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2. 발뮤다 더 토스터
애석하게도 나는 ‘죽은 빵도 살린다’는 이 토스터로 살아있는 빵을 까맣게 태워버렸다. ‘엇, 왜 그러지? 하라는 대로 했는데.’를 입 밖으로 내뱉고,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크루와상을 데우려고 5cc 작은 검정색 컵으로 물을 붓고, 시간과 모드를 설정했다. 맞춰둔 시간이 끝났다는 소리에 열어보았지만, 조금 더 바삭하게 굽고 싶었다. 시간을 다시 설정했고, 작동을 시작하는 소리가 났다.
아, 이 때 한 번 더 물을 넣었어야 했구나. 5cc 짜리 컵은 새끼손가락 한마디만큼 작은 양인데, 굉장히 중요했구나. 그랬구나. 그렇게 우리는 까맣고 빠삭한 빵을 만났지만, 무엇이든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대부분의 것을 잘하고 싶어하는 의욕에 비해, 결과는 평타 이하인 것들이 있다.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블로그와 유튜브로 정보를 익혔다면, 실행에 옮기는 그 단번에 잘해내고 싶다. 그 호락호락하지 않은 종목들 중 하나가 요리이고, 발뮤다 토스터는 내가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어린시절 체육대회에서 이어달리기 할 때 트랙 안쪽에서 같이 뛰어주며 응원해주는 친구처럼 든든함이 느껴질 정도로. 오늘은 그 든든한 점들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첫번째, 이정도면 토스터 계의 APPLE이 아닌가? 깔끔한 디자인과 누구든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직관적인 가전이다. 입구를 앞으로 내려 연다. 윗부분에는 토스터 기능을 쓸 때 5cc의 물을 붓는 홈이 있다. 입구를 닫으면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두개의 동그란 버튼이 있다. 하나는 토스터의 기능 중 일반/치즈/바게트 등의 모드를 정하거나 오븐 기능을 사용할 때는 온도를 정한다. 또 하나는 시간을 정하는 데 쓰인다. 최대 15분까지 가능하다. 여러 버튼을 여러번 눌러가며 헷갈릴 필요 없이, 어떤 모드로 몇 분인지 정해서 드르륵 돌리면 된다.
두번째, 요리가 알아서 완성되는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아침식사로 시금치 프리타타를 준비했다. 파프리카, 양파, 시금치를 썰고 남은 부분, 새우와 소시지를 썬 도마와 칼, 재료들을 올리브유에 볶아내느라 사용한 프라이팬, 계란 서너개를 풀었던 볼이 놓여있다. 법랑 그릇에 온갖 재료를 담아 넣고, 200도에 15분을 돌려 놓는다. 그 다음 저 광경을 차근차근 치워낼 수 있다. 이걸 굳이 지금 치워야 하나 싶다면, 샤워하고 나와도 된다. 씻고 나오자마자 포크로 구석을 찔러 한 입 먹을 수도 있다. 약속때마다 늦던 친구가 웬일로 제 시간에 도착해 딱 만나는 듯한 기분이다.
마지막은 ‘야, 너두 할 수 있어’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는 점이다.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다. 토마토소스와 피자치즈를 올린 식빵은 그 위에 무엇을 더 추가하든 실패하지 않을것이다. 식빵 위에 마요네즈로 네모난 틀을 만들고, 위에 계란을 얹어 200도에 10분간 구워내는 일명 ‘마약토스트’ 도 맛있다.
남편이 감바스를 만들고 있다면, 나는 마늘빵을 만들어 생색을 내본다. 충분한 다진 마늘과 꿀, 버터를 한 그릇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린다. 뜨거운 그릇을 조심히 꺼내어 잘 섞는다. 이것을 바게트 위에 펴 발라, 치즈토스트 모드로 4분 굽는다. 따끈하고 달달하다. 이 정도 마늘향은 나야 K-마늘빵이 될 수 있다. 마지막 조합은 맨 빵 위에 바질페스토를 바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진 양파와 반씩 자른 토마토를 올리브유, 소금, 후추와 섞어 빵 위에 올린다. 피자치즈를 뿌리고, 200도에 10분. 그럴싸한 이름이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릅니다.
최근에는 참타리 버섯을 샀다. 종이호일 위에 버섯을 잘 찢어 두고,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를 뿌려 섞어준다. 170도에 10분간 굽는다. ‘아니, 내가 버섯 구이를 한 거야?’ 싶을 때, 냉장고에서 다진 마늘을 꺼낸다. 범벅이 되지는 않을 정도로 소량만 떠서 섞어주고, 위에 깨를 뿌려준다. 종이호일 통째로 들어갔다 나와도 상관없다.
아무리 발뮤다를 열심히 쓴다해도, 아직 할 줄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래서 할 줄 아는 것을 빠짐없이 전부 적어버렸다. 나는 이 토스터를 빵을 다시 데우는 용도로만 쓸 줄 알았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신기하고 맛있고, 내가 무엇인가 해내고 있다는 뿌듯함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보면 더 맛있지 않을까 궁금해하고, 더 찾아보고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보는 과정은 완제품을 데우는 것 보다 재미있다.
세상에 원래 있던 요리는 없다. 누군가 만들어내고 조금씩 바꿔보면서 저마다 가장 맛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나는 이제 한 걸음 떼었다. 요만큼 하면서 이만-큼 써버리는 내가, 요리에 도가 트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질까. 조잘조잘.
김하나님의 산문 ‘말하기를 말하기’에 보면 [성과에 대해 누군가 ‘잘했어요!’ 라고 칭찬했을 때, ‘아니에요.’ 하고 대답할게 아니라, ‘고맙습니다!’라고 답하라] 했다. 누군가 나에게 ‘점점 음식이 맛있어지고 있구나, 잘하고 있구나.’라고 칭찬과 격려를 보낸다면 ‘네. 제가 점점 늘고 있어요!’ 라고 감사히 대답할 것이다.
[나에겐 나를 포함해 키가 똑같은 친구 넷이 있다. 조금 거짓을 보태어 160cm라고 해보자. 단체카톡방 이름도, 모임 이름도, 160인 이 친구들이 합심하여 사준 발뮤다 토스터가 내 생존을 돕는다.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