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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May 13. 2018

낡은 도시를 구하는 방법

문화와 예술을 이용한 도시재생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는 독특한 지역이 있다. 생 샤를 기차역 근처에 위치한 동네 ‘벨드메(Belle de Mai)’, 오래 전 공장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낡은 건물들이 있는 이곳에는 이상하게도 활기가 돈다. 동네 아이들과 노인들을 비롯한 여러 시민들, 그리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허름한 건물 사이를 오가며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꽤나 즐거워 보인다. 이곳은 마르세유가 2013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문화 공간, ‘프리쉬 라 벨드메(Friche la Belle de Mai)’이다. 


‘프리쉬 라 벨드메’는 원래 마르세유가 지중해의 거점 항구도시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19세기에 세워진 담배공장이었다. 그러나 점차 산업구조가 바뀌며 도시는 쇠퇴하였고, 12만㎡에 이르는 이 거대한 공장 역시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은 것은 담배공장뿐만이 아니었기에, 실업자와 범죄율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갔고, 도시는 빛을 잃은 채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 무렵, 벨드메의 어둡고 텅 빈 담배공장에 자리를 잡은 것은 가난한 예술가들이었다. 연습실 및 작업실 임대료를 마련하기 어려운 몇몇 예술집단들이 빈 공장에서 작업을 꾸려나가자,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마르세유 시는 담배공장 부지를 매입하여 예술가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예술가 1000여명의 작업실, 70여개 예술단체의 사무실, 전시장과 공연장, 그리고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시설, 도시 유적 아카이브 시설이 함께 들어서 있다. 또한 매년 수백개의 문화행사와 워크숍, 국제교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으며, 연간 120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 또한 각종 강습이나 장터, 탁아소 등을 통해 지역 주민의 일상을 함께하며, 입주 예술가들은 전시장에나 공연장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평소에도 작업실의 문을 활짝 열고 대중과 교류한다. ‘버려진’ ‘황무지’였던 벨드메 지역은 십 수 년 사이에 마르세유 시를 재생하는 힘이 되었다.


 프랑스 마르세유, ‘프리쉬 라 벨드메’의 모습 @ Friche la Belle de Mai (www.lafriche.org)
문화와 예술을 활용한 도시재생이란 


마르세유의 이야기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문화와 예술을 활용한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이다. 도시재생이란, 산업구조의 변화와 도시 물리적 확장, 도시 내부의 기반시설 노후화로 인한 생활 여건 악화 및 인구 유출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쇠퇴한 구도심을 사회·경제·환경·문화 등 종합적 접근을 통해 다시 활성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문화와 예술은 그것을 접한 개인의 감정과 사상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동기를 고취하며, 집단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이를 잘 활용한다면 낙후 지역 개선, 도심공동화 방지와 같은 소기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의 행복 지수 및 문화수준 향상, 지역 커뮤니티 회복과 문화·예술의 발달 및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의 효과를 누리며 도시 전체의 내구성을 다질 수 있다. 때문에 문화와 예술은 낡은 도시에게 입힐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옷이다.  


 이를 활용하는 방법으로는, 공공디자인을 통한 거주민의 생활여건 개선, 전시장이나 공연장 건립, 공공미술사업 등을 통한 문화적 환경 조성, 그리고 이색 축제나 플리마켓, 특성화 거리 조성 등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거나, 각종 주민 참여형 프로젝트로 지역 커뮤니티를 회복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는 도심공동화 방지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정부나 지자체, 민간단체 주도하에 계획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문래동 창작촌, 해방촌, 성수동, 서촌 등과 같이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온 예술가들로 인해 자연스레 해당 지역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활기를 띠게 되기도 한다. 


피할 수 없는 자본의 공격
젠트리피케이션


그러나 매력적인 것은 언제나 자본의 이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문화와 예술로 재생된 도심은 대부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수순을 밟게 된다. 이는 신사계급을 의미하는 '젠트리'에서 파생된 말로, 노후주거지가 정비사업 등으로 인해 고급주택화 되는 것을 의미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자생적으로 문화를 형성한 낙후 지역에 관광객과 자본이 몰리고, 이로 인해 개발과 임대료 상승이 가속화되어, 결국 저소득층 원거주민들은 쫓겨나게 되는 부정적인 현상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한때 인디 문화의 본거지였지만 지금은 유명 브랜드샵과 프랜차이즈 맛집들로 가득 찬 홍대 거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홍대를 부흥시킨 것은 그 곳에 상주하며 특유의 문화를 형성한 예술가들과 개성 있는 소규모 상점 주인들이었지만, 이들은 정작 자신들이 창조한 가치의 대가를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고 점점 홍대 지역의 외곽으로 밀려났다. 이는 도심에서 저소득층의 주거지와 인디 예술가들의 활동 공간이 사라진다는 점은 물론, 지역의 고유성과 다양성이 훼손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홍대처럼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성장한, 중국 베이징의 예술특구 다산츠798 역시 같은 방식으로 쇠락하였다. 임대료가 20배 가까이 오르는 동안 중국 정부는 관광상업지구 조성에만 힘썼고, 그 사이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등졌다. 현재 이곳은 고급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상업지구로 변모하였다.


