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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언어를 찾아서

김민섭, <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

by 백소피

첫 문장 수집가1 읽기

https://brunch.co.kr/brunchbook/1st-sophy




http://aladin.kr/p/R4XvO


글을 써서 밥을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2001년의 나는 대학 입시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마지막 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의 나는 문학청년 비슷한 무엇이었을 것이다. 신춘문예라든가 하는 공모전을 통해 등단 작가가 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였다. 대학교수들이 그 문장을 좋게 봐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서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글을 쓰는 일은 공인받은 작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들만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해 본 일도 없었다.
- 김민섭, <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


김민섭 작가는 지방대 시간 강사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로 메인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사회이슈를 주로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은 강릉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출판기획자이자 작가가 되어 예전보다 한결 너그러워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나도 작가가 되려면 등단을 해야 하거나 공인된 어떤 자격 증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내가 바라는 작가는 그런 류가 아니었다. 작가에 대해 뭔가 허공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창한 그 무언가로 우상화해서 감히 제대로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맨날 주변만 맴돌았다. 글에 대한 생각은 오래됐지만, 개인적인 두려움과 열등감, 불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김민섭 작가도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나오면서 많은 변화가 생긴 듯하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글을 써 오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머리뿐 아니라 그렇게 몸에 새겨진 글을 발견하고 옮겨 적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글은 개인이라는 각자의 필터를 통해 탄생하게 된다. 그 세계에서 그만이 길어 올릴 수 있는 언어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 언어를 발견하고 글을 쓸 때, 그는 비로소 고유한 작가가 된다. 그러나 모든 쓰는 사람이 작가가 될 수는 없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데서 결정된다. 조금 더 정교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은 작가다.
- 김민섭, <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


홍보 기사를 쓰거나 온라인 마케팅 글을 쓸 때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오직 클라이언트의 목적에 맞는 쓰레기만 양산했구나 하는 자괴감이 심했다. 그래서 더 내 글이 쓰고 싶었다.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싶었다. 머릿속으로만 하면 망상이지만 글로 쓰면 작품이 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행위이다.


굳이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읽을거리는 넘쳐난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많다. 내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썼다. 시, 에세이, 소설, 동화 등등 어떤 글로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찾아가는 중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나만의 언어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온갖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자기 전에, 설거지할 때, 달리기 할 때, 샤워할 때 등등 하루 중 어느 때라고 가리지 않고 수시로 소재거리가 생각났다. 이 모든 걸 작품으로 완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매일 쓸 뿐이다.


김민섭 작가도 매일 쓰는 삶에 대해 얘기한다.

“매일 쓰려면 매일 좋은 사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라고 한다. 오늘 나로서 충실한 하루를 살아갔다면 쓰고 싶은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했다.


그 말이 맞다.

어쩌다 글을 써야겠다고 큰 결심을 하고 각 잡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면 흰 여백에 커서만 깜빡일 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매일 글을 쓰거나 적어도 매일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 반드시 쓰고 싶은 글이 생긴다.


나의 하루가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일치할 때 성장한다.

나의 신념과 하루 일상이 일치하는 경험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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