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코 동굴벽화_문화재를 관리하고 향유하는 방법

                                                                                    

'황소의 전당'
라스코 동굴벽화의 발견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베르제 강변에 있는 몽티냑이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었던 18세 소년 마르셀과 친구들은 한 노파에게 라스코성으로 이어진 숨은 통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당시 소년들이 큰 비로 불안정해진 비탈길을 걷던 중, 마르셀의 개 '로봇'이 구멍에 빠져 동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소년들은 로봇을 구하기 위해서 동굴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는 생각보다 더 깊고 큰 동굴이 이어져 있었다. 

동굴 안을 살펴보던 소년들은 벽과 천장에 가득한 화려한 색감의 벽화를 마주하게 된다. 이들이 발견한 동굴은 훗날 '황소의 전당'이라고 불리게 된 곳으로, 총 600점의 회화와 약 1500점의 조각을 포함한 라스코 동굴벽화의 극히 일부분이었다. 역사상 최대의 동굴 벽화가 발견된 것이다. 1940년 9월 12일의 일이었다. 

  이 발견은 즉시 당국에 알려졌고, 조사 결과 BC. 15,000년～14,500년경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선사시대에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도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당시의 인류는 광물을 빻아 검정, 빨강, 노랑, 그리고 약간의 흰색 물감을 만들었고, 붓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라스코동굴은 하얀 석회암 위에 얇은 방해석 층이 덮여 있었기 때문에 마치 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물감의 색을 잘 드러낼 수 있었다. 
 

라스코 동굴의 모습

  한편, 라스코동굴의 주 동굴은 길이 15미터 정도로, 막다른 벽면에는 네 마리의 검은 소 그림이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은 가로가 5미터가 넘고, 주변의 작은 동물들도 1미터 정도인데, 5미터 이상의 그림은 현존하는 구석기 시대 예술 작품 중 가장 거대한 크기이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연구한 덴마크의 고고학자에 따르면, 동굴 내의 벽화들은 최소한 6명 이상이 함께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표현된 동물들 중에서는 말이 가장 많았고, 소와 노루, 코뿔소, 늑대, 곰 등의 여러 동물들이 동굴 벽을 따라 연달아 그려져 있었다. 이 동물 이미지들은 동굴 벽의 굴곡을 적절히 이용하며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사실적인 표현은 1만 5천 년 전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20세기 이전의 연구로는 구석기 시대에는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는데, 라스코 동굴벽화의 발견으로 우리는, 그 시대의 인류에게도 문화와 예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담은 벽화
사냥감을 스스로 만드는 행위

  이 벽화들은 다른 동굴벽화들이 그러했듯이 주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물의 모습을 그린 구석기 시대의 벽화들에 대해서, 역사가들이나 미술사가들은 일반적으로, 구석기시대의 인간들이 그림과 실제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들은 동물의 이미지를 그림으로써 그 동물을 동굴 속에 잡아 두었다고 생각했으며, 그림 속 동물을 죽임으로써 실제로 사냥한 것과 동일시했다. 이것은 사냥의 성공을 위한 주술적인 의식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동굴벽화의 동물 이미지들이 중첩하여 그려진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림 속 동물과 실제 동물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림 속에서 죽인 동물 이미지는 이미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 위에 새로운 동물을 그렸던 것이다. 

  이 벽화는 구석기시대의 최후기인 마들렌기(Magdalenian)에 그려졌는데, 마들렌기에는 중부 유럽의 기후가 온화해지면서, 동물들이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자료가 있다. 그렇다면 아마 라스코 지역에서도 사냥감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벽화를 그리는 의미도 조금 달라졌다. 사냥 성공을 위한 주술 의식으로서 동물을 그렸던 것이 아니라, 동물 이미지를 그리는 것 자체가 사냥감을 스스로 ‘만드는’ 행위가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읽는다면, 이 동굴벽화가 왜 이토록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지 알 수 있다.

라스코Ⅱ 제작과정

  이 놀라운 동굴은, 1940년에 세상에 알려진 이후, 1945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되었고, 1948년에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는데, 연간 10만 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너무 많은 이들의 방문 탓인지, 안타깝게도 동굴 안에는 곰팡이와 세균이 번식하였고, 벽 표면에 초록색 이끼가 끼고 하얀 결정이 맺히는 등 벽화가 훼손되기 시작하였다. 

라스코동굴벽화 보존을 위해 
동일한 동굴을 따로 만들 정도

  때문에 1963년에는 동굴을 폐쇄하고 벽화를 보수하는 한편, 라스코 동굴벽화(라스코Ⅰ)와 똑같은 복제품 제작, ‘라스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것이 1983년에 개장하여 현재 라스코Ⅱ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 라스코Ⅱ의 제작에는 섬세한 기술을 지닌 화가들이 여러 명 동원되었는데,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중 한 명이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화가 이희세이다. 그는 1973년에서 74년 사이 라스코 프로젝트에 참가했고, 동굴 입구의 붉은 소 그림을 복원하였다. 

(이희세(1932~2016)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동양화가이자 고암 이응노 화백의 조카로, 박정희 정권 아래 고암이 간첩으로 조작되어 납치되었던 '동백림 사건'으로 인해 사회활동의 길을 걷게 된다. 그의 삶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 <코리안 돈키호테 이희세>로도 알려져 있다.)

