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소리 Oct 24. 2023

병설유치원 2년 차, 대놓고 병설유치원 홍보합니다.

교육부 산하의 공공유치원의 가치소비

"가뜩이나 새싹반에 친구들 별로 없는데 저희까지 이사가게 되어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이사 가는 아이의 엄마가 하원길에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만 3세 반은 이제 5명밖에 남지 않았다. 만 3세부터 5세까지 전체 원아를 모두 더해도, 20명도 채 안 되는 이 유치원은 외곽이 아닌 강남 한복판에 있다. 심지어 위치도 좋다. 아파트, 오피스텔, 주택 등 인근 거주지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유치원에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초대형 아파트가 없어서 마을 인구수가 많진 않아도, 유치원 끝나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만 따져도 족히 채울 수 있는 원아수는 매년 미달이다. 원아수 때문에 매년 고민이 많은 이곳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병설유치원으로 향하는 아침, 아파트 입구는 통원차량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줄을 서있다. 다양한 과목을 제공한다는 옆동네 사설유치원, 지하수영장까지 있는 인근 초대형 유치원, 강 건너 영어유치원 차량이 곧 아이들을 순차적으로 픽업해 갈 것이다. 노란 유치원버스가 익숙한지, 아이는 자기가 다니지도 않는 유치원 버스를 줄줄 외운다.

"주원이도 저 버스 타고 싶어?"

"아뇨. 저 그냥 버스 구경하는 건데요."

친구들도 적고, 국어와 수학을 가르쳐주지 않고, 셔틀버스도 없지만 아이는 걸어서 5분 거리의 병설유치원을 참 좋아한다. 등원길에 교통지도하는 어르신들에게도 인사하고, 경찰관 아저씨 같은 학교 보안관선생님한테도 배꼽인사하고, 교장, 교감선생님께도 아는 척하고 나면 아이의 유치원이 나온다.


병설유치원은 초등학교와 한 건물에 있다보니 상급학교와 많은 점을 공유한다. 우선 교실이 초등학교 한 학급에 주어지는 만큼 크고, 유치원용 신체활동실과 도서실이 따로 있다. 행사가 있을 때는 초등학교의 체육관도 쓴다. 급식실도 따로 있다. 널따란 운동장과 텃밭은 기본이다. 처음 남편과 유치원에 상담을 갔을 때, 시설이 너무 쾌적하고 편해 다른 유치원 상담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병설유치원이 이 동네에서는 이렇게 찬밥신세라니...


병설유치원에 다닌 지 2년 차 되어갈 무렵, 놀이터에서 곧 유치원에 가야 할 연령의 아이를 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OO유치원은 대기 걸어놨는데 대기 100번이라 떨어질 확률이 너무 높고, OO유치원도 정원이 거의 모집되었다고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동네 엄마들이 대기 걸어놨다는 유치원은 반경 1.2km 정도의 옆동네에 있었는데, 아파트 코 앞의 병설유치원은 상담도 가본 적이 없었다. 동네엄마들의 선택지에도 들지 못한 병설유치원에 행복하게 잘 다니는 아이의 양육자로써, 공공시설의 특성상 적극 홍보를 할 수 없는 병설유치원을 대신해서 병설유치원의 장점을 써보고자 한다.


첫째, 생일선물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어린이집 다닐 때 경험한 바로는, 매달 열리는 생일파티는 정말 숙제 같은 거였다. 생일을 맞이한 아이들을 위하여 간소한 생일선물과 카드를 준비해야 하고, 생일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답례품과 생일케이크나 떡, 간식 등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크리스마스나 핼러윈처럼 연중 한번 하고 마는 행사도 아니어서 다달이 잘 챙겨야 하는데, 답례품이라고 받아오는 생일선물들은 주로 양말, 플라스틱 장난감 등이 많았다. 주고받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은 병설유치원에 가면서 끝났다. 여기서도 생일파티를 하긴 하지만, 모형 케이크에다가 촛불장난감을 꽂고 같이 노래하고 끝난다. 양육자는 유치원에서 생일파티를 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숙제 하나가 끝난 것이다.  

어린이집, 유치원의 생일파티 답례품 및 선물은 이미 하나의 산업이 되어 버렸다.(출처 : 네이버쇼핑 캡처)


둘째, 뛰어놀 공간이 유치원계 재벌급이다. 실내강당, 널찍한 운동장, 도서실, 체육활동실, 급식실, 텃밭, 놀이터... 초등학교용으로 이미 구축되어 있는 인프라가 너무나도 많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다양한 실내활동실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답답해서 숨통 막힐 일이 없다.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도서실에서 아이는 매일 1권씩 도서를 빌려와서 읽고 독서일기를 작성하는데, 이러한 활동 역시 상급학교로 가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셋째, 충분한 자기 주도 놀이시간이 주어진다. 학습은 대부분 교사 주도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쪼르르 앉아서 교사를 바라보는 청자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하지만 자기 주도 놀이시간 안에서는 유치원에 배치된 다양한 교구들을 이용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스토리텔링과 사회성을 키울 수 있다. 놀이를 주도해서 이뤄내는 과정 자체가 성공의 경험이라고 한다면, 자유놀이시간이야말로 자기 성공을 축적해 나가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방과 후시간에는 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형님, 동생들과 함께 합반하기도 하는데, 외동인 아이들은 형동생관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다.


넷째, 담임선생님은 한정된 시간 동안 주어진 수업에 집중할 수 있다. 아침에 등원하면 아침 돌봄 선생님이 아이들을 교실로 안내하고, 1시 이후인 방과 후에는 방과 후 전담선생님이 진행한다. 담임선생님은 9시부터 1시까지만 아이들과 대면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교과준비 및 기타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하루종일 봐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한 법이다. 시간적 분업이 잘 되어 있는 유치원에서 선생님은 더욱 양질의 수업을 제공할 수 있다.


