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아들들보다 순한 성향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여기서 순한 성향이라는 것은, 몸으로 거칠게 노는 것의 정도를 말한다.
누구네 집처럼 성한 가구 하나 없고, 지나치게 활동적이라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아이는 아니다
그래도 아들 둘을 키운다고 하면 다들 위로의 눈길을 보내준다.
어르신들은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다며, 딸 하나 꼭 낳으라는 말까지 덧붙여준다.
나도 아들 둘 엄마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처음부터 아들 둘 엄마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갖고 보니 아들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아이들이 크면서 내가 어울리는 엄마들도 아들 엄마 위주로 바뀌었다.
남매 엄마까지도 괜찮은데 딸만 있는 엄마랑은 잘 못 어울린다. 아이를 대함에 있어 관점의 차이를 나 스스로 극복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를 두고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그 다른 생각을 머리로는 인정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보니 자꾸 피하게 됐다.
대부분의 아들들이면 좋아하겠지만 특히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정리해보면,
1. 변신로봇
워낙에 손으로 꼼지락 거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아들들이 사랑하는 변신로봇을 내가다 변신하고 조립해줬다. 변신로봇에 아이가 빠지면... 합체와 변신을 정말 무한반복해줘야 한다.
"엄마, 변신해줘"
"엄마, 합체해줘"
"엄마, 자동차로 변신"
"엄마, 로봇으로 변신"
"엄마, 이거 부서졌어~ 으앙~~~~~~~~~~~~"
정말 내가 왜 이걸 변신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게, 엄마인 나는 변신로봇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캐릭터가 꾸준히 나오는 로봇 시리즈도 싫지만, 그 캐릭터들끼리 합체 변신하는 로봇이 나오는 걸 증오하게 된다. 가격도 비싼데, 그 변신은 모두 엄마의 몫이기 때문이다.!!!
언제쯤 아이가 혼자 변신합체를 할 수 있나 기다려보지만 막상 아이가 혼자 스스로 변신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이미 그 변신로봇에는 흥미를 잃어 가지고 놀지 않는다.
2. 공룡
우리 아들들은 또래에 비해 공룡에 늦게 빠졌다. 자동차만 좋아하고 지나가나 보다 했더니 뒤늦게 빠진 사랑이 더 무서웠다. 공룡이름을 줄줄 외우며 한글 공부를 공룡으로 시작할 만큼 사랑에 빠졌다.
집에 있는 공룡 책들은 하도 읽어서 너덜너덜 해졌고, 나도 매일 읽어주다 보니 공룡 생김새까지는 자세히 몰라도 이름 정도는 줄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길고 어려운 공룡이름 읽어주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닌데,
우리가 아는 티라노사우르스, 스테고사우르스, 프테라노돈 등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정말 읽기 힘든 그 이름을 가진 공룡이름을 하나하나 다 읽어주다 보니 주변에서 공룡이름 읽는 발음이 너무 좋다고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 한 가지 단점은 아이는 그림을 보며 소리로 이름을 들으니 공룡에 대해 뿔이며 발톱 하나까지 묘사를 잘하지만 엄마인 나는 이름만 기억하지 그림과 매치를 못한다.
3. 자동차
사실 첫째는 차에 푹 빠졌었다. 보드북으로 뛰뛰빵빵 책을 끼고 살더니 소방차며 각종 중장비까지 모든 일하는 차를 사랑했다. 심지어 공사현장을 지날 때면 네이버 검색을 해서라도 차 이름을 알아내야 했다. 로더, 그라인더, 롤러 등 포클레인과 지게차만 알던 내가 별걸 다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온갖 차에 빠져 살다가 잠시 차가 로봇으로 변하는 로봇 시리즈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고 그 시기를 지나 공룡에 잠시 빠졌지만 결국 차로 돌아왔다. 자동차 게임의 영향으로 슈퍼카에 빠졌기 때문이다. 정말 창피할 정도로 페00, 람 0000의 차가 지나가면 소리를 지르면서 쳐다본다.
그렇게 차를 사랑하는 아이 덕에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모터쇼는 개최되면 항상 다녔고, 아산에 위치한 현대 자동차 공장 견학도 다녀왔다. 자동차 박물관은 필수고 교통안전 체험까지 끝냈으며, 스피드레이싱 경기를 직관하기도 했다. 집에 다양한 종류의 차가 전시되어있었고, 약 10년간 장난감 상자에 가득 채워져 있던 차는 최근 아이와 합의 끝에 몇 개만 남기고 정리를 했다.
4. 레고 & 프라모델
엄마의 사심이 담긴 레고였다. 어렸을 때 레고를 맘껏 못했던지라 아이와 레고를 조립하는 즐거움을 느끼고자 또래보다 일찍 첫째를 끼고 레고를 시작했다. 덕분에 아이는 또래보다 월등한 실력으로 레고를 조립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만큼 레고의 가격이 비싸서 엄마의 지갑에 위기가 온다. 한참 할 때는 블럭방에 정액권 끊어서 다녔는데 웬만한 걸 다 조립하고 나니 구하기 힘든 것, 비싼 것, 어려운 것 만 찾아서 엄마를 애먹인다.
그래서 살짝 관심을 돌려 프라모델의 세계로 입문을 시켰는데, 이것도 개미지옥이다.
건담은 무슨 시리즈도 많고, 단계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도구도 필요하고 레고 못지않지만 레고보다 저렴하고 부피를 덜 차지한다는 장점이 있어서 현재는 프라모델로 밀어주고 있다.
얼마 전 아이들과 서바이벌 게임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할 기회도 없었지만 성향상 굳이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베틀 그라운드 실사판이라며 좋아했다. 게임을 하지 않은 엄마는 베틀 그라운드에 관심도 없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니 함께 했다. 더운 날 땀으로 흠뻑 젖었어도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다. 게임이 끝나고 흥분을 감출 수가 없어서 한참을 수다를 떨었던 날이었다.
아들을 키우면 엄마는 장군이 된다는 소리가 있다.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거칠고 굵은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진다. 한동안 최민준 소장의 강연을 육아 지침서보다 더 열심히 보던 시절이 있었다. 여자인 엄마는 모르는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분의 강연은 다른 누구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왔는데, 한 가지 더 좋은 점은 아들을 이해하려다 남편까지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아들연구소'가 아니라 '남자연구소'로 바꾸셔야 할 듯싶다.
그분의 강의 중에 인상 깊은 것 중에 전달사항은 눈을 보고 간단명료하게 직접 말할 것, 게임하는 것이 싫으면 엄마도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으면 말이 안 들리기 때문에 아무리 엄마가 목청 높여 소리쳐도 못 드는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부모교육이든 실천이 참 어렵다. 듣고 공감했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너무 힘들다.
아이들은 매일 루틴처럼 싸우다 놀다를 반복한다. 잘 놀 때는 괜찮은데 싸우다 금세 풀어져 다시 놀걸 알면서도 싸우고 있을 때 어디까지 개입을 해야 하는지가 고민이다. 그때 잘못 개입하면 오히려 나만 화가 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는 상황이 생긴다. 아들들이 더 크면 욕쟁이 엄마가 된다던데, 아마 나도 몇 년 뒤에는 이 xx 하면서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라면 아이들을 위해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변한다.
아이가 하나라도 더 체험했으면 좋겠고 즐겁게 즐겼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가 먼저 나서서 시범도 보이고 함께 온몸으로 놀아주면서 아이들과 함께 동화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성향이 변한 걸지도 모른다. 아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체력을 더 요하는 일이지만 안타까운 위로를 받을 일은 아닌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