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지기의 여행법
마카오의 서점들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홍콩의 작은 섬 청차우로 향했다. 한적하게 머물기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찾은 청차우는, 말 그대로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어촌 마을이었다. 사실 청차우 섬을 찾은 데는 바로 To-day Bookstore 가보고 싶은 이유도 컸다. 이렇게 작은 섬에 있는 유일무이한 서점, 어떻게 안 가보고 싶을 수 있단 말인가!
홍콩섬에서 청차우로 가는 배에서 내려 항구를 따라 난 길을 5분 정도 걷다 보니, 골목 끝에서 마치 햇빛이 핀조명처럼 비추고 있는 작고 노란 건물이 보였다. 아마 그때가 저녁 시간이라 지는 해가 서점에 들러 인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작지만 매력적인 서점에는 역시 작지만 매력적인 책방지기가 서있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말을 걸 정도의 대문자 E는 아닌지라, 먼저 조용히 책방을 둘러보았다. To-day Bookstore 책장에는 중국어 책이 대부분이었지만, 개성 있는 굿즈와 영어 중고책 코너도 있어 반가웠다.
노란색의 서점로고가 새겨진 에코백과 책 몇 권을 골라 계산하며 조심스럽게 책방지기에게 말을 걸었다. (늘 그렇듯 내성적인 성향과 호기심 많은 성격의 딜레마를 극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To-day Bookstore 참 흥미로운 서점이었다. 책방지기가 일곱 명으로 돌아가면서 서점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청차우 섬에서 만난 일곱 명의 젊은이가 뜻이 맞아서 가능한 운영시스템이었다. 정말 다음 날 다시 들렀을 때는 전날 만났던 작고 귀여운 여사장님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키가 훤칠한 매력적인 청년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마치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주인공이 나왔던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일곱 책방지기가 서로 여유가 될 때 서점을 돌보면서 함께 운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부럽기도 했다. 다음 날 만난 남자 사장님은 한국에 와본 적은 없지만 뉴진스의 팬이라 꼭 가보고 싶다며 활짝 웃어주었다. 그에게도 명함을 건네며,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작별 인사를 전했다.
청차우에서 쾌속 페리를 타고 마지막 목적지 홍콩을 향해 떠났다. 홍콩은 대형서점이나 북카페도 제법 있었지만, 나는 작은 독립서점이나 중고서점을 찾아보고 싶었다. 홍콩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books & co 서점. 여행을 떠나기 전 가보고 싶은 서점을 리서치할 때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서점이기도 하다. 다른 서점들과 달리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북카페로 운영되고 있었고, 책장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분위기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셩완역과 빅토리아 피크 언덕의 중간쯤 위치한 books & co, 분위기가 고즈넉해서 책방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타임머신을 타는 기분마저 들었다.
공간 곳곳에는 책탑이 벽처럼 쌓여 있었고, 서점 한편에서는 차와 커피, 간단한 식사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장님은 팥을 직접 갈아 수제 크림을 올린 레드빈 스무디를 자신 있게 권해주셨다. 연세가 조금 있어 보이는 그녀는 무려 20년 동안 이 책방을 운영해 왔다고 했다. 세월만큼이나 깊은 멋을 가진 중고 영어 원서들이 책장 사이사이에서 나를 반겼다.
창가 테이블에는 햇살이 사뿐히 내려앉아 있었고, 그 따스한 자리에서 책 한 권과 브런치를 즐기는 순간이 참 특별하게 느껴졌다. 한국에 오래전에 방문한 적이 있다는 사장님께 명함을 건네며, 언젠가 다시 한국에 오시게 되면 꼭 배다리 책방 거리에도 들러달라고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들른 릴리서점은 건물 유지보수 공사 때문인지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의 작은 중고 서점이었다. 서가에 가지런히 꽂힌 책 보다 바닥에 눕혀 놓은 책이 더 많아 보일 정도로, 작은 공간에 책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최신 서적부터 오래된 앤티크 책까지 종류가 매우 다양해, 규모는 작지만 꽤 활발하게 운영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계산하려고 카운터로 갔더니, 스무 살 전후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중년의 여성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누가 주인이냐고 묻자 둘이 동시에 서로를 가리키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젊은 여성은 직원인 트레이시였고, 중년의 여성이 바로 릴리였다.
릴리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표정과 몸짓에서 묻어나는 털털함과 따뜻함이 금방 전해져 와 자연스레 호감이 갔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느새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고, 언젠가 한국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깊게 남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여행 동안 만났던 홍콩의 책방지기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처음 만났지만, 같은 책방지기라는 유대감은 우리를 금세 다정한 친구로 만들어주기 충분했다. 언젠가 이 친구들을 나의 책방이 잡리잡고 있는 배다리 책방거리에 초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졌다. 그래서 내가 좋아 아는 배다리 책방지기들과 홍콩의 책방지기가 한데 어우러져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멋진 만남의 자리를 만들고 싶다. 한국에는 지역 활성화 프로그램도 많고, 책방 지원 프로젝트도 다양하니 잘 계획해 본다면 전혀 비현실적인 꿈만은 아닐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몸담고 있는 배다리 책방거리는 책방들 사이의 관계가 유난히 끈끈해서, 좋은 프로젝트만 있다면 함께 힘을 모으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과연 이 작은 염원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마음속에 우체국에서 홍콩의 책방지기들에게 초대장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