 나뉘어 있었다.
나는 평생 스스로를
파워 J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계획 세우고
체크리스트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출산가방 준비리스트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냥...
만사가 귀찮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갔다.
그 사이 인스타 알고리즘은
온통 출산가방 리스트로 도배가 되었고,
맘카페에서도 출산가방 글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눈팅만 하던 나도 어느새
낯설던 용어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진짜 필요해 보이네.’
‘이건 굳이 새로 안 사도 되겠다.’
조금씩 구분이 생겼다.
새로 사야 할 것과
당근으로 사도 될 것들을 나눠
천천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아기용품이었다.
배냇저고리, 속싸개, 겉싸개는 기본이고
초점책, 애착인형까지 챙긴다는 글들이 보였다.
아기 유산균, 비타민D도
준비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한테
애착인형이 필요한가...?’
‘약도 벌써 사야 하는 건가...?’
점점 더 헷갈리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마음을 정했다.
“필요하면 그때 사자.”
속싸개와 겉싸개는
병원에서 준다고 해서 패스했다.
아기 옷도 욕심내지 않고
배냇저고리 한 장만 챙겼다.
임신 기간 동안에는
크게 체감하지 못했는데
막달이 다가오고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육아용품, 출산용품 비용이
눈에 보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우여곡절 끝에
출산가방을 마무리했다.
SNS에서 보던 것처럼
완벽하게 정리된 출산가방은 아니지만
내 기준에서 필요한 것들만 챙겼는데도
짐이 한가득이다.
나는 평생 J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요즘은 점점 P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세상 모든 엄마들도
이렇게 시작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