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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Feb 25. 2021

색, 뒤

박경진 개인전


마약사무실폭파현장, Oil on canvas, 227.545.4 cm, 2018



예술은 바로 이런 순간 내게 울림을 준다. 


작가가 삼청동 한복판에서 버젓이 개인전을 열고 있는 아티스트라는 것만 알았지, 그림을 다 보고 마지막에 관련 텍스트를 읽기 직전까지도 나는 작가의 또 다른 직업이 세트장 풍경을 만드는 작화 노동자라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휴일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전시 스케줄을 직접 체크하고 움직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나는 이런 전시를 만나기 위해 늘 습관처럼 전시장 이곳저곳으로 돌고 도는 것이 아닐까? 


박경진의 페인팅은 영화나 뮤직비디오 세트장을 만드는 작업장의 풍경을 그린다. 화면 속에서 도색을 진행중인 몇몇 인부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작가 자신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듯, 작가는 생계를 위해 작업 외에 또 다른 노동을 이어가고있다.



당시 동네 마트 생선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방사능 관련 뉴스로 매출이 급격하게 떨어졌던 거죠. 
사실 저와 먼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저에게도 영향을 미치니까, 
원전에 대해 계속 찾아보게 되었어요.(...) 
사건은 지속적으로 터지고 또 감정이 쌓이고 그랬어요. 
그래서 주변 분들에게 조언을 요청했었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존이라면
작가 자신으로서 제가 생존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작가 생활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 현장을 그려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2016년부터 제가 일하고 있는 세트장의 모습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어요.
제가 현장에서 하는 일은 목공 아저씨들이 구조물을 만들어 놓으면, 
페인트를 이용해서 질감을 나타내도록 하는 거에요.

박경진 인터뷰 중



마약사무실폭파현장, Oil on canvas, 227.545.4 cm, 2018


마약사무실폭파현장, Oil on canvas, 227.545.4 cm, 2018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 현장에서는 수많은 페이크 장면들이 만들어지고 폐기되곤 한다. 그와 인부들이 도색한 벽면은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영상화면 속에서 실제 장소처럼 위장되는 것이다. 잠깐의 촬영을 위해 완성됐다가 이내 철거되는 세트장과, 생업을 위해 그 과정을 캔버스로 옮기는 행위에 대한 고찰. 작가는 어느날부터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서의 행위와, 예술행위가 구분되기를 꿈꿨을 것이다. 현장에서는 노동자로, 집으로 돌아가서는 예술가로 분리되는 자신을 감당한다는 것.


내가 박경진의 페인팅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이제 명확해졌다. 붓이든 연필이든 잠시 손에서 놓고, 생계를 위한 일용직 노동에 몸을 던져야 할 지라도. 모든것은 우리 스스로 다시금 캔버스 안으로, 종위 위로 옮겨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 그게 밑바닥 시궁창 인생이든, 호화로움의 극치를 달리는 삶이든. 어떤 일을하며, 어떤 삶을 살든지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유일한 것. 예술로 표현해 내고자 하는 그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IDOL - 커피한잔드시고하게요, Oil on canvas, 227.545.4 cm, 2018


IDOL - 커피한잔드시고하게요, Oil on canvas, 227.545.4 cm, 2018



지금은 경험을 통해 얻은 추상성, 가변성 등을 
회화 안에 어떻게 끌고 들어올것인가라는 자세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간과하지 않고자 하는 것은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세트장 자체는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지만, 
그 공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존재들이더라고요.

박경진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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