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길 끝에 무엇이 되려나
- 머릿속에 몇 년 계속 머물던 생각을 몇 년 만에 직장으로 복귀하기 전 장기여행을 하는 친구와 나눈 수다 끝에 쏟아본다. 곱씹고 다듬어 나가며 더 길고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아직은 설익은 이야기지만.
-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스마트 폰이 그리 흔하지 않았던 때인데, 일부러 쓰던 아이폰을 엄마에게 넘기고 현지의 2g 폰을 갖고 다니면서 내킬 때가 돼서야 디지털카메라나 커다랗고 무거운 아이패드로 사진을 찍었다. (그나마 디지털카메라도 영국에서 소매치기당함) 당연히 기민하게 찍지 못했고, 시간이 흐른 것들을 들여다보며 기록할 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랬어서, 그 순간의 그 사람들과 더 긴밀하게 붙어 앉아 같이 그곳의 공기를 같이 숨 쉬고 대화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맺은 관계와 내가 그들과 맺은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는 내 가슴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그리고 이것은 죽는 날까지 기쁘게 어루만질 내가 가진 가장 크고 빛나는 보석 중 하나다.
- 사진이 아닌 글로 다시 생생히 그 순간을 살게끔,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도 많다. 남반구의, 그야말로 눈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남십자성 아래서 춤췄던 일, 몸집만 한 펠리컨이 서 있던 외진 해변 가에서 혼자 알몸이 되어 수영했던 일, 달라이 라마의 마을에서 환장을 하고 매일 먹는다는 걸 어깨너머로 들은 티베트 스님이 내게 건네주었던 맛있는 짬빠 가루와 버터 티. 외로웠던 독일의 밤거리에서 어느새 나타나 같이 걷다가 배를 까 뒤집어 주던 검은 고양이. 리스본 어느 구시가지 깊은 골목의 레몬트리 아래서 내일이면 기약 없이 헤어질 사람과 앉아 귀를 기울이던 구슬픈 파두. 달빛이 쏟아져내리던 갠지스 강가에서 각자의 언어로 저마다의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의 가사를 짐작해보던 게임의 밤. 써내려 가자면 끝이 없을 더 더 많은 순간들. 얼마 전, 큰 사고가 날 뻔한 밤, 머릿속을 스치던 행복의 조각들. 그리고 사람들. 돌아보면, 어디를 가는지가 아닌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가 너무나 컸던 길의 시간들.
-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지겹게 자주 듣는 말이겠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만나본 사람들이 많고 가본 곳, 길 위에서의 시간이 적지 않았어서, 지금의 내 또래에 비해 새로운 사람과 여행에 대한 욕심이 적은 편이다. 어쩌면 아쉬움이 남을 법한 잠깐씩의 설렘 가득한 짧은 여행이 아닌, 누군가들의 삶을 방문해 같이 산 경험들에 더 가까운, 그런 여정을 더 많이 했어서인지 모른다. 새로운 자극에 대한 엄청난 욕망이 넘치던 시기에 그런 것들을 충족한 시간을 오래 살아서 나는 정말 행복했고, 뭔가를 못해봤다는 아쉬움이나 후회가 별로 없다. 모두가 경력을 쌓고 빛나는 젊음을 써가며 고생하는 시기에 변덕이 죽 쑤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바람의 딸(…)처럼 실컷 살아봤더니 놓아지는 것도 정말 있기는 하더라. 잘 돌아다닌 만큼 그동안 내가 잘 못해온 것은 머무는 것이었고 누군가와 오래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 이제 내가 떠돌던 시기에 소홀히 했던 것들을, 멈춘 듯 흘러가는 일상을 안고 사랑하는 일에 더 마음을 쓰고 싶다. 가슴이 뛰는 일들은 내가 머물기로 작정한 지금 이곳에도 있다.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름다운 것들은 공들여 오랜 시간을 나눌 때 더 아름다워진다. 물론 호주의 Rottnest island 같은, 소중한 사람을 데리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여전히 눈을 감으면 가보지 못한, 마법 같은 오로라와 거짓말 같은 풍경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는 Iceland 같은 곳을 찾는 꿈을 꾼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떤 곳보다 같이 작고 사소한 것들에 크게 감탄할 사람을, 일상도 일탈도 결국 다 같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내 마음에 더 깊은 자리에 둔다. 나름 떠돌아봤더니, 내게 이제 중요한 것은 내 곁에 머물, 내가 같이 오래 머물 사람이더라. 이제 떠나는 사람의 마음으로가 아닌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으로, 같이 있어주는 사람의 마음으로, 내가 숨 쉬는 공간과 사람들의 곁을 지키는 일을 차분히 해보고 싶다.
(2022년 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