다섯째, 학부모를 위한 보여주기식 행사 및 안내가 적다. 아이들이 맞춤 무대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장기자랑도 없고, 매일마다 부모에게 사진 및 일과내용 안내로 보고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때만 교육부의 e알리미 앱으로 내보내고, 소통도 별도의 전화 없이 해당 어플에서 모두 진행한다. 학부모 보고를 위한 기록에 시간을 덜 뺏기는 만큼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어울릴 동안 과도하게 많은 사진 찍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고, 더욱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는 매일마다 키즈노트라는 앱에 담당교사가 6~7장의 사진을 업로드하고 일과 내용도 장문으로 썼었다. 이와 비교했을 때, 공립유치원의 경우 필요에 의거해서 알리미를 작성하고,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도 전화가 아닌 알리미 메모에 남기기 때문에 보고의 효율성이 있다.  

여섯째, 양질의 점심급식을 보장받을 수 있다. 초등학교의 영양교사/영양사선생님이 병설유치원의 급식까지 부담하는데, 그러다 보니 학교급식 위생관리지침을 준수하며, 친환경 인증(유기농, 무농약)된 재료만 쓰게 된다. 급식메뉴도 칼로리와 영양성분을 모두 따져 컴퓨터로 짜며, 알레르기 표기도 하고 있어 안전한 양질의 급식을 먹을 수 있다.

일곱째, 예산집행이 투명하다. 학교 차원에서 연간운영계획을 근거로 예산을 배분하고, 적시에 집행하고, 변동사항은 운영위원회를 통해 매번 보고되어 처리되기 때문에, 예산 전체가 기존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원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 '유치원 횡령', '비용 부당사용한 사립유치원'의 이야기가 종종 뉴스가 되는데, 공립유치원에서는 오히려 정해진 예산을 모두 적기에 써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들 예산 안에서 자신의 교육안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이 공짜다! 예쁜 공립유치원 가방, 각종 교구재, 방과 후학습도구, 요리실습, 원예수업, 스티커, 방과 후 간식, 교외실습... 뭐 하나 수익자에게 부담시킨 적이 없다.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영어학원 유치부가 월 100 ~ 265만 원이 들고, 사립유치원의 월평균 원비가 53만 원인데, 국공립은 수익자 부담 비용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공립유치원을 기피하는 데는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저녁 돌봄까지 책임져주지 않으므로, 방과 후과정을 한다고 해도 4~5시 하원을 해야 하므로, 아이가 저녁 7시까지 유치원에 머물렀으면 하는 경우에는 국공립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학습을 따로 진행시켜주지 않아 한글, 수학, 영어를 조기교육하고 싶은 경우 학습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는 유치원을 더 선호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학교 방학 때 아예 육아공백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최하위로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심각하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에 보내는 타 맞벌이가정들을 관찰해 본 결과, 직장어린이집을 제외하고는, 실제 사립유치원에 보내더라도 저녁 7시까지 머무르는 원아가 적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만 외로이 유치원에 머물기 바라는 학부모가 적다. 하원은 4시쯤 시키고, 그 이후에는 대부분 조부모나 유급양육자로 퇴근시간까지의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태권도 학원 등 픽업이 되는 학원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영어, 수학, 한글 등을 사립유치원에서 교육시킨다고 하더라도, 집에서 복습하지 않으면 기억이 나지 않을 확률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 집에서도 별도의 학습지를 하고 있었다. 결국 국공립을 보내지 않아도, 하원 후 양육부담과 학습부담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방학은 오히려 국공립이 낫다. 학교가 방학하면 유치원도 방학하는 게 맞지만, 방학 중에도 방과 후과정은 계속 진행이 되므로, 양육자 입장에서는 학교가 방학해도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때문에 체감상 방학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주간 동안 완전히 쉬어버리는 유치원에 비해 공백이 없다.

맞벌이가 아닌 경우 '방과후과정'이용이 어렵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9시 이전 등원(약 7시~8시)의 경우 맞벌이만 가능하지만, 9시~17시의 오후 에듀케어반의 경우 구직자, 다자녀, 다문화, 기타 돌봄 필요의 경우 등 응시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아무리 맞벌이라 하더라도 한 달에 몇십만 원에서 몇백만 원을 고정지출하는 건 엄청난 부담이다. 국공립유치원을 보낼지 말지 고민하는, 혹은 고려조차 해보지 않은 양육자가 있다면, 국공립유치원 감히 너무 좋다고 추천하고 싶다. 국공립유치원도 대부분의 부모가 바라는 것처럼 학습커리큘럼을 추가하고, 저녁 7시까지 돌봄을 제공하면 좋겠지만, 선행학습이 금지된 교육부 산하의 국공립유치원은 학습커리큘럼에 제한을 둘 수 밖에 없고, 저녁 돌봄도 현재 수요부족으로 대부분 운영이 어려운 상태다.

어차피 사립유치원에 보내도 하원 후 돌봄을 위해 돈이 이중으로 든다. 정규 교육시간에는 국공립에 보내고, 사립유치원에 보낼 비용으로 대체양육자를 구하거나 학습지를 구독하거나, 기타 학원에 보내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국공립유치원의 정원미달이 뉴스에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태이며,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국공립유치원에 대한 편견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좋은 건 나눠야 더 좋지 않은가. 국공립, 정말 좋다고 추천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타슈켄트에서 아이스스케이트 타기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