위와 같은 현상이 제 때에 정책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해 나타난 것이라면, 반면 정책이 과도하게 앞서 도시재생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지역의 역사와 특성, 거주민들의 생활을 적극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문화·예술 콘텐츠를 제공하여 단순 환경미화 사업의 성과에 그치거나, 가시적 목표 달성에 치중하여 경험 없는 예술가들을 무작정 참여 시키고, 검증되지 않은 결과물로 생색만 낼뿐, 지속적인 유지·보수는 외면하기도 한다. 한편 기업의 후원을 받은 경우에는 도시 재생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일종의 홍보 수단으로 교묘하게 이용될 EO도 있다. 이러한 경우 제공된 콘텐츠는 지역 주민들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앞서 언급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도 어렵다. 


2007년 서울시가 야심차게 진행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로 인해 시내 곳곳에 수많은 예술 작품이 설치되었지만, 현재 당시의 모습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 곳은 적고, 프로젝트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많은 것은, 이 프로젝트가 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2006년 정부가 주도한 ‘아트 인 시티’ 프로젝트 중 한 곳이었던 서울 이화동은, 거주민의 관점보다는 ‘마을을 보는 관점’으로 그려진 벽화들로 인해 관광객이 자주 찾는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지만 정작 주민들은 쓰레기와 사생활 침해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낙후지역의 슬럼화 방지라는 도시재생의 일부 목적은 달성했을지 모르지만, 거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환경 개선이라는 다른 목적도 이룩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생명력 있는 상생의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양하며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문화·예술을 활용한 도시재생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앞서 이야기한 마르세유와 같은 해외 성공 사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장소의 역사성과 고유성에 기반한 자생적인 문화를 중시하며, 자본의 침략으로부터 문화를 지키되 관의 개입은 최소화하여 균형을 이룬 것, 그리고 지역에 애착을 가진 행정가와 지역 주민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장기적 관점을 갖고 예술적 토양을 양성하며 지속적으로 관리해온 것이다. 이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에 아름다운 도시 보다는,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으로 접근한 결과이다. 과거 가난과 실업의 대명사였지만 현재는 유럽문화수도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영국의 리버풀 역시, 다른 무엇보다도 도시에 희망이 생기고 시민들의 자신감이 높아졌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 


도시를 구성하는 기본은 시민들이다. 때문에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야만 궁극적으로 도시라는 공간에 활기를 불어 넣고 내부를 탄탄히 다진다는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 최근 골목길의 디자인을 통해 거주민의 생활환경과 범죄율을 개선한 마포구 염리동 ‘소금길’의 사례는 공공디자인을 적절하게 활용한 좋은 사례이다. 이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거주민들의 참여범위를 더욱 확대하거나 적절한 민간사업주체에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법, 시민들의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하는 등 시민의 역할을 넓히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예술이 거리에 나섰다고 해서 그대로 공공성이 부여되지는 않는다. 예술과 지역사회, 공공장소의 특성이 유기적으로 결합했을 때 공공예술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 빈 공장에 예술가들이 들어오며 시작된 문래창작촌은 장소의 역사성을 유지하며 지역의 삶과 자생적인 예술활동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모습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정책에 의해 진행되는 프로젝트에서도, 미술관이나 갤러리 내에서의 작품과 공공예술이 다른 점을 인지하고, 장소와 거주민의 삶에 깊은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예술가를 선정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문화와 예술을 활용한 도시재생이란, 오래되고 낙후된 곳에 시혜를 베풀고 미화활동을 함으로써 그저 사진 찍고 감상하기 좋은 장소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여, 결과적으로 생명력 있는 도시공간을 만들어 영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도시를 생기 있게 되살리기 위해, 시민, 행정가, 예술가들이 서로의 거리를 효과적으로 좁혀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 참고자료

한국일보 문화부, 『소프트 시티』, 생각의 나무, 2011

고명석, 『도시에 미학을 입히다』, 워치북스, 2015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아르콘 트렌드 리포트 제19호」, 2015       

                                                

** 본 글은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3월호에 기고했던 글로서, 일부를 수정 및 생략하였음을 밝힙니다. 지면에 실렸던 글을 보시려면 www.ilemonde.com 을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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