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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소리 Sep 06. 2023

타지크소년 자파네 옆에서 문자 보내다

타슈켄트로 의료관광 온 타지키스탄 가족들 옆에서 고민하다

 숙소의 정원에 배치된 나무의자 한편에 앉은 타지키스탄 출신 7세 자파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하루종일 핸드폰으로 온라인 게임 중이었다. 자파는 할머니와 같이 호스텔에 장기 투숙 중이었다. 타슈켄트가 역사적으로 보면 사마르칸트나 부하라에 비해 신생 도시다 보니, 타슈켄트를 보기 위해 장기 투숙하는 여행객이 매우 드물었다. 타슈켄트는 여행객들에게는 다른 나라나 다른 도시로 넘어가기 전 잠시 머무는 거점 도시였다. 서양 여행객들은 타슈켄트에서 환전도 하고, 짐 재정비도 좀 한 뒤 각자의 루트로 다시 여행을 떠났다. 이 호스텔에 장기투숙하는 건 자파와 할머니, 그리고 우리뿐이었다.


 자파와 할머니는 관광이 목적이 아닌 듯 하루 종일 호스텔에 머물렀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발목까지 덮는 긴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당의 구석진 식탁에서 식사를 만들었다.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인지, 다른 여행객들과 달리, 호스텔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조식도 먹지 않고 직접 해 먹었다.


 호스텔은 여행객들을 위한 주방이 따로 구비되어 있지 않아 주인네 식당에서 눈치껏 도마며, 냄비며 빌려 써야 했다. 마당 한편에는 가스레인지 4구짜리가 있긴 했는데, 중앙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보았던 가스레인지처럼, 스위치에 의한 자동점화가 되지 않고, 가스밸브를 연 후 가스 새어 나오는 소리가 들리면, 성냥으로 불을 붙여야 했다. 이미 키르기스스탄에서 몇 번이나 연습을 했지만, 가스 새는 소리나, 성냥을 가져다 대서 불을 붙여야 하는 방식이 나에게는 매우 위험해 보이고, 공포스러웠다. 이런 불편한 주방환경에도 불구하고, 자파네 할머니는 밀가루를 반죽해 만두도 만들고, 기름을 부어 보르속도 튀기고, 고깃국도 끓이는 듯  못 하는 게 없었다.

 할머니가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고, 또 정리하는 동안 손자인 자파는 숙소에서 그저 방치되었다. 벌써부터 시력이 좋지 않은지 뿔테안경을 쓰고는 하루종일 할머니 핸드폰을 가지고, 비행기로 총을 쏘며 적군을 물리치는 게임만 하루종일 해댔다. 주원이는 자파에게 다가가 "자파형아야. 지금 뭐 해?" 하면서 자파 곁을 어슬렁거리면, 자파는 타지크어로 주원이에게 대답을 해주고는 다시 게임에 열중했다. 자파는 타지크어만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구글 번역기로도 교류할 수 없는 아이였다.


 자파와 할머니가 도대체 왜 타슈켄트 숙소에 머무는지 의문이었는데, 알고 보니 자파가 병원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감기가 심해서 호스텔에 하루종일 머물고 있는 엄마가 구글 번역기와 손짓 발짓으로 자파의 할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알고 보니 중앙아시아에서는 그나마 타슈켄트가 가장 의료가 발달해서, 다른 도시나 국가에서 타슈켄트에 의료 관광을 오는 모양이었다. 타슈켄트에서 해결이 안 되면 다시 러시아로 가는 구조인 듯했다.
 자파는 한 달 전부터 전신에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나고 고열에 시달렸는데, 타지키스탄 현지병원에서 만족할만한 답변을 못 들은 듯했다. 부모는 돈을 대고, 할머니가 자파를 데리고 의료선진국인 우즈베키스탄으로 버스를 타고 왔다. 자파는 자신 때문에 온 가족이 고생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속은 편해 보였다.
 
 자파 할머니가 아침부터 만든 보르속을 한 두 개 건네받고, 꾸역꾸역 먹는 척하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내일 주원이 엄마한테 맡기고 아이비에커가 밥 사준다는데 먹고 와도 돼?"
 엄마는 내가 아이비에커와 과거에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걸 전혀 알고 있지 않았다. 나가고 싶어서 물은 건 아니었다. 단지, 내가 정말 아이비에커의 발언을 오버해서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엄마가 콜록거리며 물었다.
 "둘이? 무슨 유부남 둘이서 만나니. 아무리 친구라고 그래도, 그건 좀 아니다. 바허도 같이 만나면 모를까. 주원이 데리고 가."

 "바허도 아마 연락하면 나올 수도 있을껄."

 "껄? 껄은 무슨 껄이니. 둘은 절대 안 돼."

 나의 사생활에는 별로 간섭하지 않던 엄마가 발끈했다. 내가 오버한 게 아니었다. 둘이 만나는 건 정말 아닌 거였다. 나는 저녁 즈음에 아이비에커에게 텔레그램으로 문자를 남겼다.


 "엄마가 아프셔서 내일은 내가 병원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아. 내가 직접 갈 거야. 너한테 폐 안 끼칠 거야.(不麻烦你了)。 나 가기 전에 성제오빠랑 다 같이 밥이나 먹자.^^"

 쿨한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웃는 이모티콘까지 붙였다. 실제로 엄마는 병원에 갈 예정이고, 내가 생각해도 세련되고 완곡한 거절이었다. 그러자 아이비에커가 바로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

 "(한숨) 그래. 너네 엄마 도대체 어디가 아프신데, 어디가 불편하신데.(한숨). 내가 모시고 갈게. 얘기해 봐."

 짜증과 분노가 희석된, 그러나 자신이 매우 불쾌함을 드러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였다. 또 네 엄마야. 그런 어조였다. 15년 전 예상보다 귀국일정이 앞당겨졌다. 엄마가 요양캠프를 가야 한다고 나의 귀국을 독촉했다. 나의 귀국일정을 듣고는 아이비에커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귀국을 좀 더 미뤄주면 안 되냐고, 2달, 안 되면 1달이라도... 아이비에커의 눈빛은 간곡했고, 목소리도 슬픔이 배어 나왔다. 2달, 안 되면 1달이라도? 그렇게 더 머물면 어쩔 건데, 여기서 머무는 것도 다 돈이고, 그리고 너랑 더 머물러 봤자 어차피 우리는 헤어질 건데 여기 더 머물러서 시간낭비할 필요 있을까. 속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가 아프셔서 그럴 수 없어."


 엄마가 독촉해서 일찍 귀국하게 된 것도 맞지만, 나는 어린 나이에 나 자신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쾅쾅쾅 아이비에커가 내 방을 두들겼던 그날 그가 했던 얘기, 나 너를 먹고 싶어. 이 말이 너무 무서웠다.


 아이비에커의 한숨 푹푹 쉬는 목소리에는 또 네 엄마 때문이지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아, 나의 세련된 거절기법도 아이비에커한테는 통하지 않는구나.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더 이상은 완곡하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니야. 오지 마. 내가 직접 엄마를 모시고 갈 거야. 그리고 오늘 내가 너한테 과거얘기하면서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나 봐. 네가 여기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본 것만으로 나는 너무 기뻐."
 아이비에커는 그 문자를 받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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