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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Apr 23. 2021

가장 편안한 것

나를 닮은, 내가 있을 자리

오늘의 약속 장소는 콜마인이었다. 마포구 지박령답게 홍대-합정-상수에 걸쳐 좋아하는 카페가 여러 곳이지만 누군가 만나기로 약속을 잡는 장소는 늘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아하는 카페와 누군가를 초대하는 카페의 차이랄까.


커피나 차, 디저트 하나가 맛있어서, 음악이 좋아서, 지키고 앉아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귀여워서, 사람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좋아하는 카페는 많지만, 내가 약속 장소를 정하고 누군가를 초대하는 입장일 때에는 아무래도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을 고르게 된다.

너무 낮거나 좁은 테이블이 아니었음 좋겠고, 시끄럽지 않되 bgm이 공간을 잡아먹지 않았으면 좋겠고, 교통이 불편하거나 찾기 어려운 곳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커피가 맛있어야 하지만 다른 요소가 너무 불편한데 커피맛만 베스트라면 고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힙한 곳보다는 물이 흐르듯 편안하고 튀는 불편함이 없는 곳. 물론 가까운 사이라면, 다른 것이 좀 불편해도 상대의 취향이 닿는 곳을 조금 더 모험적으로 선택해보지만 결국 특정한 요소만을 위해 과한 불편함을 함께 감수하자고 이끌진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는 방식이 내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싫다. 나와 있을 때 되도록이면 모든 것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요철 같은 것은 만나지 않는 시간. 맞춰주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편안한 상대방을 보는 게 나한테는 편안한 순간이므로.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들은 아마도 내 일부분과 닮았을 거다.

옷을 입는 것도 비슷하다. 대단한 패피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각자 필요한 부분에서 편안함을 추구한다. 내 경우에는 신발이 아무리 예뻐도 불편하면 절대 사지 않는다. 발에서부터 올라오는 피로감이 다른 일이나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싫고, 갑자기 걷고 싶은데 신발이 부적절해서 포기하는 것도 싫다.


누군가 만날 때 예쁘게 입고 싶어도, 그 사람과 걷고 싶어서 결국 좀 덜 예쁜 대신 더 편한 신발을 고르고 만다. 편안함을 선택하는 디테일에서 결국 사람이 보인다. 나는 예쁜 것보다 내 에너지와 쾌적함, 거기서 이뤄내는 일과 관계가 조금 더 중요한 사람이 아닐까.

저녁 무렵의 통화는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작가였다. 언니는 몇 년 전부터 한창 변화의 시기를 겪으며 자신의 자리에 자신의 방식으로 안착하기 위해 길을 모색하는 중이었다. 그는 말하는 작가보다 말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기보다는 말하지 않고 그리는 방식에 스스로 더 편안함을 느낀다고.

무엇에 매력을 느끼고 열정을 가지는지 보다, 무엇에 편안함을 느끼는지에서 한 사람의 본질이 더 많이 드러난다. 그래서 자신이 편안한 자리를 찾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사랑을 건네는 방식 중 가장 좋은 것은 상대가 무엇을 편안히 여기는지 알아주고 그 편안함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게 사랑이라는 광고가 있었는데, 거기서 말하는 사랑의 방식도 그런 것이었다.

하루를 마치고 걸어오며, 나는 무엇에 편안함을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오늘의 통화에서 언니는 마지막에 내게 덧붙였다. 네가 지금 미술비평을 하고 있지만 그 틀에 너를 가두지 말라고. 네가 쓰는 글에는 더 큰 따스한 것이 있다고. 특히나 이렇게 쓰는 일기 같은 것에. - 그 얘기와 함께, 내가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쓴 글은 무엇이었는지, 쓰고 난 뒤 가장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던 글은 무엇이었는지 되새겨 봤다.

전에는 내가 쓰는 글들을 무엇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 늘 고민이었다. 미술비평이든 문화비평이든 에세이든 소설이든, 어딘가 정해진 이름 아래에 안착시키고 싶었다. 최근에야 여러 군데 발을 걸치고 있는 모습이 나 자신이고, 그렇게 넘나들며 쓰는 글이 내 글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쓰며 느끼는 편안함과 만족스러운 마음들 사이를 더듬다 보면, 내게 잘 어울리고 입기 편한 옷이 분명 있을 거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옷은 아마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닮은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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