  라스코Ⅱ는 원래 동굴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가능한 모든 복원기술을 동원하여 원작과 똑같은 동굴 및 벽화를 조성하였다. 현재에도 라스코Ⅱ만 일반 관람객에게 개방하고 있으며, 라스코Ⅰ의 출입은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엄격한 문화재 보호와 공공의 문화 향유를 동시에 추구하는 프랑스 문화 정책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해외 전시용으로 제작된 라스코Ⅲ의 모습

주변환경을 고려하고
지역 주민이 함께 향유하는 
문화재의 본질에 더욱 가까운 문화재 사업

더 재미있는 것은 라스코Ⅱ의 매표소는 동굴 입구와 2km 가량 떨어진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라스코Ⅱ를 관람할 경우, 일정 숫자의 관객을 언어별로 묶어 그룹 투어를 하게 되며 개별 입장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입장 대기에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 관객들은 그 대기 시간 동안 마을을 관광하고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이용하게 된다. 동굴 입구에는 아무런 편의시설도 없기 때문에, 매표 후 마을에 머무는 것이다. 문화재 바로 앞에 매표소와 함께 다양한 시설을 갖춘 우리나라의 문화재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경우, 문화재에서 파생되는 이익을 입찰에 성공한 일부 사업가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라스코 지역 주민이 골고루 누릴 수 있다. 또한 관람객으로서는 상업적인 방해물 없는 관람이 가능해짐으로써, 문화재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라스코 동굴벽화가 널리 알려진 것은 물론 벽화 자체가 지니는 역사적·예술적 의미 때문일 것이며, 이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논점일 것이다. 하지만 문화재를 관리하는 데 있어 한 치의 틈도 허용치 않는 엄격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공에게 향유하기 위한 방법과 그에 동원된 복제 기술의 뛰어남,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화재와 지역 간의 상생을 지향하는 행정의 섬세함은 우리에게 더 현재성 있는 논점들을 시사한다. 

  다시 라스코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현재 동굴벽화 원작 이미지를 복제하여 만든 모형인 라스코Ⅲ가 제작되어 국제순회전을 하고 있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여 그 역사성과 예술성을 알리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최초 프랑스 전시에 이어 미국, 캐나다, 벨기에, 스위스에서 전시를 개최하였으며, 한국에서도 2016년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동일한 전시가 열렸다. 

라스코Ⅳ

  광명동굴 입구에 마련된 전시장 내부에는 라스코 동굴이 발견된 베제르 계곡 지역의 자연 경관을 벽면의 빔프로젝터로 상영하고 있다. 전시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역시 라스코Ⅲ의 벽화 조각들이다. 이것은 전시장 중앙의 방에서 전시되는 이 조각들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볼거리이며, 조명이 꺼졌을 때 보이는 형광 물질들로, 중첩된 이미지들까지 세세하게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복제 과정 관련 전시물이나 벽화의 해석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가 담긴 영상들을 시청하며, 라스코 동굴벽화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몽티냑 지역에서 ‘라스코 인터내셔널 센터’라는 이름으로 라스코Ⅳ를 준비 중이다. 올해 내에 개관할 예정인 이 곳, 라스코Ⅳ에서는 새로운 이미징 기술과 가상현실 서비스를 통해 동굴의 전체적인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마들렌기의 자연과 라스코동굴 내부의 모습을 더 현실감 있게 체험하고, 라스코 동굴벽화의 예술성과 역사적 의미를 다방면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라스코 프로젝트’의 홈페이지(www.projet-lascaux.com)에 수록된 ‘라스코Ⅳ’에 대한 동영상에서는, 문화재를 재해석하여 공간과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놀라운 기술력과, 디자인적으로 뛰어난 전시 디스플레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라스코Ⅳ

  국제순회전에서는 벽화의 일부분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라스코를 온전히 느끼기에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그러나 라스코Ⅲ가 제작되고 공개되기까지의 과정과 이후 공개될 라스코Ⅳ까지, 어떠한 목표와 철학을 가지고 문화재를 관리·연구·공유하는지, 전시물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춰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찬찬히 살펴볼 만 하다. 또한 광명동굴 역시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공간으로서, 이 곳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며 문화를 재생산하는지 비교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나 미술품의 보존 및 복원, 관리나 정책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단순히 해당 작품만을 고려하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이 지역과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듯, 이를 관리할 때에도 그것의 역사적·사회적 맥락과 주변 환경을 모두 고려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공유하여 더 나은 문화의 발전으로 나아가려는 미래지향적 안목 역시 중요하다. 라스코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 참고자료
피터 퍼타도 외,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 마로니에북스, 2009
모리노 다쿠미, 마쓰시로 모리히로, 『고대유적』, 들녘, 2007
H.W.잰슨, A.F.잰슨, 『서양미술사』, 미진사, 2001
윤범모, 「라스코 벽화동굴에서 깨달은 것」, 『서울아트가이드 제169호』, 2006. 1.

** 이 글은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6월호에 기고했던 글로서, 일부를 수정 및 생략 하였음을 밝힙니다. 지면에 실린 글을 보시려면 www.ilemonde.com을 방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