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하재영> 함께 읽기를 시작했다. 1일 차! 오늘 읽었던 부분 중 인상 깊었던 내용에 대해 단상을 남겨볼까 한다.
p.25 가족 구성원들이 같은 성(姓)을 공유하는 집에서 홀로 다른 성을 지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중략) 부계 혈통주의에서 여성은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것이 아니라 감히 따르지 '못한다'
p.26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노동의 현장.(중략)
'집처럼 편하다'는 관용구대로 일과가 끝난 뒤 돌아가는 휴식의 공간을 집이라 한다면 엄마에게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이기 위해 엄마는 집을 비워선 안되었다.
유교적인 문화에 따라 아직도 관습처럼 남아있는 역할 구분,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며느리들의 명절은 달라진 것이 없다. 지난해 코로나로 인한 집합 금지의 여파로 가족 간의 대면이 줄어들어 명절 후 이혼율이 떨어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도 덕분에 지난 명절에 처음으로 긴 연휴를 즐기며 보냈더니 명절이 끝나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많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명절을 앞두고 예민해지고, 명절을 보내고 나면 스트레스와 피곤함에 온몸이 녹초가 된다. 명절증후군이 생기는 것도, 명절 이후 주부들의 홈쇼핑 주문량이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명절만 되면 사라지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반발이자 보상 아닐까.
어릴 적 명절을 떠올려보면 집안 구석구석 친척들이 둘러앉아 어른들은 술판을 벌이고 고스톱을 치는 소리, 아이 들노는 소리에 시끌벅적했는데, 엄마들은 주방에서 나올 시간도 없이 전을 붙이고, 수시로 손님이 찾아올 때마다 상을 새로 차려가며 분주하게 보냈다. 겨우 잠자리에 들 때가 돼서야 겨우 쉴 수 있었지만, 다음날 새벽같이 차례 준비를 해야 하느라 그마저도 푹 잘 수도 없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보고 자란 나도 결혼 후 똑같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과거에 비해 명절의 분위기는 차분해졌다. 더 이상 손님이 찾아오지 않고, 자기 가족들과 여행을 가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일부, 아직도 옛 관습 그대로 지키는 집들이 더 많아 명절 전후로 맘 카페에는 시댁일로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는 글이 늘어난다. 그리고 너무 재미있는 건, 명절마다 찾아오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자 대화를 정리한 짤이 커뮤니티와 카톡을 중심으로 돌아다니는데 며느리 세대가 보는 게시판에는 며느리의 사이다 발언으로 끝이 나고, 부모님 세대에서는 시어머니의 사이다 발언으로 마무리가 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에 살이 더 붙어서 시대를 반영한 현실 대화가 오간다는 점이다.
'집처럼 편하다' 그렇게 편안한 공간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희생을 하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전업주부의 삶을 살게 되면서, 남편은 경제를 책임지고, 나는 가정을 돌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 오면 손하나 까딱하지 않던 남편이 얄미웠지만 참았고, 그저 아이들하고 시간을 보내는데만 집중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남편과 며칠간 싸움 같은 치열한 대화가 오가던 그때, 10년간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며 남편에게 퇴근시간을 달라고 했다. 남편은 나의 요구가 당황스럽고, 이해도 안 되었지만, 처음으로 단호한 나를 보며 퇴근을 인정해줬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24시 대기상태로 살던 나의 습관이 아이가 10살이 되도록 몸에 배어있었다. 아이가 잠이 들어도 남편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돌본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니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으려면 밤 12시나 되어야 했고,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즐기려면 새벽에 잠들곤 했다. 어차피 잠 못 자던 것은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적응했던 부분이라 상관없었지만 불규칙한 생활은 나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고, 그 화살은 다시 아이들에게로 돌아가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나의 나쁜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내가 요구한 퇴근시간은 가족들이 모두 저녁을 먹고 설거지가 끝나는 그때부터였다. 전에는 설거지를 마쳐도 남편이 야식을 원하면 챙겨줘야 했고, 아이들을 재우며 잠시 쪽잠을 자고 일어나서 늘 근육통을 호소하는 남편을 주물러주며 재워줘야 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가장 먼저 책을 잡았다. 아이들 책 읽어주는 것만 했지 나를 위한 독서는 끊긴 지 너무 오래였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퇴근을 선언한 지 어언 1년, 나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지는 않았으나, 나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 전에는 무조건 집밥을 외치던 남편도 한 끼 정도는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먹는 것으로 나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야식은 건강을 이유로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은 각자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시간이 되면 스스로 자러들어간다. 아이가 가끔은 엄마가 챙겨달라고 할 때도 있지만 이제 엄마 시간이라는 걸 아이들도 알아서 더 이상 보채지 않는다.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아이들도 나의 시간을 존중해주고 있다.
나는 독서 습관을 잡게 되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읽다 보니 습관이 잡혀서 이제는 최대한 편독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