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 in the house.

02.01 퇴사 전 일기

by 솦히

퇴사하기 한 달 전이라고 일기를 쓴 지, 세달이 지났다.

퇴사한지 딱 두 달이 되었다. 이런 일기를 썼었다.




저는 퇴사를 앞두고 있다. 딱 한 달 남았다.갑작스러운 것은 아니고 퇴사할 날짜를 4월 마지막날로 정해두고, 이번 해를 시작했다.


퇴사가 정해져있다고 해서 일을 대충할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홀가분한 마음이 생겼다. 누구든 일하다보면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싫증 또는 짜증이라든지, '엥?' 하는 의아한 마음이 생기지 않나. 하지만 이제는 ‘아 이게 마지막이겠군’ 하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다. 매번 이런 마음으로 했다면 좋았을걸. 지금까지는 작은 일에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마냥 일희일비의 대명사로 활약했다.


나는 학원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는 아니지만 동네에서는 큰 학원이어서 4년째 많은 친구들을 지금까지 만났다. 나는 ‘가르친다’ 보다는 ‘알려준다’는 말을 좋아한다. 알려주고 연습하고 잘 익혔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체계를 잘 갖춘 어학원이다. 한 학기인 4달이 지나는 동안 얇고 말랑한 지식의 막이 켜켜이 쌓아가면서 단단한 판자가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때로는 학생들도 나도, 각자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분노를 느낀다. 때로는 보람과 재미도 얻는다. (학생들은 어떤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 스스로 성장한다고 느끼는 엄청난 순간도 아주 가끔 온다. 그런 의미에서 강사라는 직업이 잘 맞아, 좋은 직장이었어! 라고 마무리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일이 안 맞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싫거나, 말도 안되게 회사가 멀거나, 야근을 시키거나 이런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들보다 덜 합당할 수 있지만, '할 수 있는 다른 것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어서!' 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배부른 소리 한다.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좀 더 불안하고, 결의를 다지는 심정이다. 4년 동안 대학교에서 다른나라 언어를 배웠다. 등록금이 이렇게 아까울수가! 지금 다니는 학원이나 이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이 값비싼 외국어를 사용할 일이 전혀 없었다. 어릴때부터 단지 시험 점수가 잘 나오는게 좋아서 공부했지, 공부에서 다른 무언가로 연결되는 목표는 없었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번은 아까운 등록금을 만회할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 다시 전공을 공부하려는 것은 아니고, 좀 더 깊이 고민해서 무엇을 할 지 결정해보고, 어딘가에 적용해보는것까지 해보고 싶다.



두가지 더 불안한 점이 있는데, 첫번째는 서른 하나라는 나이다. 신입의 마음처럼 열정에 불타지는 않지만, 어떤 분야의 전문가! 베테랑!은 아닌 애매한 시기이다. 이 와중에 ‘이제는 무엇하나 끈기있게 해야하지 않냐’는 다른 사람들의 우려가 마치 내가 생각해낸 걱정인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런 우려에 대한 반발감(?)으로 서른 하나에도 무언가 이뤄내보는 경험을 갖고 싶다. 사실 아주 많은 나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두번째는 금전적인 불안감이다. 예상되는 소득 없이 지출만 하는 경험은 스무살 이후 없었다. 여러번 계산기와 메모지를 옆에 두고, 고정적으로 나갈 보험,청약,통신비 등의 합계를 내보고, 몇 달 정도 곱해보고, 저축해 둔 돈에서 빼보고 했는데요. 아 결국 결론(몇 달을 안벌어도 될지)을 못내렸다.


불안한 마음은 잠시 계산기와 같이 저 옆에 미뤄두고, 앞으로 뭘 해먹고 살 지, 뭘 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보고, 조금씩 실천해나가는 것이 제가 퇴사 직전까지 해야할 숙제다.


과거의 경험을 발판 삼아 나아갈 수도 있고,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것에 도전해볼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다. (남편한테 빌붙을 수도 있..어요? 남편 보고있니!) 이 중에 어떤 결론이 날 지 앞으로 하나 하나 남겨두려고 한다. 아자아자..!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퇴사자, 백수, 그냥 '나 자신'이 된 이후, 두 달이 지나서 이 일기를 다시 봤다. 문득 인스타그램 불특정 다수의 흥미로운 사건들을 그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퇴사하면 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꽤 있는데, 급진적으로 점진적으로 해나가고 있는 것들이 있다. 불안함이 항상 발바닥에 붙어있는 듯 살고 있지만, 나의 남은 올해가 어떻게 방향을 잡으면 좋을지 다시 깊이 생각해보면서 오늘 하루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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