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1 요리의 이상과 현실에서 현실을 담당!
상상 속에서 요리하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은 이렇다. 재료를 일정한 속도로 썬다. 손질한 재료를 불에 올리고, 알아서 익어가는 동안 재료를 담았던 그릇을 닦는다. 타지 않을 타이밍에 맞춰 싱크대에서 불로 옮겨가 슬쩍 뒤집어준다. 조리가 끝나갈 때 쯤, 숟가락과 젓가락을 식탁 위에 놓고, 조리된 음식을 묵직한 그릇에 담아 식탁에 옮긴다. 싱크대와 도마 위는 아까 한차례 치웠으니 깨끗한 상태다. 이 때 내가 두가지의 반찬을 계획했다고 치자. 첫번째 반찬이 완성되기 중간 지점쯤 왔을 때 두번째 반찬을 조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가지의 반찬이 동시에 따끈하게 끝을 맺는 병렬식의 완벽한 프로세스에 따라 시간을 분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반찬이 끝나고나서 두번째 반찬을 위한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반찬통 그대로 식탁에 오르고, 싱크대와 도마 위는 오늘 식사의 재료가 무엇인지 고스란히 알려준다. 사실 음식을 맛있게 만들었다면, 도마를 포함한 조리공간이 너저분해도 상관없다. 맛도 없는데 지저분할 때 마음이 최고조로 아픈 것이다.
결혼 전의 나는 엄마의 아바타처럼 간장 두 숟갈! 고춧가루 한 숟갈! 대파는 3센치 정도로 썰어! 라는 입력에 따라 움직였다. 이런 내가 재료를 써는 것은 익숙할지언정, 직접 간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남편의 입맛이 까다롭다고 탓할 수 없다. 남편은 생선과 고기는 그대로 구운 것, 야채는 날 것인 채로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남편이 계량을 확인하지 않고 이것저것 슬슬 뿌리고 구워, 파스타나 스테이크를 맛있게 만들어낼 때 나는 질투와 분노와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어 혼란스럽다.
무엇을 어떻게 해 먹고 살아야 할 지 걱정하는 나에게 많은 사람들은 ‘하다 보면 늘어.’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되나 봅시다.’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점차 늘고 있다고 스스로를 향해 끄덕여주고 싶다. 그 이유는 레시피 없이 할 수 있는 반찬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양가 된장을 섞어 만든 화합의 된장찌개, 더 이상 다시다를 넣지 않아도 되는 미역국, 김치가 맛있어서 가능한 김치찌개, 볶고 익히면 어떻게든 되는 감자볶음과 버섯볶음 같은 것들이 있다.
하다보니 점점 늘고 있는 나를 칭찬만 해주고 싶지만, 처음 해보는 메뉴 앞에서는 과할 정도로 레시피에 의존한다. 올해 어버이날을 맞아 시부모님께 처음으로 직접 만든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메뉴는 소불고기이다. '왜 처음해보는 메뉴로 대접한다고 했을까' 뒤늦게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었지만 이미 할 줄 아는 것 중에 대접할 만한 실력의 요리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고기를 앞에 두고 내가 아는 맛이 나오든, 처음보는 맛이 나오든 기회는 단 한번이라며 비장한 마음으로 '백종원의 소불고기' 영상을 찾았다.
영상의 레시피는 소고기 500그램 기준이었다. 우리는 650그램 샀는데? 당황하지 않고 간마늘, 진간장, 참기름같은 모든 양념장 재료에 1.3을 곱하여 계산했다. 처음 해보는 요리 앞에 나의 감(感)이란 없다. 그 날의 소불고기는 다행히 내가 아는 맛이 나왔다. 시부모님도 맛있게 드셨다.(고 믿는다.)
척척 완성해내는 음식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 입 맛을 보고는 '설탕이 조금 더 들어가면 되겠는데?' 하고 맛의 빈틈을 찾아내어 알맞게 채우는 초능력을 갖고싶다. 하다 보면 늘테니까. 그러다 언젠가 내 입에서 '오늘 미역국에다가 소불고기나 해서 먹을까?' 하는 오만한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벌써 흐뭇하다.
요리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굳건히 현실을 지키고 서 있는 나를 돕는 물건들이 있다. 마치 신데렐라에 나오는 갓마더 요정처럼. 그것들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했으니, 다음 편에 써야겠다.
[ 베란다에 양파가 몇 개 남아있는지, 냉장고에 있는 우유팩은 얼마나 가벼운지 등 재고파악에 능할 뿐더러 어떤 계절에 어떤 식재료를 먹어야 맛있는지 (국룰처럼) 알고 있는 우리집 어른들이 생각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먹고 살 줄 상상도 못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